- '젠틀맨스 가이드', 1인 9역 다이스퀴스의 연기 차력쇼 [무대 SHOUT]
- 입력 2024. 08.01. 15:48:38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대극장 뮤지컬은 무겁고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을 말끔히 지워낸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스토리, 넘버, 연출 모두 유쾌하게 그려내 탄탄한 구성을 만들어냈고, 관객들에게 쉴 새 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젠틀맨스 가이드'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는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가난한 청년 '몬티 나바로'가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가문의 백작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보다 서열보다 높은 후계자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과정을 예측 불가한 구성으로 그려낸 코미디 뮤지컬이다. 2018년 초연 이후 6년 만에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작품은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몬티 나바로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가난하게 살아가던 몬티 나바로는 우연히 어머니가 사실은 다이스퀴스 가문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에 몬티는 자신이 백작이 되기 위해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 8명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몬티는 얼음을 톱으로 썰어 물에 빠지게 하고, 향수를 이용해 벌떼에 쏘이게 만들고, 연극 소품용 총을 실제 총으로 바꾸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후계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후계자들을 한 명 한 명 제거해나가는 몬티는 과연 자신의 살인 행위를 들키지 않고 백작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젠틀맨스 가이드'가 매력적인 이유는 유쾌한 전개에 있다. 몬티가 제거하는 후계자들은 성직자, 대지주, 배우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하나같이 위선적이고 욕심이 많다. 그렇기에 백작이 되기 위해 이들을 제거하는 몬티가 오히려 통쾌하게 느껴진다.
스토리에 걸맞는 중독성 있는 넘버들도 눈길을 끈다. 재치 있는 가사와 함께 코믹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도 큰 몫을 한다. 특히 2막에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시벨라와 피비 사이에서 결정을 못 내리는 몬티의 '결혼할 거야, 그대랑' 넘버에서는 코믹한 연출과 함께 잘 어우러진 세 배우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LED 스크린의 활용도 돋보인다. 몬티의 회고록을 펼쳐 놓은 듯한 3D팝업북이 더욱 몰입도를 높이고, 각 후계자들이 최후를 맞이할 때에도 스크린을 통해 이를 확실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표현해 재미를 더한다.
사실 코믹한 요소가 더해졌기에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들의 역량이다. 몬티 역할의 김범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올랐지만, 데뷔 19년차답게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폭 넓은 캐릭터 소화력이 유쾌하면서도 냉랭한 분위기의 몬티를 연기하는 데에 매우 적절했다. 상대 배우들이 '꽃보다 남자', '거침없이 하이킥' 등 김범의 필모그래피를 활용해 맞춤형 애드리브를 사용하는 것도 큰 관전 포인트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말 그대로 '다이스퀴스 연기 차력쇼' 그 자체였다. 정상훈, 정문성, 이규형, 안세하 등 코믹 연기도 잘 소화하는 네 배우가 해당 역할에 캐스팅된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1인 9역을 소화하는 다이스퀴스 역할의 배우는 쉼 없이 의상을 바꿔가며 무대에 새로운 캐릭터로 오른다. 한 배우가 소화하는 9명의 캐릭터를 계속 만나 볼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시벨라, 피비 역할을 맡은 두 배우도 큰 활약을 펼친다. 몬티를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두 배우의 불꽃튀는 신경전, 그리고 높은 넘버도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가창력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김범의 넘버 소화력이다. 비주얼, 연기에서는 부족한 점이 없었지만, 첫 뮤지컬인 만큼 그의 노래 실력이 조금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음이 불안정해 극을 보다가 잠깐씩 몰입이 깨지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젠틀맨스 가이드'는 무엇보다도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이다. 누구와도 함께 보기 좋고, 어렵게 느껴지는 뮤지컬의 문턱을 쉽게 낮춰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젠틀맨스 가이드'는 오는 10월 20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노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