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볼버’ 전도연 “필모 자랑스러워, ‘전도연스럽게’ 잘 살았다” [인터뷰]
- 입력 2024. 08.12. 13:39:16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텅 비어버린 눈빛.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무표정. 대가를 받기 위해 뒤도 보지 않고 직진하는 독기까지. 배우 전도연이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가장 건조한 얼굴이다.
'리볼버' 전도연 인터뷰
영화 ‘리볼버’(감독 오승욱)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수영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무뢰한’으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오승욱 감독과 전도연의 재회 작품으로 관심을 모은 바. 오승욱 감독의 작품이라면 또 출연하겠다는 전도연의 말이 ‘리볼버’ 출발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도연은 극중 목적을 향해 거침없이 직진하는 하수영 역을 맡았다. 끈질기게 한 길만 가는 인물의 분노를 건조하고, 차갑고, 냉한 얼굴로 표현했다. ‘무뢰한’의 김혜경은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라면 하수영은 그 반대다.
“건조했으면 했어요. 감정을 많이 걷어내자고 했죠.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하수영에게 접근했어요. 위스키, 스카잠바는 오승욱 감독님의 취향이 들어가 있어요. 정해진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단조롭지 않을까 고민했죠. 막연했지만 막상 촬영할 때는 너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지루하더라고요. 계속적으로 같은 연기를 무한반복 하는 것 같고, 지루하지 않나 걱정을 계속 했어요. 다행히 촬영할 땐 몰랐지만 끝나고 나서 느낀 건 무표정으로 배우들을 만나는데 배우들의 색깔이 묻어져 다채롭고, 다양한 느낌의 신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었어요.”
전도연은 출소 후 먼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수영의 깊은 상실감부터 대가를 저버린 이들을 향한 분노까지, 무표정 위로 다층적인 감정을 입혀 완성했다. 과거와 현재의 변화 폭을 보여주기 위해 헤어, 의상 등 외적 표현도 심혈을 기울였다.
“과거의 하수영은 김혜경과 닮아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에 관해서도 잘못된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으로 미래를 꿈꾸고, 되고 싶어 하는 부분도 있죠. 교도소에 가기 전, 모든 책임을 지고 바로 들어가잖아요. 그 설정 하에 복장을 그대로 입었어요. 나와서는 감독님이 원하는 잠바가 명확하게 정해져있었어요. 한 가지 옷밖에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다양한 느낌을 낼 수 있을까 싶어 셔츠 안에 나시, 혹은 나시만 입기도 했죠. 같은 옷인데 아른 느낌을 주기 위해 레이어드를 했어요.”
전도연은 임지연과 흥미로운 케미를 형성하기도. 임지연이 맡은 정윤선은 투명한 듯 속내를 알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로, 감시자인지 조력자인지 모호한 궁금증을 자아내며 수영과의 관계에 긴장감과 흥미진진함을 불어넣는다.
“첫 촬영이 교도소에서 나와 만나는 장면인데 ‘언니~’라는 대사를 하자마자 무지개색이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아, 저게 정마담이구나’ 첫 등장에서 알았죠. 임지연 씨와 서로 이야기한 건 아닌데 서로의 일에 집중했어요. ‘저 친구가 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죠. 각자 일에 열심히 했어요. 임지연 씨가 저의 팬이고, ‘한예종 전도연’이라 하고 다니고, 저를 만나 떨었다는 것도 몰랐거든요.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재밌고, 귀여운 친구라는 걸 알았어요. 촬영할 때는 어떤 친구인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텐션이 높은지 몰랐는데 홍보 때 보니까 정윤선 같은 텐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리볼버’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수영이 맞닥뜨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빠르게 쫓아간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와 각 캐릭터 간 온도차가 만들어내는 시너지 또한 관전 포인트다.
“‘리볼버’는 씁쓸한 감정을 주는 것 같아요. 씁쓸하고, 묵직한 감정이 들도록 하죠. 이번 작품은 제가 생각할 땐 묵직함, 씁쓸함, 블랙코미디 장르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재미들이 가미되지 않았나 싶어요. MSG가 많이 들어간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야기에 서사 자체가 없어요. 단순하죠. 하수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말만 해요. 단조롭고, 서사도 약할 수 있지만 모든 서사를 만들어준 건 출연한 배우들이죠. 단순하고, 단조로운 이야기에 장르적인 걸 가미시킨 것도 배우들인 것 같아요. 감독님이 ‘배우들의 향연’이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신지 알겠더라고요.”
1990년 CF로 데뷔한 전도연은 1992년 KBS2 ‘TV 손자병법’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스크린 데뷔는 1997년 영화 ‘접속’이다. 이후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매체‧장르불문,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현재까지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1997년 출연한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연극 ‘벚꽃동산’으로 무대에 서 화제를 모으기도.
“‘리볼버’를 처음 받았을 땐 솔직히 안 하고 싶었어요. ‘내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죠. ‘길복순’으로 액션도 했고, ‘일타스캔들’ 같은 밝은 작품도 했으니까요. 어렵게 밝은 작품을 했는데 다시 내 발로 (어두운 작품으로) 들어가는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그러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했어요. 그리고 이왕 하는 거면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에 대한 갈증이 해소된 건 ‘벚꽃동산’이었어요.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갈증이 해소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것들도 하고 싶고, 제 만족이 너무 중요했어요. 그런 것들이 채워진 게 ‘벚꽃동산’이었어요. 27년만이라 무섭고, 자신감도 없고, 두려움도 컸거든요. 27년만이면 신인이잖아요. 처음과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실수나, 못하는 것들에 두려워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했어요. 그러면서 조금 더 무대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작품이 있으면 무대에 언제든지 서고 싶어요.”
데뷔 34년차. 삶의 절반이 ‘연기’로 채워진 그는 어느덧 중견 이상 선배가 됐다. 많은 연기자 후배들은 전도연을 롤모델로 꼽기도 한다. 걸어온 길을 스스로 되돌아본다면 어떻게 느껴질까.
“잘 산 것 같아요. 열심히, 타협하지 않고, ‘전도연스럽게’ 잘 살아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고요. 저는 제 필모가 자랑스러워요.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냐, 안 받았냐를 따지자면 시간이 지나 계속적으로 제 작품이 회자되고, 언제 봐도 ‘이 영화가 재밌는 영화였어?’ 할 만한 작품을 찍어왔거든요. 앞으로도 제 필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채워나가고 싶어요. 햇살이 들고, 만개하고, 또 꽃이 지고. 저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만개했다고 하지만 영원할 것 같지 않고, 그런 시간을 지내고 보내면서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작품을 만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의 연속이자 반복일 것 같아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