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골프장 장면’이 판타지인 이유는...” [인터뷰]
- 입력 2024. 08.21. 09: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이런 시대가 진짜 있었으니까 한 번쯤은 ‘이 시대는 이랬구나’ 정도로 봐주셨으면 해요.”
'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인터뷰
추창민 감독이 ‘7년의 밤’(2018) 이후 8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재판을 주요 소재로 삼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가려진 인물과 감춰진 어두운 면을 재조명했다.
“‘서울의 봄’은 저희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영화에요. 저희 고민은 먼저 개봉했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도 있었죠. 준비를 했는데 안타까운 선균 씨의 일로 최종적으로 ‘락(Lock)’ 단계를 겪었어요. 개봉을 고민하던 중 모든 작업이 스톱됐죠. 그 상태에서 개봉을 다시 준비하게 됐고, 그 사이 ‘서울의 봄’이 잘 됐어요. ‘서울의 봄’ 소재가 같은 소재기 때문에 잘 만들면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네?’라는 신호가 반가웠어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결이 다른 영화에요. 김성수 감독과 제가 친한 편인데 시나리오도 공유했거든요. 처음에는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게 괜찮나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색깔로 만들 거라는 암묵적인 결론을 내리고 시작했어요. (김성수)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감독님답다’고 느꼈어요. 제 영화를 보곤 다르다고 생각했죠.”
영화는 10.26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 박태주를 중심으로 전개, 우리가 잘 몰랐던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 이야기를 다룬다.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실제 공판이 진행되는 도중 여러 차례 법정에서 은밀히 쪽지가 전달돼 ‘쪽지 재판’ ‘졸속 재판’ 등으로 불린 역사적 사실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 인간의 근본 가치가 아무렇지 않게 짓밟히는 ‘시대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시나리오를 했던 이유는 10.26과 12.12를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그 사이를 한 이유는 숨겨진 이야기였기 때문이에요. 그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시대를 어떻게 부여할까 고민했는데 전상두라는, 전두환으로 치환될 수 있는 야만의 시대에 자기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세상과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인물을 하나의 권력, 욕망으로 선택했어요. 정인후라는 그때의 인권 변호사 집단이 80년대 발전이 됐는데 고민하는 시민정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박흥주 대령 같은 경우, 시대의 희생양이죠. 그 사람들, 사건을 가져온 이유는 시대로 치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지고 왔어요. 큰 거대한 사건이었으면 사람들이 아는 사건이라 사건 중심으로 풀었어야 했는데 인물을 가져와 시대로 치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몇몇 장면들은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 영화적으로 설명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골프장 장면이죠. 그 당시에도 저는 불의와 독재에 목소리를 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정인후가 골프장을 찾아가 이야기한 이유는 큰 권력자를 향해 수많은 시민정신들이 세상을 향해 외쳤던 소리라고 생각했죠. 그게 골프장으로 왜 했냐는 이야기도 있어요. 자료 조사를 하니까 전두환이 골프를 좋아했고, 12.12가 끝난 후 미군 골프장을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성역’이잖아요. 그곳에 가서 골프를 치고, 야만의 시대 야만성은 ‘서울의 봄’의 황정민 씨처럼 드러낼 수 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땐 머리도 좋고, 전면에서는 점잖지만 뒤에서는 수많은 비수를 들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수가 드러나는 방식은 대중이 아닌, 프라이빗한 공간이라고 생각했고요. 그게 골프장이었던 거예요. 사람들 모임이 있을 땐 군인정신, 앞으로는 도덕적인 인간이지만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낼 땐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저항했고, 소리쳤고, 그게 아마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 그 시대를 가지고 온 게 아닌가 싶어요.”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는 당시 재판 기록들과 재판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창작된 인물이다. 나이, 가족 관계, 영화 속 등장하는 에피소드 등 대부분이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박태주는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해 각색됐다. 전상두는 전두환을 모티브로 했지만 당시 권력의 실세라는 중심 요소를 두고 영화적으로 각색된 인물이다.
“아마 욕심은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의 봄’ 속 황정민 씨가 보여준, 같이 분노하고, 패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렇게 표현하려면 ‘서울의 봄’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행복의 나라’는 그게 아닌, 메타포가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아마 어떻게 보면 큰 차이점이 전두광과 전상두란 인물인 것 같아요. 전두광은 강력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욕망을 드러내지만 전상두는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드러내는 인물이죠. 훨씬 더 머리가 좋고, 어딘가에 숨어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해 두 차이가 극명하지 않았나 싶어요.”
전상두 역은 유재명이 맡았다. 그는 출연을 제안 받았던 초반, 제의를 거절했지만 “시나리오가 계속 생각난다”는 이유로 다시금 출연을 결심했다. 왜 유재명을 전상두 역에 캐스팅하려 했을까.
“하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이도 있어야 하고, 유명세도 있어야 했죠. 그러니 몇 명 남지 않았어요. 재명 씨가 처음에는 거절을 했어요. 누구에게 시키지 고민하고 있는데 회사를 통해 재명 씨가 관심, 재미는 있어 한다고 연락이 왔죠. 그 말을 듣고 매달리게 됐어요. 재명 씨가 잘 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거든요. ‘어떻게 할 거다, 딱’이라는 개념 보단, 재명 씨 정도 분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후반부에 나오는 골프장 신은 추창민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시대상을 표현한 장면이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장면은 수많은 테이크로 촬영돼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골프장 장면 전까지 다큐처럼 만들다가 그 장면은 판타지처럼 만들었어요. 저에게 그 장면이 되게 좋았거든요. 한번쯤 세상을 향해 영화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게 영화잖아요. 다행히 재명 씨, 정석이도 좋아해서 ‘그럼 해보자, 관객들을 설득시킬 방법을 찾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많은 분들이 영화의 결에 대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시원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저게 말이 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저에겐 판타지였어요. 영화 속에서는 약간 점프하는 느낌이 있지만 저는 당시 밑바닥의 누군가가 권력을 향해 부당하다고 소리쳤던 것 같았어요. 그 장면이 오버스럽고, 호불호는 있겠지만 해보는 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시대로 치환시켜 보면 납득이 쉽다고 생각했거든요. ‘일개 변호사가 전두환한테?’라고 하면 어려운 이야기지만 부당함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건 가능하다 생각했어요. 골프로 선택한 이유는 실제 전두환이 골프를 좋아한 것도 있지만 권력, 힘 있는 사람들은 골프공처럼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골프공을 가지고 노는 장면도 있어요. ‘내가 너희들을 가지고 논다’ 그런 상징성이 있죠. 어쩌면 뜬금없는 공간을 선택하고 만든 거예요.”
추창민 감독은 1232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한 바.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 이르다’는 한 줄 글귀에서 출발한 팩션 사극이다. 역사적 사건 속에 가려진 인물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증명하기도.
“영화는 판타지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사랑하고 싶을 때 멜로를 보고, 재밌고 싶을 땐 코미디를 보고.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지만 액션물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잖아요. 영화는 판타지, 대리만족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역사적 팩트를 가지고 와서 훨씬 더 힘이 커진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어떻게 가지고 와서 판타지를 풀까 그게 중요했어요. 그러나 거리가 헐거워선 안 됐죠. 상상력을 끼워 넣는데 어떤 건 말이 안 될 수 있고, 재밌을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 채워 넣는 거예요. 전체적인 이야기의 80~90%는 다큐지만 가공된 인물 정인후, 가공된 장면 골프장 등이 들어가는 거죠.”
‘행복의 나라’는 역사의 이면,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 추창민 감독은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을 통해 단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도 풀어내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광해’를 찍은 후 광해가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꼽힌 적 있어요. 그만큼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하죠. 감독 입장에서 보여줄 게 있다면 최대한 진실 되게 표현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건 재판 장면, 역사적 기록이에요. ‘광해’ 때도 궁 장면이 그렇죠. 10~20년이 지난 후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시대 군사법정은 이랬어’라는 자료가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몇몇 장면은 이런 시대가 진짜 있었으니까 한 번쯤은 ‘이 시대는 이랬구나’ 정도로 봐주셨으면 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