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군' 차승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얼굴에 대한 갈증[인터뷰]
- 입력 2024. 08.30. 09: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낙원의 밤' 처음 제의 들어왔을 때 '왜 저한테 주냐'고 물어봤어요. 박훈정 감독님이 '그냥 잘할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믿음이 작품에 더 깊이 들어갈 동기부여가 돼요. 기분 좋은 긴장감이죠."
차승원
'믿는 감독' 박훈정과 '믿을 수 있는' 배우 차승원의 두 번째 만남이다.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인연에 대한 소망. 차승원의 갈증을 채워준 '폭군'이다.
'폭군'은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 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추격 액션 스릴러다. 차승원은 극 중 은퇴한 에이스 '청소부' 임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2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임상은 촌스러운 이대팔 가르마, 올드한 음악 취향 등 어수룩한 외모와는 대조되는 망설임 없는 작전 수행으로 초반 극의 긴장감을 확실히 끌어올렸다.
"임상은 20년 넘게 일을 했으니까, 공무원처럼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에요. 한 직장에 오래 몸담고 있으면 그렇잖아요. '쇼생크 탈출'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공허함을 느끼는 것처럼, 한곳에 오래 머문 그런 사람으로 그렸어요. 그래서 총을 들고 액션을 할 때는 민첩하지만 다른 것들은 굼뜨게 설정했죠. 총을 쏠 때나 죽이고자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민첩하고 간결하잖아요. 감염된 주인집 남자 했을 때도 바로 죽이는 것도 그런 디테일에서 나왔죠."
임상은 기차 안에 카페를 꾸미고 싶다는 꿈을 지닌 은퇴한 국정원 요원이라는 소박한(?) 캐릭터다. 그러나 현실은 인테리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겨우 마련한 기차에 비닐을 깔고 고문과 살인이 동반한 임무를 이어간다.
"한 량짜리 기차가 임상의 메타포라고 생각했어요. 막 달려가는 기차였다가 어디 한 군데 정착하고 안주하고 싶은 남자. 들판에 덩그러니 딱 떨어진 남자 말이에요. 그 공간 안에서 임상이 고문을 하고 그런 기괴한 것들이 좋았어요. 대비감이 있잖아요. 그런 포인트가 없었으면 평이한 캐릭터가 됐을 거예요. 다들 왜 이 사람이 '괴물 아저씨'라고 부르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좋았어요."
차승원은 앞서 '낙원의 밤' 마이사, '독전' 브라이언 등의 캐릭터로 차가운 액션 배우로서의 면모를 선보인 데 이어 '청소부' 임상 역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폭군'을 보며 마이사, 브라이언을 떠올리는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임상이란 사람이 달랐던 건 뭐냐면 바로 산탄총을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무기가 있고 그 총은 곧 임상이죠. 산탄총도 어떻게 보면 임상의 메타포에요. 어디서 팔지 않을 만큼 오래됐지만 묵직하고 화력이 세죠. 브라이언도 존댓말하고 같은 선상에 있지만 그런 것으로 캐릭터 변별력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폭군'은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한적으로 던져주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임상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인지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전히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다. 임상을 그려낸 차승원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인물을 완성했을까.
"처음 딱 등장해서 기자 흉내를 내잖아요. 기자처럼 보이기 위해 임상 딴에는 단정하게 치장한 거예요. 거기서 이제 '너무 많이 발랐나' 그런 건 다 애드리브예요. 죽이고 손 씻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것들은 '임상이라면 이런 행동을 한번 하고 넘어가지 않을까?' 해서 현장에서 만들어진 장면들이에요. 그렇게 시도하다 보면 캐릭터가 촘촘해지고 어느 정도 지나다 보면 몸에 익어서 안 나오는 다른 행동들도 불쑥불쑥 튀어나와요.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게 연기죠. 또 박훈정 감독님과 잡담을 많이 나눴어요. 이 사람이 요원이었을 때는 이런 성격이었을 거다, 하는 잡담들이 모여서 캐릭터를 완성하는 한 지점이 돼죠. 시나리오가 나와 있지만 그 사람의 전사, 다른 인물이 이걸 하고 있을 때 이 사람은 뭘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차승원은 이번 작품에서 채자경 역을 맡은 조윤수와 주로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오히려 최 국장(김선호)과 임상의 관계가 명쾌히 밝혀지지 않아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의문을 품는 시청자가 많다. 차승원은 "단순한 선후배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임상이 조직의 선배죠. 하지만 바둑을 둘 때 아무리 후배여도 급수가 높아지면 어른 같아 보이는 것처럼 최 국장은 임상에게 '이 조직을 온전히 맡겨도 괜찮을 것 같은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을 거에요. 임상이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은 출중하지만, 최 국장은 조직의 미래라는 큰 짐을 껴안고 가는 힘이 훨씬 출중한 거죠. 임상이 최 국장의 사상을 공유했을 것 같아요. 임상이라는 사람이 기차 인테리어를 마무리하고자 임무를 주는 대로 했을 거로 생각하진 않아요. 또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 오래 있었고 최 국장이 임상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을까 유추할 수 있죠."
'폭군'의 인기와 함께 박훈정 감독의 또 다른 영화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도 플릭스패트롤 디즈니+ 한국 영화 부문 6일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지난 21일 디즈니+ 대만 영화 부문 5위에 진입했다. '박훈정 유니버스'에 대한 관심에 또 다시 불을 지핀 것. 차승원 역시 '폭군 세계관'과 '마녀 세계관'이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야기가 계속되면 '마녀'와 만나게 될 거예요. 세계관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는데 박훈정 감독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졌죠. 임상은 안 죽었어요. 자경이가 아니라 제3의 종족이 데려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종족은 완성된 '폭군' 종족이에요. 아마 임상도 그에 준하는 능력치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단순히 임상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까 그 종족이 실험체로 써서 그런 능력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감독님이 써야지 되는 거죠.(웃음) 임상 프리퀄 얘기도 나눈 적이 있어요. 아마 집필을 시작하지 않으셨을까요?"
차승원은 영화 '전,란', '어쩔수가없다', 드라마 '돼지우리',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6' 등 다양한 장르의 차기작들을 줄줄이 예고했다. 가히 전성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 그는 "전성기는 지났다"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전성기가 이미 지난 건 사실이죠. 전성기는 계속 이목과 시선을 끌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전성긴데 그런 나이는 지나지 않았는지 생각해요. 지금은 화제를 일으킬 뭔가 없더라도 (대중이)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정도 상태에서 만족도를 느끼면서 일을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예전보다 (작품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전성기는 아니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과히 나쁘지 않아요."
그러면서 새로운 얼굴을 찾아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배우로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전했다. 다만 하고 또 해도 로맨틱 코미디는 늦기 전에 다시 하고 싶다며 "하면 잘한다. 제가 숨겨둔 무기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를 해야 보여드릴 수 있다. '최고의 사랑' 때처럼 인물을 인수분해 해서 보여드리겠다"라고 열의를 보였다.
"저는 새로운 분들의 선택을 받는 게 기분 좋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끊임없이 접점 없는 감독님들한테 콜이 들어오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떻게 승부하고 싶다, 이런 것보다는 다른 감독님들이 계속해서 저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 주시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또 작업 이후에도 기분 좋게 끝날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죠. 시간이 흘러서 '이 배우한테 또 주면 좋겠는데' 생각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우리들의 블루스' 때 노희경 작가님한테도 그랬어요. '왜 이걸 저한테 주냐'고. 그랬더니 노희경 작가님이 '차 배우님한테는 그런 얼굴이 있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럴 때 희열을 느껴요."
어느덧 차승원은 연기 인생 30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배우로서 그가 지키고 있는 첫 번째 원칙은 '항상 조심하자'라는데, 누리고 있는 것이 많은 만큼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일이라고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1996년부터 모델 하다가 방송, 영화를 찍고 했어요. 2년 있으면 30년이 되네요. 엄청 많이 누리고 산 것 같아요. 지금도 많이 누리고 있고. 항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내가 이 정도로 값어치 있는 인물인가에 대한 생각이에요. 한편으로 조심스럽죠. 조심하자는 게 항상 첫 번째예요. 조심해서 자존감이 떨어질 거면 배우를 그만둬야죠. 특별한 일 없이 지금 이대로만 잘했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그리고 새로운 얼굴을 찾아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의 희열을 에너지 삼아서 변주하고 발전해 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작품을 해서 어디 가서 뭘 받고 싶다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지금처럼만 잘해서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면서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