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군'이 보여준 김선호의 확장 가능성[인터뷰]
- 입력 2024. 09.02. 13:10:33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김선호는 지난해 영화 '귀공자'로 박훈정 감독을 만나 누아르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당시 누적 관객 68만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는데, 1년 만에 '폭군'으로 완벽히 설욕에 성공했다.
김선호
'마녀' 세계관을 이어받은 디즈니+ 오리지널 '폭군'은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 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추격 액션 스릴러로, 지난달 14일 전체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김선호는 극 중에서 '폭군 프로그램'을 끝까지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트 요원 '최 국장' 역을 맡았다. 최 국장은 국가에 대한 신념 하나로 국정원 이너써클의 리더로서 '폭군 프로그램'을 강행해 온 인물. 김선호는 '최연소 국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최 국장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쳤다고 밝혔다.
"'귀공자' 끝날 때쯤 박훈정 감독님과 산책하다가 참여하게 됐어요. 원래 산책하면서 감독님께서 작품 구상한 걸 많이 얘기하시거든요. 갑자기 어느 날 '폭군'에 대해 얘기하셨고 '할래?' 하시면서 대본을 보내주셨어요. 최 국장은 극 중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신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에요. 저한테는 사실 리스크 아닌 리스크가 있었어요. 생김새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했죠. 제가 한 선택은 결국 내적인 걸 더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최 국장이 말이 많은 인물은 아니거든요. 프로젝트 진행시키고, 숨기고 또 끌고 나가는 수장으로서 무게감이 있는 인물이죠. 뚝심 있고 직선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또한 최 국장은 국가에 대한 강한 신념이 돋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 국장의 강한 신념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질문에 김선호는 "원래도 애국심이 있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선배들을 보며 배워 온 것"이라고 답했다.
"최 국장은 선배들의 희생 과정 봐왔을 거예요. 어려서부터 국정원에 발탁돼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더욱 신념이 강해진 거죠. 선배들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최 국장이라는 인물이 그거 하나로 움직인다고 봤죠. '우리 식구들'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대사가 최 국장을 가장 잘 표현하는 대사인 것 같아요."
이러한 신념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폐쇄된 공간에서 폴(김강우)에게 "왜 우리는 하면 안 되냐?"라고 반문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김선호는 폴과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장면이 많았지만, 연기하며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폴과 벤치에 앉아 대학교 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그 장면에서 많은 움직임 없이 어떻게 폴을 적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대본에는 '째려보며' 이렇게만 쓰여 있었어요. 나머지는 제가 만들어야 하는 건데 이 사람과 나의 다름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죠. 폴은 계속 깐족거리니까 최대한 움직임을 적게 하고 감정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해서 계속 절제했어요. 그게 되게 힘들더라고요. 속으로 '그래 말리지 말자. 다 폴이 알고 있다'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연기했어요."
반면 가장 잘 표현하고 싶었던, 욕심나는 장면으로는 사 국장(김주헌)과의 토스트 씬을 꼽았다.
"토스트 씬부터 식당에서 걸어 나올 때의 쓸쓸함이 묻은 최 국장이 인상 깊었어요. 죽음까지 각오한 피폐한 최 국장을 어떤 능구렁이 같은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토스트 씬에서 밖에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거기서 의도적으로 더 능글맞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는 쓸쓸하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끝내서 극대화한 거죠."
내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지만 '피폐해지고 초췌해진' 최 국장을 표현하기 위해 외적인 노력도 최대한 기울였다. 김선호는 자신이 겪은 수염, 주근깨, 다이어트 등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하나씩 늘어놨다.
"처음에는 인물이 수염을 그려볼지 고민도 했어요. 한번 해보고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지웠죠. 또 국정원 요원들은 일반인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머리도 세팅 안 하려고 했죠. 6~7kg 정도 감량했어요. 대본에 계속 '피폐하고 초췌하다' 이런 단어들이 나와서 제가 그냥 뺐어요. 따로 감독님께서 빼라는 말은 없으셨고 배우의 몫이라고 남겨두셨던 것 같아요."
결국, 최 국장이 열의를 기울인 '폭군 프로그램'은 채자경(조윤수)을 통해 완성됐다. 하지만 최 국장은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김선호는 "최 국장이 죽는 순간 희열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찾았다', '되는구나'라는 감상과 동시에 '끝났다'는 확신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다 끌어안고 가면 정보가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웃을 때 희열을 느꼈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촬영하면서는 무서웠어요. 방아쇠를 진짜 당기는데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어서. 리허설하면서 계속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웃음)"
김선호는 '귀공자' 이후 박훈정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이다. 그는 "소통이 빨라졌다.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을 빠르게 캐치하고 조금 더 잘 전달해 줄 수 있었다. '귀공자' 때는 감독님과 제가 어색했던 사이였다"라고 달라진 점을 얘기했다.
"외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내적으로만 연기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도전이니까요. 겁이 났죠. 배우는 보여주는 직업이고 평가받을 수 있으니까. 감독님께서 '그것보다 재밌을 수 있어', '한 번 더 해볼까?' 이런 식으로 믿어주고 응원해 주셔서 불안함은 사라지고 캐릭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분석하는 시간만 남았던 것 같아요."
'귀공자'부터 '폭군'까지 박훈정 감독과 작품을 연달아 하며 김선호는 '로코킹'에서 '누아르 킹'으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다.
"점점 배워가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누아르는 언어보다 침묵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침묵을 통해 날선 감정들이 잘 전달될 수 있구나, 하는 것들이요. 템포감 있는 작품들은 침묵 짧게 활용해서 재치 있게 표현하잖아요. 누아르는 말하지 않았을 때 궁금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말하지 않는 순간을 어떻게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걸 공부했죠."
새로운 도전으로 성취감을 톡톡히 느끼고 있을 김선호. 그는 "배우 김선호로서 연기하는 게 가장 재밌고 즐겁다. 안 풀리면 3일이 힘들고 잘 풀리면 3일이 즐겁다. 고민하고 좌절하는 순간까지 즐겁다"라고 연기에 대한 진심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는데, 동시에 더 잘하기 위해 계속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실패와 성공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가 연기하는 걸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이 있어서 제가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제게 실망하지 않게 하려면 조금 더 겁내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최소한 그 인물처럼 서 있을 수 있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로 보답하겠다 뻔하지만 맞는 말이죠. 도전하지 않으면 또 같은 걸 하는 거니까 연기가 늘고 싶고 느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데 연기에는 교과서가 없어요.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일상에서 풀어져도 보고 정돈해 보기도 하고 도전하면서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