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1편과 다른 길의 ‘베테랑2’, 체급 올려 도전하고 싶었다” [인터뷰]
입력 2024. 09.20. 16:12:41

'베테랑2' 류승완 감독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박스오피스 손익분기를 넘기는 건 기본이지만 최종목표는 아니에요. 관객들의 응원을 받는 게 저에게는 더 중요하죠. 좀 다른 룰 경기를 한 번 뛰어보더라도 ‘이 친구들이 이만큼 다른 걸 해보고, 새로운 걸 해보려고 애썼구나. 정성이 갸륵하네’ 그런 말을 들어보려고 시간들이 쌓인 거예요.”

2015년 개봉된 ‘베테랑’ 1편은 최종 1341만 관객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대개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은 속편 제작에 박차를 가하지만 ‘베테랑’ 2편이 세상에 나오기까진 9년의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잠깐 숨고르기가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영화 분위기가 좋은 현장은 배우들과 ‘2편을 어떻게 할까?’라며 스토리도 얘기해요. 그런데 ‘베테랑’이 특별했던 건 구체적이었죠. 구체적이라는 건 황정민 선배도, 저도, 서도철은 ‘비버리 힐스 캅’의 에디 머피가 입는 야구점퍼처럼 같은 옷을 입고 나와야 한다며 의상팀에게 서도철의 점퍼를 맡기기도 했어요. 무언의 약속처럼 ‘꼭 해야지’ 싶었던 거죠. 애정도가 높았으니까요.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구체적으로 속편을 준비한 건 처음이에요. ‘베테랑’ 1편은 투자배급사의 1번 타자가 아니었어요. 개봉도 밀리고, 밀려서 다음 해 여름에 했거든요. 박스오피스 목표도 400만이면 ‘대성공이다’라고 했는데 3배가 넘는 스코어를 기록했어요. 너무 넘어가니까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숨고르기가 필요했던 거예요.”



‘베테랑2’는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 베테랑 서도철 형사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액션범죄수사극이다. 박선우는 사적 제재를 가하는 ‘해치’로도 활동하는 인물. ‘베테랑2’는 해치라 불리는 한 개인이 사회 부조리를 사적 제재하자 대중이 이에 열광하는 모습을 다루면서 범죄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찰한다.

“‘베테랑’ 1편을 만들 때 출발은 ‘개인의 분노’였어요. 제가 만드는 영화로 사적 복수를 하자였죠. 그런데 너무 큰 성공을 거두고, 사회적 이슈로 이 영화가 소환됐어요. 심지어 뉴스 프로그램에서 소환돼 사회적 현상처럼 되어버렸죠. 이 영화는 그렇게 엄청 고민하며 만든 게 아닌, 화풀이처럼 만든 영화인데 이후 젊은 시대들이 ‘사이다 장르’라면서 소비하는 게 맞나 싶더라고요. 제 안에 변화가 일어난 결정적 사건은 시간이 흘러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게 나오면서였어요. 처음 가해자라 믿었던 상대에 대한 비난의 온도와 실체가 바뀌었을 때 진짜 가해자를 대하는 온도가 미지근해졌죠. 남 일이니까 책임질 일도 없잖아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지’ 하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착각하고, 비난한 제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길을 찾는 걸 보면서 제 자신이 추접스럽게 느껴졌어요.”

‘베테랑’ 1편은 사법제도로 응징할 수 없는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용인했던 서도철의 가치관이 녹여있다. 안하무인 재벌 3세의 부조리를 처단하는 속 시원한 내용으로 ‘사이다’란 평을 받기도. 전편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었겠지만 ‘베테랑2’는 그러지 않았다. 서도철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들과 모순된 행동들의 문제를 자각하면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내용을 담아낸 것. 류승완 감독은 1편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반성했다.

“우리가 부르는 ‘정의’라는 것이 어떤 정의로 된 것인가. 무지성적인 신념만큼 위험한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편은 너무 심플하게 악의 대상을 정해놓고, 무지성적으로 시원한 걸 얻어냈잖아요. 그래서 ‘사이다 장르’라는 말도 생겨났고요. 사이다를 한 번 마셨고, 트림도 했는데 막힌 게 안 내려갔다면 손을 한 번 따보잖아요. 따끔 하는 순간이 아프더라도 말이죠. 9년이란 시간 사이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원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영웅들이 많이 나타났지만 ‘베테랑’은 다른 길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성장된 주인공을 보여주는 게 관객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싶었죠. 제 딴에는 조금이라도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응원하는 선수가 챔피언이 돼서 벨트를 땄는데 체급을 올려 도전한다면 더 응원하게 되잖아요. 박스오피스 손익분기를 넘기는 건 기본이지만 최종목표는 아니에요. 관객들의 응원을 받는 게 저에게는 더 중요하죠. 좀 다른 룰 경기를 한 번 뛰어보더라도 ‘이 친구들이 이만큼 다른 걸 해보고, 새로운 걸 해보려고 애썼구나. 정성이 갸륵하네’ 그런 말을 들어보려고 시간들이 쌓인 거예요.”



영화는 ‘죄 지은 놈 때려 잡는다’는 ‘형사’ 서도철의 직업정신뿐 아니라,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갈등하는 ‘인간’ 서도철의 진정성과 치열한 고민까지 조명한다. 1편에서 서도철은 친구와 싸우고 온 초등학생 아들을 향해 ‘어디서 줘터지고 오는 건 못 참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2편에서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아들이 피해자가 되자 서도철은 말문이 막히고, 이후 아들에게 “아빠가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한다. 즉, ‘베테랑2’는 관객들에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어른은 얼마나 값지고, 귀한가란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 내내 ‘이걸 만들려고 이 길을 선택한 거지’라고 한 순간이 3번 정도 있었어요. 마지막 격투에서 해치가 서도철의 예상치 못한 반격으로 위험해지니까 서도철에게 다른 위험을 선사하고 빠져나가요. 그때 서도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3가지 있었어요. 해치를 쫓아가는 1번, 동물적인 반응으로 일단 빠져나가는 2번. 그런데 서도철은 좋아하지 않는 대상임에도 위험에 처하니 끌어안는 3번을 선택해요. 그게 서도철이라 생각했어요. 기존 장르에서 보인 영웅의 모습과 다른 태도였죠. 서도철의 근본적인 인간적 도리를 다하는 모습이랄까. 직업윤리를 넘어서는 한 인간 서도철의 상태였어요. 다음은 해치를 CPR로 살리는 장면이에요. 그걸 찍는 동안에도 서도철의 행동에 저 스스로 되게 뭉클했죠. 죽어버렸으면 좋겠는 사람인데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전문가의 삶,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은 1편에서 서도철은 초등학생인 애한테 ‘어디서 줘터지고 오는 건 못 참는다’고 지나가는 말로 해요. 자신이 키운 아이가 학폭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인과 이유, 목적을 모르겠는 해치를 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죠. 사회, 대중적으로 액션 영웅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 거창하고, 어렵고, 심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인정하는 모습. 조금 더 나아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중들로부터 ‘해치’라 불리는 인물은 사법체계 밖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일명 ‘눈눈이이’ 식으로 악인들을 처단한다. 자신을 ‘정의의 사도’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사적 제재를 일삼는, 살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죽어 마땅한 자들을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일 뿐이다. 이에 서도철 형사도 “사람 죽이는데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어? 살인은 살인이야”라며 모든 살인을 ‘범죄’로 규정한다. ‘베테랑2’는 서도철 형사의 대사를 통해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와 그 구분의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해치를 반전의 코드로 활용하는 버전과 왜 해치가 됐는지 서도철이 파악해가는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젊은 배우를 스타캐스팅 해놓으니 대중들은 이미 ‘빌런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베테랑2’는 누가 빌런인지 중요한 영화가 아니에요. 후반부 터널 장면을 보면 박선우(해치)가 서도철의 말을 채집해 편집한 걸 들려줘요. 서도철은 기본적으로 젊은 시절 해치처럼 됐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인 거예요. 이 사람의 주변 인물들, 자기가 선택하는 여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서도철을 만든 거죠. 박선우는 조금 달랐던 선택을 하고요. 처음 이들의 출발은 아주 미세한 간격이 있었을 뿐이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간격이었는데 시간의 흐름, 삶의 태도들이 쌓이면서 거리가 벌어진 두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박선우는 자신의 행위를 분명히 즐기는 사람이죠. 나르시시즘이 있고,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자,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박선우가 착각했던 지점은 서도철의 아들과 가족을 쥐면 서도철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서도철은 엉뚱한 선택을 하잖아요. 서도철의 직업윤리는 해치가 가진 데이터 안에 없었던 거예요. 해치는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1도 없고, 그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거든요. 서도철과 박선우는 동전의 양면 같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다른 화폐인 거예요. 연출할 때도 거울에 반사된 포커스, 그림자를 표현한 것도 의도적이었어요. 서도철과 해치는 같은 종류의 인간인 것 같지만, 결국 서도철이 극복해내면서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란 의도를 보여주고 싶었죠.”

‘베테랑2’는 일명 ‘도파민 중독’을 부르는 각종 영상 쇼츠,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에서 시작됐다. 범람하는 콘텐츠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접하는 영상들이 어쩌면 실재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알고리즘에 의해 정보가 제공되거나, 차단되는 사회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류승완 감독의 시선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각해볼만한 화두를 제시한다.

“제가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어디까지 사실이고, 해석된 것이고, 뭐가 진실인지. 사이버 렉카를 선택한 것은 우리가 구사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대중들이 정보를 유통하고 소비하고 해석하는 환경이 흘러가기 때문이었어요. 그렇다면 ‘종이 신물 시절에 이런 일이 없었냐?’고 하면, 그 시절에도 가짜뉴스와 황색언론으로 피해가 있었어요. 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증권가 지라시가 있었는데 기술의 발전에 따른 형태만 달리할 뿐이지 계속 그런 것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일으켜왔죠. 그런 것들을 활용하는 사람들, 확대‧재생산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이 정도는 해도 되지 뭐’라는 게 쌓여 사회적 여파를 만들어내잖아요. 그 크기들은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너무 큰 여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공포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일반인이 예능에 출연하고 나면 유튜브에서는 출연자들을 둘러싼 가짜뉴스가 몇 십 개 단위로 올라온다더라고요. 크고, 작게 그런 것들을 주변에서 경험했어요. 그리고 사람이 죽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해요.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익을 취해야 하나?’ 그런 마음들이 이 영화에 영향을 미친 거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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