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와 흥수의 냉동 블루베리, ‘대도시의 사랑법’ [씨네리뷰]
입력 2024. 09.26. 07:00:00

'대도시의 사랑법'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투톤 헤어에 호피무늬 치마, 그리고 빨간 캔버스화. 시선을 싹쓸이하는 과감한 스타일과 재는 법 없고, 눈치 보는 법 없이 사는 재희(김고은)는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무성하지만 재희는 책은 책대로, 술은 술대로 마음껏 즐기며 최선을 다해 오늘만 산다.

열정(?)적인 재희와 반대로 흥수(노상현)는 학교도, 여자도, 연애도 흥미 ‘없을 무(無)’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기에 누구에게나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흥수는 가족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재희에게 들키고 만다.

‘인생 망했다’는 흥수를 향해 재희는 무심한 얼굴로 반문한다. “네가 너인 게 약점은 아니잖아”라고. 알고 보니 연애 빼고, 모든 라이프스타일이 통하는 재희와 흥수. 두 사람은 남들이 만들어내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의기투합 동거 라이프’를 시작한다.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은 눈치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와 세상에 거리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가 동거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 영화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딱딱하고, 차갑다가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새콤하고, 상큼하다. 딱딱하게 얼어있던 게 말랑하게 녹자 어느덧 달콤하게 목구멍 속으로 넘어간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마치 재희와 흥수가 냉동고에 얼려뒀다가 갓 꺼내 먹는 ‘블루베리’같다.



영화는 20살부터 33살까지 재희와 흥수가 함께하는 13년의 세월을 보여준다. 긴 시간을 경쾌한 리듬과 빠른 속도로 그려내 지루할 틈 없다. 초반에는 서로를 의지하고, 지켜주는 ‘관계성’을 보여준다면 중후반부에 들어선 ‘성장’의 서사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너 자신을 잃지 말라’는 이언희 감독의 메시지가 따스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퀴어’를 소재로 하기에 어쩌면 판타지로 다가올 수 있지만 영화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동성애 혐오, 데이트 폭력 등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사회적 문제를 직시한다.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시각을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담아낸 점은 ‘대도시의 사랑법’만의 미덕이다.

이야기에 힘을 싣는 건 김고은, 노상현 두 배우의 열연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영화 ‘파묘’로 천만 관객을 사로잡았던 김고은은 무당 화림의 얼굴을 완벽하게 지웠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연애에 진심을 다하는 재희로 돌아온 그는 거침없는 모습 속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한다.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에서 이삭 역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노상현도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복잡한 감정을 지닌 흥수를 섬세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김고은과 ‘동거동락 케미’를 보여줘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 짓게 만든다. 스크린 속이 아닌, 현실 어딘가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인물로 완성해낸 두 사람이다.

곳곳에 설치된 유머와 사이다 발언, 그리고 20대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테일한 요소들도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과 함께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 동명의 소설집에 실린 ‘재희’를 원작으로 한다. 오는 10월 1일 개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은 118분.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