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김고은 “재희 사랑 방식? 속 터졌죠” [인터뷰]
입력 2024. 10.02. 08:00:00

'대도시의 사랑법' 김고은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매 작품 얼굴을 갈아 끼우는 배우 김고은이 이번엔 남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운 인생관을 가진 재희로 분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완벽한 ‘캐아일체’(캐릭터+물아일체)를 보여주는 그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은 눈치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와 세상에 거리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가 ‘동거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 영화다. 김고은이 연기한 재희는 남 눈치 보는 법 없고, 돈이 없으면 스쿠터를 팔아서 술을 마실 정도로 본능에 충실한 인물이다. 어디서든 눈에 띄며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재희라는 인물을 처음 접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친한 언니가 된 것 마냥, ‘저렇게 행동하니까 오해 받지’라는 생각도 들었죠. 제가 연기할 땐 보는 관객들이 재희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재희의 이면에 대해선 저 아이가 표현되기까지 성장 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아픔, 표현적으로 서툴고, 혹은 너무나 날 서있고, 이런 부분들이 짠해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죠. 까딱 잘못하면 ‘저러니까 저러지’라는 이야기를 들을 법 했거든요. 재희를 대변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재희와 ‘동거동락’하는 흥수는 사랑은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라 생각하며 모든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재희와 흥수는 성향은 다르지만 가진 건 패기뿐인 대학 시절부터 직장, 결혼 등 현실적인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까지 13년에 걸친 ‘성장’을 보여준다.

“20대에서 30대 넘어가는 시기가 다 우리네 삶인 것 같아요. 저도 겪었고, 제 친구들, 주변인들 모두 그 시기를 안 겪은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어떤 방식으로 겪었냐의 차이죠. 내면의 갈등과 생각들이 충돌하거나 사회가 원하는 방향과 내가 생각하는 게 달라 충돌하기도 하잖아요. 20대가 되고, 사회에 던져졌을 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무지한 상태에서 실전에 투입되는 기분인데 그런 것들이 이 이야기 안에 두 인물을 통해 잘 담겼다고 생각해요. 공감이 많이 갔던 포인트이기도 하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재희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고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하고 싶은 건 후회 없이 성취하는 행동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소리를 거침없이 입 밖으로 꺼내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재희의 자유분방함은 외적인 스타일링에서도 드러나 눈길을 끈다.

“재희를 ‘자유분방하다, 튄다’ 등 단어적으로 표현하면 ‘노출 심한 옷을 입는다, 패션을 좋아한다, 패셔너블하다’ 등 단순하게 표현이 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유로워 보이는 튀는 모습들이 옷 입는 스타일에서도 ‘저 상의에 하의가 맞아?’라는 매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신발도 자세히 보시면 맨발에 거의 꺾어 신어요. 그런 식으로 입고 싶은 대로 입는 재희죠.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는 느낌 보다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길이의 바지라도 누구는 다리를 오므리고 앉는다면 재희는 무신경하게 앉죠. 또 숙일 때 옷을 여미지 않는다던지 등 태도를 통해 과감하고, 자유분방하게 느껴지길 원했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 동명의 소설집에 실린 ‘재희’를 원작으로 한다.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된 바.

“원작은 읽지 않았는데 재희가 흥수에게 하는 이야기, 흥수가 재희에게 하는 이야기, 서로 싸우는 이야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자신에게 싫은 걸 상대방에게 한다고 생각했죠. 재희와 흥수는 너무 닮아있어요. 고슴도치처럼 날 서 있는 흥수의 모습이 재희와 닮아있다고 느껴서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죠. 대사 중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라는 말도 재희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했던, 스스로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제일 듣고 싶은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해왔던 말인 거죠. 흥수에게 해주는, 어떻게 보면 재희에게 진실 되고, 큰 위로의 말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드라마 ‘작은 아씨들’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현실 공감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올해 초 1191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에서 무당 이화림 역을 통해 강렬한 캐릭터 변신으로 호평 받았던 김고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약 중인 그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좋은 대본인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요. 작품을 안 하면서 이걸 기다렸다면 어려웠겠지만 그 시간 동안 상당히 많은 작품을 하면서 이 작품이 메이드 되길 바랐죠. 메이드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저는 빠지지 않을 테니, 메이드가 될 수 있게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저의 솔직한 마음은 이게 안 만들어지기엔 너무 아까운 대본이란 생각이었죠. 공감가고, 디테일하게 서사를 그린 작품 자체가 잘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소소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안 나오니까. 그래서 더 귀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거침없는 매력의 재희는 누구보다 사랑에 진심이다. 상대 남자들과 펼치는 연에 에피소드는 극의 웃음과 재미를 책임진다. 하지만 그런 재희의 이면에는 모두가 가질 법한 고민과 상처를 가지고 있어 보는 이들의 공감대를 자아낼 터.

“재희의 사랑 방식이 속 터졌어요. 재희는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이 큰 아이죠. 그 친구가 가장 예민한 시기, 사춘기에 큰 상처를 받았는데 그것에 대한 치유를 못 받았다고 생각해요. 스크래치가 그대로 나있는 상태에서 나이가 든 친구죠. 그것을 사람으로서 채우려고 굉장히 애를 쓰는? 그래서 남친을 만날 때도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보다,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했던 거예요. 우선순위가 1번인지, 아닌지에 집착하잖아요. 남자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 받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친한 친구나, 언니였으면 시행착오를 겪는 걸 지켜보는 입장에서 안타까웠을 것 같아요.”



영화는 재희와 흥수의 관계성과 성장의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너 자신을 잃지 말라’는 이언희 감독의 메시지가 읽히기도 한다.

“재희는 1순위가 중요했던 친구에요. 흥수가 재희에게 ‘결혼하는 상대에게 네가 1순위야?’라고 물었을 때 답을 못하고, 전화를 받긴 하지만 재희의 성장이 중요했죠. 후의 재희는 1순위가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게 됐어요. 그 사람과 있을 때 온전한 내가 되고, 나다운 모습으로 그 사람 앞에 서있을 수 있는 게 재희의 성장이자 결말이었죠.”

재희의 13년이란 시간을 연기하며 성장을 담아낸 김고은. 스크린 밖을 빠져나온 김고은은 ‘인간 김고은’으로서, ‘나다움’을 발견했을까.

“성장이라는 건 당장 모르는 것 같아요. 몇 년이 지나고 났을 때 ‘나 성장했네?’라고 느끼는 포인트, 순간이 오는 것 같죠. 한 작품, 한 작품 끝날 때마다 자기반성을 하는 것 같아요. 운동선수들이 똑같은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확 성장해있듯 저도 그렇지 않을까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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