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스 인 아메리카' 유승호, 한계로 마주한 가능성 [인터뷰]
입력 2024. 10.11. 08:00:00

유승호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배우 유승호는 배우 데뷔 25년 차에 새로운 벽을 마주했다. 드라마, 영화 등에서 활약했던 그가 연극 무대에 오른 것. 유승호에게 높은 한계처럼 다가왔던 연극은 동시에 또 한번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원 :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이하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밀레니엄, 새 시대의 변화를 앞두고 동성애자, 흑인, 유대인, 몰몬교인, 에이즈 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정체성 혼란을 다룬 작품이다. 8월 6일부터 9월 28일까지 LG 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홀에서 진행됐다.

약 두달 간의 공연을 마친 유승호는 "한 회당 러닝타임이 3시간 20분이었다. 시간이 길다 보니 한 번 무대에 설 때마다 에너지 소비가 좀 큰 연극이었다"라며 "러닝타임도 길고, 총 공연이 60회라서 길게 느껴졌는데 어느순간 끝이 나니 시원섭섭하다"고 종연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이 금방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저희가 해결해야 될 것도 너무 많았고, 부딪힌 난관들이 많았었다. 그때 당시에는 이걸 어떻게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될지 정말 고민도 많이 했는데, 그런 것들조차도 끝나고 나니 추억이었고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데뷔 25년 차 배우에게도 첫 연극 무대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1985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기에, 작품을 이해하는 것부터 첫 난관으로 다가왔다.

"토니 커쉬너 작가님의 생각을 들어본 사람이 당연히 현장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오로지 연출님, 조연출님이 열심히 공부해서 작품을 해석하고, 우리와 함께 대본과 미국 역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했다. 또 작가님이 만든 작품을 훼손하면 안 되는 범위에서 한국 관객분들에게 재미도 줘야 했다. 이처럼 여러 문제들이 한 번에 작용해서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많은 것들이 얽혀있다 보니 그걸 잘 풀어나가야 하는 과정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정말 많았다."

유승호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난관은 환경 변화였다. 매체 연기와 극 연기는 큰 차이가 있었기에 유승호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극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절대 쉽게, 만만하게 보고 들어간 건 아니었다. 거의 주 6일씩 제가 낼 수 있는 시간을 다 빼서 2~3개월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데 처참했다. 단시간 안에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이 당연히 있었다. 저는 그걸 최대한 따라가려고는 했으나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배운 부분이 정말 많았다. 제가 해야 할 건 딱 하나였던 것 같다. 무대 경험이 없으니 그만큼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으로 회차를 거듭하면서 빨리 해결해나가는 것에 집중했다."



유승호가 맡은 프라이어 월터는 루이스(이태빈·정경훈)의 연인이자 와스프 가문 출신의 성소수자 캐릭터다. 프라이어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유승호가 택한 방법은 '사랑'이라는 초점에 맞추어 접근하는 것이었다.

"먼저 성소수자와 에이즈를 주제로 한 영화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조연출님들이 미국 역사, 성소수자, 종교 관련해서 준비해주신 자료들을 다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제가 성소수자, 다른 인종, 종교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성소수자가 아니기에 최대한 그들이 생각하는 것에 근접하게 접근할 뿐,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걸 연기해야 하고, 이걸 받아들이고 보여드리기 위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인종, 종교는 잠시 접어두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성소수자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아픔의 감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결코 더 가볍거나 쉽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성소수자니까 우리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성소수자라는 그 단어를 잠시 내려두고 한 사람이라는 존재로 서로를 보자고 했다. 그거에 중점을 두고 집중하니 성소수자에 대한 걸림돌이 조금 내려가더라. 더불어서 병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느끼는 아픔이 결코 덜하지 않다. 그 아픔의 크기는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감정 자체에 접근해서 캐릭터를 대하고, 서로 사랑하고 아파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유승호는 함께 프라이어 역에 캐스팅됐던 손호준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해석을 참고해 공연 중에도 계속해서 캐릭터에 살을 붙여나갔다.

"제가 해석하는 프라이어와 호준 배우님의 프라이어는 당연히 달랐다. 큰 줄기는 같지만, 각자 살아온 본인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결의 프라이어가 나오더라. 하지만 서로가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서로의 해석에 존중했고, 몇몇 부분은 '저렇게 해석될 수 있겠구나' 하면서 느낀 점도 많았다. 사실 호준 배우님이 하는 것을 카피해와서 제 나름대로 가공을 더해 제 연기에 살을 붙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호준 배우님도 같더라. 이렇게 참고도 하고, 같이 고민해도 결국 서로 그린 프라이어는 다르지 않나. 이게 더블 캐스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서로 보완하면서 작업하려고 했다."



유승호가 최선을 다해 임했던 첫 연극이었기에 더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정말 많았다. 실시간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접하면서 연기하는 것도 새로웠고, 그날 공연이 끝나면 쏟아지는 피드백도 그에게는 익숙지 않았다.

"어느 정도 준비를 하면서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좋아하겠다, 아파하겠다 싶은 부분들이 있다. 그걸 배우들은 준비하면서 알 수 있다. 근데 그 부분을 선보였을 때 반응이 없으면 조금 흔들리더라. 맞은 편의 배우를 봐도 순간 내가 의도했던 것대로 흘러가지 않나 싶으면 수많은 눈빛이 옆으로 살짝 보이면서 흔들리더라. 그런데 당연히 무대 위 배우가 흔들리면 안 된다. 그래서 어떤 순간이 와도 내가 당황하지 말고 내가 할 걸 하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예상한 반응이 아니어도, 호응이 아쉬워도 흔들리면 극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도 정말 많이 단련했던 것 같다."

때로는 혹독한 피드백이 그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처음 평가를 마주했을 때는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나중에는 그것들을 통해 더욱 나은 무대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저는 무대가 처음이니까 무대에 많이 올랐던 배우분들을 따라서 하다가, 이후에 조금씩 반응을 찾아봤던 것 같다. 한 번 보니 끊지를 못하겠더라. 물론 저도 제 연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감을 갖고 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건데, 사실 관객분들이 주신 말이 정말 다 맞다. 부족한 게 많으니 당연히 그런 피드백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내용들을 보면서 가슴 아팠다. 저는 2~3개월이라는 시간을 할애해서 노력했기에 거기에 대해서 정말 마음이 좀 아프긴 했다. 그렇지만 내 감정이 아픈 것보다도 내가 뭐가 부족했을지를 알고 빨리 수정을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어쨌든 앞으로 남은 회차들이 많으니 이걸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당당하지 못한 연극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파도 그걸 해결하려고 진짜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집에 가서도 계속 웅얼거리고, 또 관객분들이 정확하게 집어서 피드백을 주셔서 그 부분을 더 신경 써서 수정하고, 그런식으로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유승호는 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연극 무대에 오를 건지 묻자 고민 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그는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내가 하기에는 너무 높은 영역이라는 것을 많이 느낀 것 같다. 연극이라는 장르는 당분간은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사실 끝나고 열흘 정도가 지나니 그리운 마음도 있다. 5개월 동안 매일매일 연극만 바라보고 살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고 오후쯤에 공연장으로 향하던 그 루틴이 너무 그립더라. 공연할 당시에 다른 배우분들이 '너 이거 그리워질 거야'라고 했던 말이 이제서야 많이 느껴지고 있다. 결과를 다 떠나서 나중에 나한테 또 좋은 작품으로 기회를 주는 분이 있다면 또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캐릭터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됐다. 똑같은 대본을 5개월간 보면서 점점 발전하는 제 모습을 확인했다. 첫 공연을 할 땐 '내가 할 수 있는 프라이어는 이게 다야'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떠한 캐릭터와 작품을 두고 내가 계속 노력하다 보면 더 나은 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공연을 통해 알았다. 또 같은 대사도 무작정 소리도 질러보고, 읊조리는 식으로도 시도해 보면서 내가 계속 곱씹으면 더 흥미로운 게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나중에 매체에 가서도 이 방법을 적용하면 나를 위한, 작품을 위한 길이자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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