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경구 “‘보통의 가족’, ‘니 부모~’와 전혀 다른 결의 영화” [인터뷰]
- 입력 2024. 10.12. 09: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많은 분들이 찾아와줬으면 해요.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보고 얘깃거리가 있는 영화가 좋은 것 같아요. 자녀들과 보시면 그 어떤 교육보다 훌륭한 교육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녀들과 영화관에 가서 보시면 각자의 생각들이 막 나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의 가족' 설경구 인터뷰
“뒷부분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헉’ 했죠. 원작에선 ‘쾅’하고 끝나는데 우리 영화에서는 (그 뒤를) 보여주니까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소리로만 들었을 때도 충격적이었는데 말이죠. 작년 토론토에서 봤는데 거기서도 충격을 받더라고요. 소리를 ‘악!’하고 질러 깜짝 놀랐어요.”
설경구는 극중 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변호사 재완 역을 맡았다. 비슷한 소재에 변호사 아버지 역할을 맡았기에 설경구가 출연했던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부분이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을까.
“‘니 부모’ 시사 때 허진호 감독님을 불렀어요. 같은 결이 아닌가 걱정했죠. 감독님은 다른 결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니 부모’에서는 학부모들이 다 악마가 되어있었잖아요. 그리고 선택하고, 집중해 돌격하죠. ‘보통의 가족’에서는 더 섬세하고, 디테일하고, 다양하고, 풍성하고, 일상적이라 전혀 다른 결이라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듯 아닌 작품이라 비교가 되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는 ‘아이들의 범죄를 마주한 부모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설경구는 사건 전과 후, 재완의 태도와 바뀌어가는 입장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굉장히 실리를 따지는 사람인데 여러 수를 두고 고민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수 했을 때, 경찰에게 잡혔을 때, 거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고요. 후배에게 통화해서 ‘형량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도요. 결정적인 건 CCTV 속 아이들의 대화가 너무 무서웠어요. 어떤 폭력적인 영화보다 더 폭력적이었죠. 결정이 내려진 건 재환이 여러 수를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재완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항상 이성적으로 생각한 것 같죠. 바뀐 건 재규예요. 재완은 일관적이었다고 해석했죠.”
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재완은 부모 중 유일하게 피해자를 찾아간다. 설경구는 “피해자 부모를 찾아간 것도 다르게 해석했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미안함도 있지만 졸렬한 인간이라 생각했어요. 가해자가 현장 가서 확인하듯 확인하고 싶었을 거예요. 돈을 찔러주는 것도 치졸했어요. 조금이라도 탕감 시키려는 재완의 모습이라 생각했죠. 비 오는 날에 가는 것도 우산으로 가리기 위해서였어요. 수술 장갑도 그래서 낀 것이고. 감독님이 장갑을 껴보자고 했는데 나쁘지 않더라고요. 돈을 찔러준 후 나올 때 장갑을 벗는데 그런 모습들이 치졸해보였어요. 자기 죄를 조금이라도 탕감시키려는 모습이 보였죠.”
설경구는 수현과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수현이 맡은 지수는 어린 아기를 키우지만 자기관리에 철저한 인물. CCTV를 본 후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가족 간에 일어나는 균열과 복잡한 감정선 사이, 정곡을 찌르는 연기와 함께 극의 흡입력을 끌어올린다.
“제 와이프가 중요한 역할인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배우 후보군을 두고 ‘누가 제일 (부부로) 안 맞을 것 같냐’고 했을 때 수현 씨를 골랐죠. 저와 최대한 언밸런스할 것 같은 인물을 골랐어요. 그런데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하고, 객관적으로 나와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죠. 그게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외형적으론 이질감이 있는 설정 자체가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비집고 들어오는 게 어려운 인물이기도 해요. 가족인데 가족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런데 툭툭 들어오는 걸 잘하더라고요. 가장 판단을 이성적으로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선입견이었던 거죠. 직위를 가진 사람에 대한 선입견. ‘트로피 와이프’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젊은 와이프를 데리고 사는 재완의 위치를 보여주려고 하는 거죠. 하지만 정작 안으로 들어왔을 땐 판단을 가장 정상적으로 하는 사람이에요. 수현 씨와 호흡도 좋았어요. 툭툭 던지는데도 목소리 톤도 제일 어른 같더라고요.”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 인기 작가 헤르만 코흐의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다. 연출은 섬세한 감정표현과 디테일한 연출력의 대가 허진호 감독이 맡았다.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덕혜옹주’ ‘천문: 하늘에 묻는다’와 같은 시대극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탁월한 연출력을 입증한 바.
“감독님과 하고 싶었어요. 어떤 작품이건. 감독님을 처음 뵌 게 99년도였죠. ‘박하사탕’으로 일본에 초청받아 개봉 전에 갔어요. 감독님은 ‘8월의 크리스마스’로 와계셨고요. 그때 술도 엄청 마셨어요. 감독님이 짐 싸들고 제 방으로 오시기도 했죠. 하하. 그때부터 계속 같이 작업하고 싶었어요. 20년 넘게 걸리긴 했지만요. 어느 날 만났을 때 감독님이 ‘같이 한 번 해야지?’라고 하시더라고요. 몇 달 있다가 이거 하자고. 읽어보고 결정한 게 아니라 바로 ‘네’라고 했죠. 감독님의 영화 색깔과는 맞다고 생각해요. 섬세하고, 디테일하고, 짜임새 있는 건 똑같다고 생각하죠. 이야기가 다를 뿐. 촘촘히 쌓아가는 게 극적으로 쌓는 게 아닌, 미세하게 쌓아가죠. 그건 같은 결인 것 같아요.”
‘보통의 가족’은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히는 북미 최대 영화제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 월드 프리미어 상영으로 전 세계 최초 공개됐다. 공식 상영을 앞두고 해외 103개국에 선판매된데 이어 제44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제39회 몽스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쾌거를 거뒀다. 국제 영화제 초청 19회라는 기록을 달성하면서 명실상부 웰메이드 서스펜스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토론토에서 상영한지 딱 1년 됐어요. 통하니까 반갑고 좋더라고. 문제는 한국이죠. 이 벽을 넘어야 하니까요. 무난히 잘 넘은 것 같은데 걱정도 있어요. 이 영화가 소비 성향과 맞는가 싶은 거죠. ‘보통의 가족’ 2도 아니고, 새롭게 까는 영화니까 관객들의 소비에 맞는 영화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영화죠. 자녀들과 와서 보면 한동안 말이 없다가 어느 순간 툭 대화가 될 것 같아요. 1시간 10분간의 교육이 몇 년간의 교육보다 훌륭하지 않을까 싶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마인드마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