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요한, '백설공주'로 마주한 배우로서의 책임감[인터뷰]
- 입력 2024. 10.14. 08: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저는 원래 온앤오프가 명확한 편이라 촬영이 끝나면 운동하고, 먹고, 자요. 그런데 '백설공주' 고정우라는 인물은 제가 지켜줘야 하는 포지션이라 그런지 연기를 하면서도 왔다 갔다 해서 힘들었죠. 역할과 제가 수평선을 이루지 못하고 (변요한이 고정우를) 멀리서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연기를 하면서도 삐걱대는 순간이 많았어요. 확신이 아닌 의심이 많이 들었는데 결론적으론 같이 외로워지는 게 답이더라고요."
변요한
"'백설공주'가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하고 시청자분들이 많은 사랑 주신 것 같아서 감사드려요. 저도 오랜만에 작품을 보니까 그때의 공기, 형태 등 모든 것들이 체감되더라고요. 고정우가 잘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극 중 변요한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고정우 역을 맡았다. 고정우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10년을 복역하고 나와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 변요한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던 고정우의 10대부터 믿었던 주변 인물들의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는 30대의 모습을 그려냈다.
'백설공주'는 사실 지난 2022년 촬영을 마쳤다. 편성 문제로 2년 만에 빛을 보게 됐는데, 변요한은 "저는 사실 걱정은 안 됐고 기대가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대충 만든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어느 시기에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됐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촬영 시기와 방영 시기에 차이가 있음에도 '백설공주'는 첫 회 2.8%로 시작해 '입소문 탔다', '꿀고구마다'라는 평을 들으며 최종화 8.8%로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변요한은 "기분 너무 좋았고, 스태프분들도 너무 좋아했다. '입소문 났다'는 말도 저한테는 너무 좋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실 다른 콘텐츠 나와서 (드라마) 홍보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안 했거든요. 작품의 성향상 배우들이 (콘텐츠에) 나와서 하하 웃고 싶지 않았어요.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작품 딱 던져놓고 기다려보고 싶었죠. 진심이 (어디서나) 다 통하진 않지만 유일하게 통하는 건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시청자분들이) 드라마는 마음에 와닿는 건 봐주신다고요. 그래서 도전해 봤고, 다행히 너무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해요. 변영주 감독님도 그렇고 다들 과감했어요. 프로모션도 작품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저희 스태프들의 노고를 알아주신 것 같아요."
변요한은 작품의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내 변영주 감독과 스태프들을 언급했다. 그는 "변영주 감독님 스태프들의 투혼 덕분이다. 일일이 말하면 밤새야 할 정도로 너무 많다"라며 "선배님들이 오히려 후배들이 기둥이 될 수 있게 뿌리를 잘 잡아주셔서 장면마다 뜨거움, 긴장감, 진정성을 느꼈다. 또 서주연 작가님의 엄청난 고민들, 그런 것들이 삼박자가 맞지 않았나 싶다"라고 공을 돌렸다.
'백설공주'는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만큼 드라마화하는 데 부담이 있었을 텐데, 그는 "부족함 없이 너무 잘됐다"라고 자평했다.
"그래서 다들 치열했고 작가님도 리메이크하면서 만만치 않은 에너지와 기질로 컨트롤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실 (작품을) 사 오지 말았어야죠. 그런 자신감들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완주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원작을 잘 참고하지 않는 편이라고 얘기했다. 변요한은 "책을 읽다가 닫았다. 저만의 방법이지만 원작이 있으면 첫인상이 어떤 인상인지, 어떤 사건인지까지만 읽고 감정표현이 섬세해지면 닫는 편이다. 너무 디테일해지면 자유로움이 없어진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고정우라는 인물은 특히 '살인자'라는 첫인상과 '진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계속해서 가지고 가야 하는 부분이 중요했는데,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들과 드라마로 처음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밸런스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첫 단추가 중요했어요. 원작 소설을 읽은 분들은 고정우가 살인범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수위도 맞춰줘야 하고, 범인일지 아닐지 갖고 가야 하는 지점도 있었죠. 제가 가진 딜레마를 갖고 가되 결국에는 변영주 감독님의 방향대로 갔던 것 같아요."
변요한은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의견을 많이 내는 편으로 알려졌다. 새벽에 감독과 통화를 마다하지 않는다는데, 그는 "새벽 러시 하긴 한다"라고 민망해 하면서도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라고 얘기했다.
"고정우는 힘이 없는 사람이라서 목소리를 내면 다 무시당해요. 아무리 프로타고니스트(주동 인물)라고 해도, 안타고니스트(반동 인물)들이 너무 센 독특한 형태죠. 주고받아야 연기를 하는데, 고정우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안 믿고 말할 기회를 안 줘요. 점점 힘을 잃어가요. 9화부터는 고정우가 말이 없어져요.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어요. 벽에 대고 얘기하는 한마디로 '잿빛 인생'인 캐릭터죠. 까다롭고 외로웠어요."
이러한 탓에 초반 작품에는 '고구마 전개'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진실이 밝혀지며 '꿀고구마'라는 평으로 여론을 반전시켰는데, 변요한은 "저희끼리 연기하면서는 '사이다다', '고구마다' 그런 계산을 하진 않았다. 인생이 어떻게 다 사이다냐. 리얼리티를 거짓말하지 않고 마주 보려고 했고 느끼려고 했다"라면서도 "꿀을 담당하는 건 시청자분들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역할과 시나리오를 다 받아들였어요. 표출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런 순간이 오면 저도 움직이고 싶었지만, 흔히 말하는 사이다 소리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내가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이게 얕은 생각일 수 있겠구나 했죠. 고정우는 입을 닫고 싶을 수 있고, 이미 더 깊은 음지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최나겸(고보결)이 준 술을 왜 마시냐는 반응도 있는데, 이미 답은 다 정해져 있었어요. 고정우는 죽어도 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 사람은 다만 진짜만 알고 싶은 거죠. 그 순간이 별거 아니었을 거로 생각해요."
겪지 않아도 되는 고난을 겪은 고정우와 함께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변요한은 "물론 친구들이다"라고 했다.
"그 나이는 친구를 가장 좋아할 나이잖아요. 친구 때문에 강남 가고, 친구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나인데 그게 아예 없어진 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정우의 우정은 19살 때 멈춘 게 슬프더라고요. 10년간 세상을 못 본 것도 안타깝지만 우정이라는 게 없어졌다는 게 큰 것 같아요. 그래서 고정우가 10년 복역하고 나왔을 때 자기 죄를 찾는 건 뒷일이고 보영이랑 다은이만 찾고 싶었다을 것 같아요. 저는 괜찮았어요."
변요한이 이렇게까지 고독하고 괴로운 고정우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보고 있었는데, 마침 시나리오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누명을 쓰고 오래 복역한 실존 인물을 다룬 다큐라고 부연했지만, 구체적인 다큐멘터리 제목은 밝히지 않았다.
"다큐를 보고 있었어요. 대본을 봤는데 그 다큐가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내가 공감하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이 시나리오가 딱 있어서 다시 한번 더 봤어요. 지금도 제가 0.1%도 그분들 마음을 담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약한 자들은 목소리를 못 내고 내봤자 무시당하잖아요. 연기할 때도 그렇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드라마를 계기로) 이런 사건도 있다, 라는 걸 또 보게 될 것 같아요. 작은 불씨였으면 좋겠어요."
작품 말미에서 고정우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살인자 누명을 벗는다. 혼수상태이던 어머니가 깨어나고, 사건의 진실을 덮은 어른들은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가 사랑하던 다은이()도 없고, 친구 보영, 나겸, 민수, 병무, 건오도 없다.
"다행히 엄마가 일어나셨어요. 건오 대신 수오가 있고요. 진짜 사랑이 뭔지 표현할 수 있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사랑을 잘 주면서 또 살아갈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좋겠고, (잘 사는지)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어요. 삶이 사실 다 고구마 아니에요? 금요일까지 달리다가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셨을 때 '한 주가 다 날아갔다' 감정의 연속인 것 같은데, 저희가 그런 드라마인 것 같아요. 저는 살아가면서 사는 만큼 행복해진다고 생각해요. (살아야) 귀인도 나타나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다루고 있는 사건은 크지만 본질적으로 모두 아는 이야기죠. 그래서 더 화도 내주시고 응원도 해주신 것 같아요."
변요한은 2024년 영화 '그녀가 죽었다', 디즈니+ '삼식이 삼촌'에 이어 '백설공주'까지 세 작품을 공개했다. 그간 열심히 준비했던 작품들의 공개 시기가 맞물린 것. 그는 "우선 정말 감사하고 특별한 해다. 가족들이 활동을 갑자기 왜 이렇게 많이 하냐고 하더라. '몰려나온 거다' 말씀드렸는데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는 게 귀한 일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라며 "제가 가진 특별함과 부족함을 여실히 느껴서 다음 작품 더 기대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부족함은 보완해서 숨기고 싶어요. 배우처럼 살고 있구나, 공부 열심히 한다는 걸 보여드리는 게 같아서 다음 작품에서 보여드릴게요. 특별함은 특별하니까 3 작품 나왔고 시청자분들이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지 않았을까요. 엄청 대박은 아니지만 내가, 우리가 노력한 것만큼 정확한 수치의 성공을 했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2024년도의 수확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만족해요. 다음 작품에서 결과가 좋을지 안 좋을지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까요. 과정을 잘 만들고 싶어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TEAMHOPE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