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러버' 정인선, 스스로 만든 터닝포인트 [인터뷰]
입력 2024. 10.16. 08:00:00

정인선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이번에는 시기에 맞춰 나를 찾아주시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일단 해내보자는 도전 욕구가 있었다."

짧은 단발의 히피펌, 그리고 4차원의 푼수 같은 성격까지, 지금까지 봤던 정인선의 모습과 달랐다. 앞서 얌전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다수 선보였던 정인선은 'DNA 러버'를 통해 변화를 꾀하려 했고,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를 직접 맞이했다.

지난 6일 종영한 TV조선 주말미니시리즈 'DNA 러버'(극본 정수미, 연출 성치욱)는 수많은 연애를 실패한 유전자 연구원 한소진(정인선)이 마침내 유전자를 통해 자신의 짝을 찾아가는 오감발동 로맨틱 코미디다.

'DNA 러버'는 TV조선에서 시도한 첫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 '빨간풍선', '아씨두리안' 등 그간 중장년층 위주의 드라마를 선보였던 TV조선의 파격적인 시도였다.

정인선은 "젊은 느낌도 그렇고, 로코 자체도 TV조선에서 새로운 틀이었다. 그래서 채널 쪽에서도 힘을 많이 실어준 부분이 있었고, 그만큼 긴장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더 좋은 반응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아쉬움도 조금은 남는다"면서도 "그래도 좋은 발돋움이 돼서 TV조선에 더 영(young)한 작품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스타트를 끊었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의미를 주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DNA 러버'에서 정인선은 오타쿠 기질이 충만한 '이로운 유전자 센터'의 연구원 한소진 역을 연기했다. 한소진은 외형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지금껏 정인선에게 볼 수 없었던 모습의 캐릭터였다. 이와 같은 작품과 캐릭터에 이끌렸던 것은 정인선의 도전 욕구로부터 시작했다.

"한소진이라는 캐릭터가 제 자신에게는 도전이었다. 이전에는 이런 캐릭터는 스스로에게 없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제가 할 수 없는 건지, 아직 안 해본 건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앞서 했던 작품들을 보면 시기 별로 어둡거나 무거운 걸 했던 때도 있었고, 모성애 가득한 캐릭터를 맡던 때도 있었고, 여린 캐릭터도 맡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 시기마다 맡은 캐릭터가 있었다. 이번에는 시기에 맞춰 나를 찾아주시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일단 해내보자는 도전 욕구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각 시기마다 맡았던 작품들이 내 모습이 되는 식으로 터닝포인트를 맞았던 것 같다. 제가 항상 작품에 선택 받으면서 터닝포인트를 항상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내 터닝포인트를 스스로에게 줘보자는 생각이었다. 이걸 내가 해내면 오랜만에 작품을 임할 때에도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새로운 도전이었던 한소진을 연기하기 위해 정인선은 먼저 스스로 캐릭터의 스타일링을 그려나갔다. 제작진 미팅 전부터 정인선은 한소진의 스타일링을 구상했고, 실제로도 많은 의견이 반영됐다.

"평소에 작품마다 스타일링이나 메이크업과 관련해서 영감을 받을 만한 사진들을 캐릭터 별로 폴더를 만들어 저장한다. 그때 바로 떠올랐던 헤어 스타일이 있어서 사진을 가져가서 감독님, 작가님을 만나는 날 설득해서 머리를 잘랐었다. 원래 저는 '싱글즈'의 장진영 배우님처럼 삐죽삐죽한 느낌의 단발 스타일을 하고 싶었는데, 작가님이 곱슬 머리 우성 유전자가 있는 설정으로 컬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시더라. 그게 합쳐져서 단발의 히피펌이 됐다. 또 감독님은 약간 빈티지한 색감, 웜톤 계열의 스타일링을 생각하셨는데, 저는 쨍한 원색 계열에 체크 무늬처럼 패턴이 많은 스타일링으로 소진이의 캐릭터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딱 봐도 눈에 확 튀고 독특해 보이길 바랐던 것 같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캐릭터였지만, 사실 소진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인선은 소진의 서사를 시작으로 그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며 연기하려 했다.

"이전에 보여드린 적이 없었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약간 겁도 났다. 이걸 못 해내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됐다. 사실 이걸 아예 이해 못 했다면 모르겠는데 사주, MBTI에 대입을 해보면 전혀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았다. 소진도 엉뚱하고 극단적인 느낌이지만 사실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거였다. 내 사람을 찾고 싶고, 그걸 찾기 위해선 꼭 기준이 있어야 했다. 또 그 기준이 없었을 당시에 아빠를 잃었다는 아픔까지 연결이 잘 되어 있었다. 저에게는 사실 이 친구의 빠른 감정의 높낮이 등을 표현하는 것이 걱정으로 다가왔고, 캐릭터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TV조선에도, 정인선에게도 새로운 시도였던 'DNA 러버', 하지만 반응은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굿파트너', '엄마친구아들' 등 쟁쟁한 금토, 주말드라마와 경쟁하면서 'DNA 러버'는 시청률 0%대라는 아쉬운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올림픽 기간이 있어서 저희도 조금 밀려서 편성이 됐었다. 그런데 모든 작품들이 올림픽을 지나 그 시기에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 같다. 제가 봐도 정말 재미있었고, 작품들의 장르도 다양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요즘에는 종영된 이후에 작품을 찾아봐주시는 분들도 많더라. 그래서 아직도 약간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상태다. 쟁쟁하고 멋진 작품들이 많아서 저 역시도 쉬운 싸움이 되진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같이 항해를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DNA 러버'가 주는 메시지가 정말 좋았고, 이 이야기를 제가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설레고 좋았다. 나중에 몇몇 분이라도 이 작품을 알아봐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정인선 스스로에게는 'DNA 러버'가 성공적인 도전으로 남았을까. 이번 작품을 통해 정인선은 자신의 연기를 본인에게 납득시키는 데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전에는 10가지의 경우가 있다면 3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끝까지 고심하다 안 하는 식으로 절제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10가지를 해야 된다면, 13~15가지를 준비해서 다 시도했던 것 같다. '이렇게 웃으면 캐릭터의 톤에 맞지 않을까', '저렇게 웃으면 내 연기에 안 맞지 않을까'와 같은 걱정을 다 없애고 그냥 웃는 거였다. 이번에는 제 자신에게 확인을 하고 싶었다. 어디까지 웃고 울고 화낼 수 있는지를 빠르게 표현해내려 했고, 그걸 스스로 납득시킬 수 있을지를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이번 작품에서 그 지점이 가장 큰 과제였다. 소진은 감정이 많은 친구였고, 웃다가 울고, 갑자기 화도 내는 친구다. 그 순간이 진심이어야 하는데, 평소의 저는 빠르게 감정이 움직이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해내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임한 것 같다."

1996년 SBS 드라마 '당신'을 통해 아역으로 데뷔했던 정인선은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배우로 활동했지만, 여전히 그는 연기에 대해 "해도 해도 참 어렵다. 인터뷰에 가면 '데뷔 몇 년차'라고 말을 해주시는데, 그때마다 그 연차에 맞는 배우가 됐나 싶은 의구심이 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절인연'처럼 자신에게 맞는 작품과 역할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덧붙였다.

"저는 늘 작품을 마치면 오랫동안 앓기보다는 비우는 편이고, 그렇게 도화지처럼 돼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워야만 다시 채우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고, 채워져 있으면 오히려 과부하가 온다. 항상 작품을 마치면 이렇게 비우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늘 캐릭터가 새롭다. 그래서 짜릿하긴 한데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지금까지도 잘 되는 걸 보면 저는 늘 일할 때의 저와 아닐 때의 저를 분리해서 가야 되는 사람인 것 같다. 요즘에는 프리다이빙에 푹 빠져있는데, 지금 제 것을 비우고 쏟을 수 있는 곳을 거기로 찾은 것 같다. 이것으로 저를 채워나가면서 또 보고 느끼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안에서 교집합을 찾을 수 있는 배역과 작품을 만나고 싶다. 그게 제 목표다. 저는 시기마다 시절인연(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처럼 작품을 만난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선택을 받는 직업이고, 터닝포인트가 제게 주어진 거지만 그것도 제겐 결국 시절인연이 되지 않나. 그런 작품과 역할을 만났으면 좋겠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블리츠웨이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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