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란’ 박정민의 도전, 그리고 책임감 [인터뷰]
- 입력 2024. 10.20. 09: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배우 박정민이 또 하나의 도전을 마무리했다. 데뷔 14년 만에 첫 정통 사극에 나선 것. 넷플릭스 영화 ‘전,란’(김상만)의 종려 역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한 얼굴을 보여준 박정민이다.
'전,란' 박정민 인터뷰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정민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로 첫 사극에 도전,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종려는 양반가 자제로서 자신의 몸종 천영(강동원)과 신분을 뛰어 넘는 우정을 나누지만 그로 인해 큰 좌절을 겪게 된다. 박정민은 선한 얼굴부터 분노와 배신감으로 얼룩진 다양한 감정의 파동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매순간이 어려웠어요. 모니터하면서 부족한 것 같은 부분들이 있었죠. 제 앞에 일어나는 일이면 그냥 하면 되는데 커다란 덩어리 사건들이 갑자기 훅훅 오니까 조금 더 감정적으로 증폭 시켜야 하는 부분들이 확실히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과 두 번째 테이크는 부족하고, 테이크가 거듭될수록 영화에 맞는 연기가 나온 것 같아요. 보통 그 전 작품을 할 땐 1, 2번 테이크가 좋은데 이번 건 뒤로 갈수록 좋아진 느낌이 들었죠.”
종려는 천영이 자신의 일가족을 모두 살해했다는 오해를 하고, 배신감에 휩싸여 복수를 다짐한다. 우정을 나누던 양반과 노비에서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건 한쪽으로만 흐르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분명 진심이었을 거예요. 천영에게 준 자신의 마음, 우정, 이런 것들이 분명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을 하죠. 결국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거나, 잘못된 정보를 듣는 등 사건 안에서는 이 인물이 여지없이 양반이고, 계급의식이 있구나. 그래야 종려의 마음, 감정이 설명되는 게 있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납득되지 않은 부분이었거든요. 어쩔 수 없는 의식을 가진 인물이구나. 또 천영에게 이름을 지어줬는데 결국에는 ‘나의 그림자’라고 짓는 걸 보며 양가적인 감정을 지닌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전,란’의 각본은 신철 작가와 박찬욱 감독이 집필했다. 박찬욱 감독은 제일 먼저 박정민에게 캐스팅을 제안했다고. 박정민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일장춘몽’을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처음에 ‘헤어질 결심’에서 인연이 됐고, 후시 녹음을 하러 가서 ‘일장춘몽’에 캐스팅 됐어요. 촬영 끝나자마자 ‘전,란’에 캐스팅됐고요. ‘일장춘몽’으로 박찬욱 감독님이 약간 테스트 한 것 같은 합리적 의심이 들어요. (웃음) 감독님께서 ‘변산’을 너무 좋게 봐주셨어요. 너무 놀랐죠. 그 영화를 좋아하는데 왜 ‘헤어질 결심’ 같은 역할을 주셨을까 싶기도 했고요. 하하. ‘헤어질 결심’ 때 나쁘지 않았는지 단편영화에도 출연시켜주시고, ‘전,란’까지 캐스팅해주셨죠.”
‘전,란’의 관전 포인트는 화려한 검술 액션이다. 액션 시퀀스는 각 인물들의 캐릭터성과 드라마, 감정까지 모두 담은 액션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종려는 머리 위에서 검이 회전하는 수평적인 공격으로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액션을 선보인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진 천영에게 미치지 못한 인물이라면 1년 동안 왕을 호위하고 군대를 이끌면서 종려의 실력이 일취월장해졌어요. 이 포인트가 중요했죠. 다시 만나 싸울 때 천영과 대등한 느낌을 주고 싶다고 해서 액션팀에게 부탁드렸어요. 감독님에게 다시 만나 싸울 땐 초반에는 종려가 조금 더 이성적이고, 차갑게 받아드리고, 천영이 흥분해서 달려드는 액션을 만들자고 했죠. 감정적인 액션을 만들어야 하는 게 가장 포인트였어요. 종려가 가진 건 울분이에요. 감정이 실린 칼 사위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액션을 준비했죠.”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검술액션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빼놓을 수 없다. 박정민은 강동원과 깊은 우정을 나누던 친구에서 적으로 변화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인물을 연기했다. 강동원과 호흡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편했어요. 어려운 선배라고 하면 촬영이 먼저 끝나도 가만히 앉아있거든요. 동원 선배님 같은 경우, 끝났다고 슥 가도 미워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눈치를 안 보게 하셨어요. 서로의 호감과 호의가 쌓여가니까 좋았어요.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게 되고. 제가 골프를 쳤다면 더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웃음)”
‘전,란’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공개 전 화제를 모았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이 개막작으로 선정된 건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이후 처음이다. 이를 두고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전,란’은 극장 상영작이 아닐뿐더러 상업 영화라는 점이 영화제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뒤따른 것. 이에 대해 박정민은 어떻게 바라볼까.
“제가 나오지 않은, 넷플릭스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됐다고 하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 같아요. 이후 중요한 사안이라는 걸 인지하게 됐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보다 집에서 넷플릭스로 본 영화가 훨씬 많아요. 그 정도로 관객들에 깊숙이 스며들었고, OTT와 우열을 따지는 것에 있어 사실 잘 모르겠어요. 두 매체를 즐기는 한 소비자로서 크게 상관이 없죠. 저도 극장 영화를 계속 하고 싶긴 해요. 무대인사, GV를 통해 소통하고 싶고요. 그걸 계속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넷플릭스 영화가 영화의 편견을 가지고 있나 했을 때 사실…. 저도 넷플릭스에서 좋은 영화를 많이 봤거든요. 개개인의 차이인 것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기자회견 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못 봤어요. 개막작 때 처음 보고 싶어서 아껴놨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거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 격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안 들었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탁월한 해석력으로 대체 불가 캐릭터를 선보여 온 박정민. 그는 ‘전,란’ 이후 오는 12월 ‘하얼빈’을 비롯해 시리즈 ‘유토피아’, 연상호 감독의 ‘얼굴’, 영화 ‘1승’ 등 차기작 공개를 줄줄이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잠깐의 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썼던 표정을 계속 쓰고 할 순 없잖아요. 살펴보고 싶은 시기에요. 제가 저 스스로를 너무 무시하고 살았구나 싶어 한 번 브레이크를 자진해서 걸어보면 어떨까 싶죠. 데뷔 이후 달라진 점은 ‘책임감의 크기’에요. 이 작품이 저에게 쥐어주는 책임감의 크기와 제 어깨에 얹고 가는 책임감의 크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이를 먹어가고, 경력이 쌓이고, 롤이 조금 더 커지면서 이 영화 안에서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대기실과 모니터석에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저보다 어린 배우들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배들은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생각할거리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선배님을 보면서 배우게 됐고, 여러 가지가 ‘책임감’이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예전과 달라진 건 책임감의 크기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샘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