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정우, 비 온 뒤 땅 굳는다 [인터뷰]
입력 2024. 10.21. 17:15:23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정우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조금 더 성숙한 연기가 무엇인지, 좋은 배우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영화 ‘바람’ ‘히말라야’ ‘재심’ ‘뜨거운 피’를 비롯해 ‘응답하라 1994’ ‘이 구역의 미친 X’ ‘모범가족’ 등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장르 불문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정우. 그런 그가 2년 반 정도 휴식 기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데 힘쓴 고민의 시기를 털어놨다.

2019년, 크랭크업 이후 6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감독 김민수)는 수사는 본업, 뒷돈은 부업, 두 형사가 인생 역전을 위해 완전 범죄를 꿈꾸며 ‘더러운 돈’에 손을 댄 후 계획에 없던 사고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시간이 걸린 후 나와서 우려가 있었어요. ‘어떻게 나올까’ 싶었죠. 그러나 지금 스크린에 나와도 몇 년 동안 창고에 있다가 나온 영화인가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음악도 너무 좋았죠.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심플한 게 좋았어요.”

연출을 맡은 김민수 감독은 변성현 감독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킹메이커’ 각본 활동에 참여한 바. 이후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로 첫 장편 연출을 맡으며 데뷔하게 됐다. 특히 김민수 감독과 정우는 서울예술대학교 동문으로 알려졌다.

“‘불한당’과 ‘킹메이커’ 작업을 한지 몰랐어요. ‘더러운 돈’ 대본을 받았을 때도 동문인지 몰랐죠. 이름이 낯이 익다 생각하면서 ‘내가 아는 그 친구인가?’ 정도였지, 따로 연락을 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대본을 보고 이 캐릭터가 너무 궁금했고, 이 대본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감독님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시작됐죠.”



영화는 형사가 범죄를 저지른다는 역발상에서 시작된다. 인생 역전의 한방으로 시작한 한탕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아수라장을 긴장감 속에서 보여준다.

“심플했던 것 같아요.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인지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형사가 나와서 검은 돈에 손을 대고 꼬이기 시작하는 이야기인지 모르니까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돈에 손을 잘못대서 역경을 맞는지 궁금했어요. 대본을 보니 심플, 간결, 임팩트가 있었어요. 각 대본, 시나리오마다 내용과 별개로 주는 뉘앙스가 있는데 이 대본 자체가 섹시하더라고요. 대본을 보거나 캐릭터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비중보다 ‘이 캐릭터가 섹시하냐, 아니냐’에요. 대본 자체가 섹시했죠.”

정우는 극중 낮엔 수사, 밤엔 불법 업소 뒤를 봐주며 뒷돈 챙기는 형사 명득 역을 맡았다. 명득은 잘나가던 광수대에서 관할서로 좌천된 베테랑 형사로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 한다. 영화에서 짧게 그려지는 명득의 전사를 정우는 어떻게 구축해갔을까.

“그런 과정이 필요한데 그때 당시 감독님에게 인물의 전사, 어떤 삶을 살았냐고 묻는 게 구차하더라고요. 대본에 나와 있고, 썼으니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해요. 사실 저는 질문이 많은 편이 아니에요. 질문이 많다는 건 이 캐릭터를 소화할 능력,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정답은 대본에 나와 있어요. 감정을 표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니까요. ‘케바케’인 것 같아요. ‘더러운 돈’ 같은 경우, 딸이 아프고 아내는 하늘나라에 가있는 설정이니 감정을 표출하는 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사를 구축해가는 과정이 중요해진 계기는 언제부터일까.

“감독님과 소통 보다 그걸 계기로 대화를 많이 하면서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친밀도가 쌓이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전사가 궁금하기보다 잡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거기에 유머도 같이 형성되면 더 좋은 연기가 나오잖아요. 그렇게 더 좋은 작품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2001년 데뷔 후 2013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정우는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높은 인기를 끌었음에도 실제 힘든 시기를 겪었던 그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를 촬영했을 당시에도 부담감을 털어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다시는 그때 저의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고 싶지 않고요. 그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 고통을 다신 겪고 싶지 않죠. 당시 ‘뜨거운 피’ ‘이웃사촌’ 무렵이었는데 연속으로 감정이 고된 작업을 하다 보니 욕망에 사로잡혀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감당하지 못할 연기적인 욕심을 낸 거죠. 그 시기에 ‘더러운 돈’을 만나게 됐어요.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빠져나와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그러나 방향을 조금만 잘못 틀게 되면 고통의 길로 빠질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예전에는 과정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과정은 치열하고, 고통스러워도 되니 내 한 몸 불사르겠다면 지금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해요. 건강하게 즐겨야 하고, 같이 하는 사람들과 배려하며 만들어가야 하죠. 고통스럽고, 치열하게 부딪히며 이런 것 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2년의 공백 기간을 거치며 비워내고, 털어낸 정우다.

“몸과 마음이 아파 2년 정도 작품을 쉬었어요. 그때 많이 깨달았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지금은 신체와 몸이 아주 건강하지만 마음의 치유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 하나가 끝날 때마다 분명히 필요하죠. 그런 방법들을 현 소속사의 손석우 대표님이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굉장히 큰 도움을 받았죠. (아내) 유미씨에게도 참 감사하고, 고마워요.”

그러면서 정우는 동료 배우이자 아내 김유미를 향해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같은 서울예대 출신인 김유미와 2016년 1월 결혼식을 올린 정우는 슬하에 1녀를 두고 있다.



“매일매일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그땐 몰랐거든요. 왜냐면 연기에만 빠져있어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조심스러워요. 제가 그 정도로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나 했을 때 부끄럽죠. 솔직한 제 마음은 당시 연기만 보면서 생활했어요. 자나 깨나 작품, 연기 생각만 하며 살았죠. 그런데 그게 저를 갉아먹고 있었어요. 거리를 유지해야하는데 너무 붙어있었던 거죠. 현실과 작품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저는 항상 검사를 받아오며 배우 생활을 해왔어요. 저보다 더 상황이 어렵고, 힘든 분들도 계신데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민망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저는 어릴 때 연기 검사를 맡으며 하다 보니 자기검열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 연기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단역, 조연, 주연으로 갈수록 책임감 때문에 저를 자유롭게 못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지금은 너무 자유로워요. 제가 해야 할 몫은 다 했죠. 촬영 날, 정성과 진액을 쏟았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건 무대인사 하면서 관객들과 셀카 찍기? 하하.”

또 정우는 2021년 방송된 ‘이 구역의 미친 X’를 언급하며 현 소속사 손석우 대표를 향해 감사함을 전했다.

“저는 당시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말아먹었구나, 이렇게 연기를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 해도 되는 건가?’ 싶었거든요. 그때 소속사 대표님이 조언을 해주셨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고.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을 예로 들면 과녁을 맞추기 위해 수 만 가지 생각을 하지 않잖아요. 과녁을 향해 쏠 때 ‘엄마, 아빠, 자식, 성공’을 생각하며 쏘냐 이거예요. 의미부여를 하고, 생각이 많으면 엇나갈 수 있잖아요. 생각 없이 하던 대로, 연습은 많이 해왔으니 활을 쏘면 과녁엔 들어가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제 생각, 마인드를 심플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라 감사해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배우로서 슬럼프를 극복한 정우는 다시 날갯짓을 시작하고자 한다.

“예전에는 감독님이 ‘오케이’하면 오케이였어요. 지금은 조금 더 업그레이드 시켜야하지 않을까 싶죠. 감독이 좋아한다고 해서 오케이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성숙한 연기가 무엇인지, 좋은 배우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기에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오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관객들의 사랑, 여러 가지 등 부수적인 걸 바라보며 작품을 하는 건 아니지만요. 예전에는 연기가 저에게 전부였어요.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연기는 제 인생의 일부에요. 중요하고, 소중한 일부죠. 그 마인드가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전부’였다면 지금은 ‘소중한 일부’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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