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킬롤로지', 불편하지만 외면해선 안 될 현실 [무대 SHOUT]
입력 2024. 10.23. 11:42:56

'킬롤로지'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이게 바로 이런 게임들의 실체예요. 우리 아이들에게 살인을 훈련시키는 거."

총을 쏘며 사람을 죽이는 게임, 숏폼 플랫폼에 만연한 청불 드라마·영화 클립까지, 이제 미성년자들이 수위 높은 콘텐츠를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차피 게임인데', 정말 미성년자들에게 해당 콘텐츠들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킬롤로지'는 이와 관련해 불편하지만 꼭 마주해야 할 현실을 이야기한다.

연극 '킬롤로지'는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살인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온라인 게임 '킬롤로지(Killology)'와 이를 개발한 게임 개발자 폴, 그리고 알란, 데이비 부자까지 세 사람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개인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그것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져 온 게리 오웬의 대표작으로, 2017년 영국 초연 당시 시의성 강한 소재와 독특한 형식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Laurence Olivier Award)' 협력극장 작품상, '웨일스 시어터 어워드(Wales Theatre Awards)' 극작상과 최고 남자 배우상, '더 스테이지 어워드(The Stage Awards)' 올해의 지역극장상을 수상했다.

극은 누군가의 집에 몰래 침입하려는 알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후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성장기를 말하는 데이비, 게임 킬롤로지를 개발하게 된 계기를 말하는 폴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세 사람의 독백이 계속 교차된다.

120분 동안 끊임없이 진행되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동떨어진 것 같지만, 점점 '킬롤로지'라는 연결고리로 그 조각을 맞춰간다. 게임 '킬롤로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된 '데이비', 이후 게임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개발자 '폴'을 찾아간 '알란'의 모습이 하나가 된다.



'킬롤로지'는 전개 방식에서 꽤나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은 있지만, 각 캐릭터들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맞닿아있지 않은 순간이 더 많다. 이에 처음 본 사람들은 극을 따라가는 데에 혼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 하나 하나에 집중하면 결국 극에서 던지는 두 가지 질문과 만나게 된다.

'폭력을 용인하고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을까'

계속해서 알란이 던지는 질문이다. 실제로 범죄자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본 뒤 모방했다고 종종 말하는 바, 결코 우리는 잔혹한 범죄와 미디어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있음에도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들만 쏟아지고, 오히려 접근성은 더 쉬워졌다는 게 현실이다.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등은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유튜브, 틱톡 등 플랫폼을 통해 폭력적인 장면을 포함한 드라마 클립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폴은 "게임에서 마법을 쓰면 돼지가 날아다니죠. 그렇다고 현실에서도 돼지가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말하며, '킬롤로지'는 게임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사회성을 형성하는 아이들에게도 그저 단순한 게임으로 받아들여질까. '킬롤로지'는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무언가의 부재로부터 오는 개인의 상처가 사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데이비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떠났고, 폴은 칭찬 한 번 해준 적 없는 아버지의 밑에서 자랐다. 데이비는 아버지의 존재, 폴은 아버지의 애정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이 결핍으로 인해 데이비는 학교 선생님에게 의자를 던지고, 8살 여자아이의 자전거를 빼앗은 가해자가 됐고, 폴은 잔인한 온라인 게임 '킬롤로지'의 개발자가 됐다.

'킬롤로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부재로 인한 결핍에 대해 조명한다. 아버지가 없었던 데이비,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었던 폴은 상처로 인해 어긋나고, 결국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낸다. '킬롤로지'는 있어야 할 것에 대한 부재로 인한 결과가 결코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한다.



이번 '킬롤로지'에는 알란 역에 김수현, 이상홍, 최영준, 폴 역에 임주환, 이동하, 김경남, 데이비 역에 최석진, 안지환, 안동구가 캐스팅 됐다. '킬롤로지'는 대사량이 방대한 고난도의 연극인 바, 매체에서 활약하던 배우가 다수 출연해 개막 전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할 만큼 9명의 배우 모두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냈고, 어떤 캐스팅으로 공연장을 찾아가도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다만, 관람 안내에 적혀있듯 사람과 동물을 향한 폭력과 욕설이 구체적인 대사와 사운드를 표현된다. 폭력을 시각화한 장면은 따로 없지만, 이를 자세하고 잔인하게 묘사하는 대사나 음성이 등장하기 때문에 관람 전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킬롤로지'는 오는 12월 1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2관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연극열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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