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김신록의 ‘매직 레시피’ [인터뷰]
입력 2024. 10.24. 09:00:00

'전,란' 김신록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믿고 보는’ 배우 김신록. 그가 넷플릭스 영화 ‘전,란’(감독 김상만)을 통해 첫 액션에 도전했다. 캐릭터와 ‘물아일체’가 된 그는 짜릿한 액션은 물론, 깊은 감정 연기로 이번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신록은 극중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굳센 의지를 지닌 의병 범동 역으로 분했다. 범동 역은 시나리오 초반, 여성이 아닌 남성 캐릭터로 설정됐다고.

“김상만 감독님이 ‘지옥’을 보시고, 저와 너무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어요. 초고 시나리오를 아무리 뒤져도 맡길 여자 캐릭터가 없었는데 범동을 여성 캐릭터로 하면 어떨까 해서 제안을 주셨죠. 초고에서는 ‘힘캐(힘+캐릭터)’였거든요. 약간 ‘개그캐(개그+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넘어오면서 힘 설정이 빠지면서 도리깨가 들어가게 됐어요. 그 외에는 크게 바뀌지 않았죠. 저도 여, 남을 떠나 젠더 중립적으로 연기했어요.”

범동은 눈앞에 목표물과 도리깨만 있으면 거침없이 질주하는 인물이다. 범동과 하나가 된 김신록은 러닝타임 내내 전력으로 질주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자령(진선규)의 왼팔 인물이에요. 자령의 오른팔은 천영(강동원)이죠. (범동은) 행동대장 같은 인물이라 행동력이랑 액션이 믿음직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액션스쿨 가서도 연습을 많이 했죠. 범동 액션은 자령과 달리, 투박하고 거칠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투박하고, 거칠고, 게릴라전에서 손수 익혀온 액션을 구사하려고 노력했어요.”

‘전,란’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큰 관심을 모은 바.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이후 처음으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작품이 개막작으로 선정됐기에 이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양했다.

“처음엔 ‘영화가 190개국 동시에 공개된다고?’ 싶어 놀라웠어요. 그 장점이 되게 명확하거든요. 그리고 동시에 주변 친구들이 ‘와 범동, 싸움 잘하네’ 했다가 ‘범동 우니까 나도 눈물 난다’라고 하더라고요. 실시간으로 카톡하는 게 신기했어요. 어쩌면 OTT 영화가 갖는, 누군가는 한계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긍정적인 가능성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특이한 경험을 했어요.”



범동은 한 마디로, ‘외강내강’ 캐릭터다. 범동은 특유의 곧은 기개를 드러내거나, 수많은 적과 팽배했던 신분 질서에 굴하지 않는 모습으로 단단한 내면을 보여주기도.

“범동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인물’이라 생각했어요. 책에서 배운 논리가 아닌, 삶에서 배운 순리를 따르는 인물이죠. 자기 나라, 이웃, 가족에게 닥친 어떤 재난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발 벗고 나서는 인물이에요. 아주 선량하고, 용감한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이 사람을 표현하는데 있어 어떻게 하면 충동적이고,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고민했어요.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에너지를 쓰는 방식, 표정, 말투 같은 것들을 고민했죠.”

김신록의 감정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강인할 것 같던 범동은 함께 했던 의병대들을 떠나보낼 때, 죽음을 맞이한 자령을 봤을 때 등에서 무너지는 억장을 눈빛과 표정에 담아내 연기한 것.

“천영이 가지고 온 자령의 머리를 무덤 안에 넣는 신이 있어요. 저는 범동이 전날 밤 새벽에 머리 앞에서 울고불고 했고, 그걸 묻을 땐 차가웠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천영을 두드려 팬다고 설계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천영과 싸울 때 눈물 흘리는 게 어떨까요?’라고 했는데 결국 눈물을 흘리며 찍었어요. 그 장면이 아주 짧게 들어가는 장면이지만 장면에 제 얼굴이 들어가니까 눈물을 흘리는 게 맞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신록은 범동의 전라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기도. 귀에 착 감기게 만드는 대사는 말의 템포까지 살려내 캐릭터를 더욱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의병은 지역에서 들고 일어나니 지방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전남 사투리를 썼죠. 제 고향이 광주인데 어릴 때 쓴 사투리를 썼어요. 본능적이고, 충동적으로 연기할 때 도움이 됐죠.”



김신록은 천영 역의 강동원과 주고받는 에너지 또한 강렬했다. 강동원과의 호흡에 대해 묻자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한국영화의 보배”라고 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저는 의병 무리라 박정민, 정성일, 차승원 배우님과 전혀 만나지 못했어요. 주로 의병, 강동원 배우와 연기했죠. 마지막 대본을 보면 범동이 조직 이름을 다시 정해야겠는데라고 했을 때 천영이 ‘범동계가 어떠냐’고 해요. 그리고 저를 보며 웃는 신인데 대본을 봤을 땐 ‘하하 웃기가 어렵겠는데? 웃음이 나올까? 어떻게 웃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강동원 배우가 쳐다보자마자 웃음이 나더라고요. ‘한국영화의 보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 배우의 힘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연기했죠. (웃음)”

김신록에게 ‘전,란’은 첫 사극일 뿐만 아니라, 액션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한 작품이다. 동시에 여러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고 한다.

“첫 사극, 첫 액션 영화, 첫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첫 넷플릭스 영화에요. 첫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죠. 사극이지만 의병이라는 캐릭터를 하면서 의복도 남자 복색, 여자 복색이 아닌, 머리를 쪽지고, 댕기를 땋아 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젠더적으로 중립, 시대적으로도 중립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사극을 시작하게 되어 재밌고,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또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죠.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물인데 그걸 여성 인물이 의병에 들어와 있고, 바지를 입고, 도리깨를 들고 싸운다는 설정 자체가 반체제적이라 작품과 맥이 맞다고 생각했죠.”

액션 연기도 일품이다. 곡물을 터는 농기구에서 적을 제압하는 주무기가 된 범동의 도리깨가 휘둘러질 때마다 극적 재미를 더했다. 김신록은 액션스쿨에 가 연습을 거듭했다며 액션 연기를 표현하기 위한 남다른 노력을 전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선생님들이 ‘너무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이성민 선배님에게 ‘선생님들에게 칭찬받았어요’라고 하니까 ‘처음 가면 다 그래’라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범동이 자령 왼팔이기에 액션을 하거나, 전투에 행동 대장처럼 임할 때 신뢰감을 줘야 해서 액션 연습 하는데 공을 들였어요. 그리고 도리깨 제작에도 공을 들였죠. 도리깨가 제 신체 사이즈, 움직임 반경, 힘의 강도에 맞게 여러 차례 시범제작 되기도 했어요.”



2004년 연극 ‘서바이벌 캘린더’로 데뷔한 김신록은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다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박정자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유괴의 날’ ‘스위트홈’ 시리즈, ‘눈물의 여왕’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 OTT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장르를 섭렵 중이다.

“‘지옥’ 덕분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기회가 생겼어요. 연극 쪽보다 산업 규모나 관계된 사람들이 많이 다르다 보니까 다양한 일들이 저에게 접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광고, 제작발표회, 라운드 인터뷰 등도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세계거든요. 이런 것들을 경험하고, 소화하는 시간들이 굉장히 재밌어요. 뷔페에 갔더니 처음 보는 음식, 처음 맛보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배탈 나지 않도록 한 숟가락 씩 떠먹는 시간이죠. ‘전,란’은 또 다른 경험을 해준 멋진 작품이에요. 돌이켜보면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등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같이 무대 인사를 하고 할 수 있었을까요? 평행 우주에 와있는 것처럼 꿈같은 시간이에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신스틸러로 맹활약한 김신록. 특히 맡은 배역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더해 캐릭터와 물아일체 된 연기를 선보인 그는 ‘믿고 보는’ 배우로 우뚝 섰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철학자의 말이 있어요.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너무 많다’죠. ‘인물과 나와의 관계가 인물로 살아났어, 인물 그 자체야, 이해돼’라는 건 인물을 축소시키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나는 인물과 거리를 둬, 밖에서 관찰하고 표현하는 대리인일 뿐이야’라고 이해했을 땐 너무 먼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인물은 모른다, 모른 채 알아가기’라는 마을 좋아해요. 인물을 대할 때 가지고 있는 ‘매직 레시피’ 같은 워딩이죠.”

약 5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신록에게 돋보인 건 ‘연기를 향한 열정’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자 한다.

“범동은 책에서 배운 공자, 맹자의 도리가 아닌, 사회에서 몸과 마음으로 깨달은 순리를 따르는 굉장히 직감적인 사람이에요. 20년 동안 배우로 걸어와서 ‘전,란’을 만난 건 어떤 마음을 따라온 것 같아요. 더 하고 싶은 일, 더 좋아하는 것을 따라온 힘이 저를 이곳에 있게 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죠. 앞으로도 흐름 안에 있지만 밖을 공부하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다양한 행위자들이 산업과 세계를 바꿔나가고 있잖아요. 엄청 빠른 속도로요. 그런 변화에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접점을 만들어 가며 매체 불문, 장르 불문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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