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영·손태겸·김세인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바통을 잇다[인터뷰]
입력 2024. 10.29. 08:00:00

대도시의 사랑법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며 떠오른 속담이다. 네 명의 감독이 완성해 다채로운 맛이 느껴지는 '대도시의 사랑법'은 어떻게 한 작품이 되었을까. '대도시' 운명 공동체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감독을 만났다.

지난 21일 티빙을 통해 공개된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작가 고영이 다양한 만남을 통해 삶과 사랑을 배워가는 청춘의 로맨스를 그린다.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연작소설집에 실린 4편 전체를 원작자 박상영 작가가 극본화해 오리지널리티에 힘을 더했다.

또한 에피소드별로 연출을 달리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차용해,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4명의 감독이 에피소드를 나눠 맡아 각각의 연출 스타일이 돋보이는 8편짜리 시리즈를 완성했다.

이와 같이 흔치 않은 작업 방식은 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회가 아카데미 4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프로젝트로 진행돼 가능했다. 1, 2화 '미애'는 손태겸 감독이 3, 4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허진호 감독이 연출했다. 홍지영 감독이 5, 6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강렬한 여운을 전하고, 바통을 이어 7, 8화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김세인 감독이 대미를 장식했다.

김세인 감독은 "나 이 정도면 태연하고 괜찮은데 했는데 꿈도 많이 꾸고 잠은 쏟아지는데 깊게 못 자고 중간에 깼다"라고 설렘을 드러내며 "자꾸 트위터나 인터넷 반응을 찾아보게 된다. 기대했던 것만큼 반응이 많은 것 같아서 행복하다"라고 공개 소감을 밝혔다.

홍지영 감독은 "감독의 부담을 나머지 세 분과 나눌 수 있다는 안도감이 크다. 같이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이 있다"라고 후련한 마음을 전했다.

"사실은 특별한 시스템이에요. 한 사람이 쭉 연출하는 게 아니고 바통을 넘기면서 드라마를 굴리는 시스템이라 앞에서 감독님들께서 잘 구축해 주신 감정들을 제가 무너트리지 않을까 초반에 걱정도 많았어요. 촬영 들어가기 1년 전부터 감독 4명과 PD님, 작가님이 모여서 이야기 많이 나눴어요. 그러면서 부담감이 해소되고 재밌게 작업했어요."(김세인 감독)

"내가 혼자 작은 영화 찍을 때랑 다르게 생각해야 할 지점이 많아서 고민이 많았어요.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었어요. 언제 또 이런 협업 속에서 (다른 감독님과) 맞추기도 하고 서로 색을 드러내기도 하는 귀한 경험을 하겠어요. 그 속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한 시간이었고 찍을 때는 정신없고 바쁘긴 했지만 다채롭게 드러나서 좋았던 것 같아요."(손태겸 감독)


김세인 감독은 "전부터 박상영 작가님 팬이어서 팟캐스트, 북토크 영상 모든 걸 섭렵했던 사람이다"라고 팬심을 드러내면서 "총괄 피디님께서 연락이 와서 처음으로 미팅하는 날이었다. 그때까지는 사실 '재희'(드라마 속 '미애' 파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고 다 젖은 채로 카페에 들어갔는데 '늦은 우기의 바캉스'를 제안해 주셨다. 그때의 상황과 작품, 제 마음이 딱 연결된 것 같다"라고 '늦은 우기의 바캉스'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저는 사실 합류가 빨라서 제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골랐어요. 그리고 아무도 탐내지 않았죠. 저는 소설을 읽고 규호 캐릭터가 마음에 남더라고요. 만약 '대도시의 사랑법'을 누군가 선점했다면 규호의 자락이라도 묻어있는 '늦은 우기의 바캉스'를 골랐을 것 같아요."(홍지영 감독)

"저는 마지막에 합류해서 선택할 수 있는 타이밍은 아니었어요. 주어진 것에 감사히 설레는 마음으로 임했죠. 한편으로 불안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어요. 원작을 나왔을 때부터 책 자체를 좋아했고 작업실 옆에 꽂아둔 소설이었거든요. '미애' 파트는 저에게 선물처럼 찾아왔다고 생각해요."(손태겸 감독)

손태겸 감독은 첫 에피소드 '미애'로 드라마 포문을 잘 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첫 이야기가 고영과 미애(이수경)가 같이 살게 되는 시간을 압축적으로 다루는 텍스트에요. 미애를 만나고 미애가 떠나기까지의 시간 속에서 고영의 삶이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사이사이 나오죠. 퀴어 멜로 작품으로서 톤앤매너 맞출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고영의 전과 후 보여줄 수 있는 상대 캐릭터 만들어서 디자인해 보자는 결론으로 귀결됐던 것 같아요. 남규(권혁) 캐릭터가 나오면서 디테일이나 사건들이 바뀌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손태겸 감독)

각자의 스타일이 뚜렷한 네 감독이지만 결국 '대도시의 사랑법'은 한 작품이어야 한다. 각본 각색에 참여한 김세인 감독과 손태겸 감독은 결국 원작자인 박상영 작가에게서 해답을 찾았다고 전했다.

"소설이 가진 기조로 가자고 합의했죠. 각색 작업하면서도 원작을 닳도록 읽었어요. 7-8회 구조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과거와 현재 교차하는 걸 글로 읽었을 때는 왔다 갔다 하는데도 감정이 매끄럽게 흘러갔는데, 편집본을 봤을 때 안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해결은 원작의 문장들을 내레이션으로 많이 가져와서 과거 현재 분리되는 걸 바느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또 저는 원래 대사를 많이 안 쓰는 편이라 재치 있는 대사가 어려웠어요. 그럴 때마다 박상영 작가님 팟캐스트 들으면서 작가님 말투를 넣으려고 노력했어요."(김세인 감독)

"내레이션 정말 많이 가져왔어요. 설명해야 할 때는 작가님의 다른 책들에서 문장들을 발췌해 오기도 했어요. 저도 유머가 없고 그런 코미디를 잘 못해서 작가님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많이 읽었어요. 이런 감각에 익숙해져야 고영의 말에 닮아가고 유머가 살 수 있을까 했죠."(손태겸 감독)


캐스팅 과정도 남달랐다. 김세인 감독은 "공통으로 나온 배우는 의견을 나눴다. 남윤수 배우는 만장일치로 됐다. 각 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 이야기의 감독이 선택했다. 규호의 경우 저와 홍지영 감독님이 같이 캐스팅했다"라고 얘기했다.

홍지영 감독은 "손태겸 감독이 초반에 길게 작업해 주셨다. 나중에 (손태겸 감독이) 추려주신 것 보면서 최종 후보 오디션을 봤다"라며 "진호은 배우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라고 덧붙였다.

"진호은 배우가 오디션 끝나고 나가면서 '저 규호하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규호를 안다는 건 책을 읽었다는 거고, 소신을 밝히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그 한마디에 뒤가 다 보이더라고요. 그 얘기 듣자마자 김세인 감독을 쳐다봤죠."(홍지영 감독)

"홍지영 감독님께서 진정성을 많이 말씀하셨어요. 사실 오디션에 '대도시의 사랑법' 읽고 오시는 분도 있고, 안 읽고 오시는 분도 있어요. 그런데 읽고 오시는 분들 중에 대화 나누다 보면 유튜브 리뷰나 이런 거로 배운 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죠. 진호은 배우는 책을 완벽히 이해하고 왔다, 정독하고 왔다는 게 확 느껴졌어요."(김세인 감독)

그러면서 홍지영 감독은 "감독의 바람으로는 배우들이 남았으면 좋겠다. 티아라(고영의 친구들)까지 포함해서 남윤수, 이수경, 권혁, 김원중, 나현우, 진호은까지 다들 훌륭하게 그 역들을 소화했다"라고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자신의 에피소드의 히어로, 히로인이 되어준 배우들에 대한 자랑도 한 마디씩 더했다.

"김원중 배우는 완벽주의자예요. 사실 되게 준비시간이 타이트했는데 캐릭터에게 맞는 발음을 구사하는 분들을 혼자 인터뷰 따고 다니시고 노력을 엄청 많이 하셨어요.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영감을 얻으려고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계신다든지 뭔가 느끼려고 분주히 움직이셨어요.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있었겠구나 느껴져서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됐어요."(김세인 감독)

"이수경 배우의 모든 연기가 저한테는 뻔함이 없게 다가왔어요. 그게 새로웠어요. 예측했던 것보다 발랄하고 미애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훌륭하죠. 그 누구를 따라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는 해석이 놀랍고 계속 바라보고 싶게 만들어요."(손태겸 감독)

"진호은 배우는 내추럴 본 배우고 규호에요. 25세에 이 역을 이렇게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배우였을 거로 생각해요. 배우로서 코어를 정확히 가지고 있어요. 제가 하는 건 코어에 살붙이는 일뿐이었죠. 디테일이나 중요한 장면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고 확인하면서 배우와 관계를 공고히 한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호은이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 배우예요."(홍지영 감독)

네 감독의 에피소드를 하나의 스토리로 묶을 수 있었던 연결핀, 고영 역을 맡은 남윤수 배우에 대해서는 "클로즈업을 견딜 수 있는 진짜 배우"라고 극찬했다.

"저는 원래 정면샷 잘 안 쓰는데, 이번에 굉장히 많이 썼어요. 어리고 경험이 적은데도 클로즈업 사이즈를 견뎌내더라고요. 그걸 딱 경험해 보니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니까 스타일이 돼버렸어요. 충분히 그 표정과 디테일을 지어줄 수 있는 친구였어요."(홍지영 감독)


손태겸 감독은 퀴어 단편 영화 연출 경험이 있는 만큼, 퀴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발전한 것 같냐는 질문에 "어떤 변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거나 하진 않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되게 멀다고 생각해요. 퀴어가 세상에 나오는 게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런 시선들을 마주하는 양태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대도시의 사랑법'이 책으로 나왔을 때도 의미가 컸다고 생각하고요. 이걸 다채롭게 다양함을 보여주고 퀴어가 있다는 걸 말하는 행동 자체가 의미를 가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뻔뻔하게 해보자 그랬던 것 같아요."(손태겸 감독)

반면, 홍지영 감독과 김세인 감독은 퀴어 작품 연출이 처음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했는지, 또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작품이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하는지 물었다.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였고 너무 좋은 텍스트를 만났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박상영 작가님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대도시의 사랑법'이 제일 좋아했거든요. 제힘만으로는 오리지널로 구현하지 못할 세계가 있기 때문에, 너무 좋은 기회였죠. 상업 드라마 필드 안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는 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만들 때 부담은 없었어요. 흔히 말하는 정상 범위에서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플랫폼이 먼저 정해지지 않거나 투자가 반토막 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이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작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홍지영 감독)

"이 작품에 처음 합류할 때쯤, 한 친구가 한국을 못 견디고 베를린으로 떠났어요. '네 옆에 내가 있어'라는 이유만으로 붙잡을 수 없더라고요. 작품 오픈 날에 친구한테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네 생각을 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 친구가 '작고 큰 한국이 그리워진다'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자부심을 느꼈죠. 앞으로 이런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힘들어서 한국 떠나는 사람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또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길 바라요."(김세인 감독)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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