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정성일, 기다림 끝에 받은 보상 [인터뷰]
입력 2024. 10.30. 10:24:10

'전,란' 정성일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전작의 이미지를 지웠다. ‘더 글로리’의 하도영 역으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정성일이 도깨비 탈을 쓴 채 전쟁터가 되어버린 조선 땅을 누비며 조선의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겐신으로 차가운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넷플릭스 영화 ‘전,란’(감독 김상만)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바.

“너무 좋아요. 제 입장에서는 ‘더 글로리’ 후에 나오는 첫 작품이다 보니까 오랜 텀이 있었잖아요. 다행히 시작 자체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가고, 영화도 잘 나오고, 주위 반응도 좋다 보니 기분이 좋아요.”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무대 위에서 내공을 쌓아온 정성일은 드라마 ‘비밀의 숲2’ ‘산후조리원’ 등 작품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이후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속 하도영 역으로 대중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린 그는 차기작 선택에 많은 고심이 뒤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하도영 캐릭터가 너무 이슈가 되다 보니까 그런 류, 비슷한 류의 재벌이나 슈트를 입고, 각 잡힌 어떤 작품들이 많이 왔어요. 거기에 맞게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느낌에서 하도영을 넘어설 수 있는 캐릭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비슷한 류로만 가면 너무 국한될 것 같아 고사했던 작품들이 조금 있었어요. 천천히 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같이 일하는 대표님이 의견을 주셔서 기다렸어요. 텀이 있더라도, 천천히 가더라도 잘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그러던 중 ‘전,란’ 대본을 받게 되고, 안 할 이유가 전혀 없어 출연하게 됐어요.”



정성일은 자연스러운 일본어 대사로 극 몰입을 높이기도. 역할 소화의 디테일을 위해 일어의 기초인 히라가나, 가타카나부터 배워나갔다고 밝혔다.

“그게 제일 메리트 있는 작업이었어요. 다른 나라 언어라는 게 전에 했던 걸 벗어날 수 있잖아요. 국적 자체가 달라져버리니까. 영화 ‘아가씨’에서 일어를 공부해주신 교수님이 있는데 제작사에서 소개시켜주셨어요. 교수님에게 가서 히라가나부터 배웠죠. 대사만 외워서 하려니까 그것만 따라 가면 제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전달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아 겸사겸사 일본어도 배워보자 싶었죠. 6개월 정도 공부했는데 한글로 써진 대본이 아니다 보니 히라가나, 가타카나가 쓰여진 대본을 보면서 알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도 일본어 배우분이 있어 제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 뉘앙스, 억양, 톤 등을 그분에게 도움 받았어요. 그때그때 녹음해서 보내고, 책도 받았죠. 현대말이 아니라 고어다 보니까 거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요.”

일본 전통검술을 연마한 겐신은 쌍검을 사용, 일본 검술 특유의 절도 있는 방식의 걸음과 ㅏ세를 보여준다. 특히 사무라이로서 자신의 검술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진 캐릭터답게 백성을 살육하는데 앞장서는 잔혹한 인물이지만 칼을 섞으며 대결하는 상대와는 정정당당하게 대결해 승리하고자 한다.

“평소 몸 쓰는 걸 좋아해요. 운동을 너무 좋아하죠. 검술도 영화 ‘쌍화점’ 때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1년이란 시간 동안 검을 가지고 지내다 보니 몸에 맞게 잘 익은 것 같아요. 잘 따라갈 수 있었죠. 쌍칼을 쓰는 건 처음이다 보니까 거기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일본 특유의 검술이다 보니까 사무라이의 폼, 걸음걸이 같은 게 있어요. 사무라이에 대한 검이라 양손 검을 연습했죠.”



정성일은 극중 천영 역의 강동원과 검술 액션으로 강렬하게 부딪힌다. 정성일은 강동원과 액션 호흡에 대해 “동원 씨가 너무 잘하니까 부담되지 않았다”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리드해주면 잘 따라갈 수 있어서 편했어요. 부족한 사람들끼리 부딪히면 다칠 수 있는데 너무 잘하는 친구니까요. 둘이 합을 맞추고 이런 것도 현장에서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으니 바뀌잖아요. 그럼에도 동원 씨가 금방 하고, 저도 거기에 맞춰 잘 따라가 재밌었죠. 무섭거나 그런 게 아닌, 합에 대해 어려움은 없었어요.”

왜란이 끝난 7년 후, 겐신은 조선인으로 위장해 다니다 선조로부터 김충면이라는 이름을 하사받는다. 왜군의 갑옷을 입던 그는 조선인의 갑옷과 한복을 입었을 때 움직임 표현을 다르게 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7년 전후로 나누어 보자면 천영이랑 싸울 때는 조금 더 뭔가 사무라이 같은, 보폭도 그렇고 자세를 많이 봤어요. 7년 후에 신경 쓴 건 쉽게 사람을 죽이다 보니 ‘무(武)’라는 기본에서 벗어난 걸 표현하려 했죠. 미세한 차이지만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선에 있으면서 이 인물이 많은 사람들의 코를 베었다면 많은 살인을 했을 텐데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이면 생명에 대해 무감각해질까,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아무리 ‘무’를 중시하는 사람도 전쟁이라는 시간을 보내면 분명 이 사람은 ‘무’가 아닌 게 되는, 살욕에 아무렇지 않아 지죠. 그리고 결국 천영을 만났을 땐 웃어요. 그때는 나의 적을 만난 호기심, 그 순간만큼은 ‘무’를 즐기는 인물로 표현하려 했어요.”



‘전,란’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후반부 바닷가 해무 속 천영, 종려(박정민), 겐신 3명이 맞붙는 장면이다. 세 명의 인물은 각자의 복잡한 감정과 입장을 가지고 대결을 하는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환경 속 시시각각 변화하는 싸움의 양상에 맞춰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날아들지 모르는 공포감을 자아낸다.

“앞부분에 살짝 잘린 게 있어요. 저는 명확하게 천영을 죽이려 했죠. 정확하게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 하다 보니까 조선인이라고 해서 편이 될 수 없다는 게 명확했어요. 천영과 종려는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고, 제 입장에서 종려는 일본에 데려가야 하는 인질이었던 거죠. 그래서 천영에게 ‘손대지 마라’라고 해요. 천영은 제가 죽일 사람이고요. 천영은 죽여야 되니까 셋의 관계성이 너무 명확하게 2대1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결국 종려와 천영의 오해가 풀리면서 2가 되고 너무 흥분한 종려를 제가 죽이게 되죠. 시퀀스 속 관계도가 명확해서 좋았어요. 이 장면이 어떻게 구현될까 싶었거든요.”

예상하지 못한 구간에서 눈길을 끌고, 웃음을 담당하는 역할도 있다. 바로 겐신과 천영의 대화 중 통역사로 활약하는 소이치로다. 소이치로 역은 고한민이 맡아 극중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경쾌함을 더했다.

“한민이라는 친구의 어머니께서 일본에 사세요. 일본어를 현지사람처럼 잘하는 친구죠. 일본어 수업을 들어갔는데 그때 만나게 됐어요. 그 친구도 고어를 써야 해서 배우러 갔거든요. 늘 붙어있어야 하는 역할이다 보니까 그 친구에게 물어보곤 했어요. 분리불안 같은 것도 생기고요. 하하. 역할이 크고 작은 걸 떠나서 너무 멋있는 친구에요. 열심히 하고, 너무 잘하죠.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말을 제일 잘 타는 사람이에요. 액션팀을 대신해 탈 정도로 말을 정말 잘 타죠. 다재다능한 친구에요. 배울 것도 많고, 인성도 좋고. 그 역할을 너무 잘 소화한 것 같아요. 저에게 가끔 고맙다고 하는 저는 ‘네가 잘해서야’라고 했어요. 그 친구가 잘해서 영화 분위기가 환기 됐다고 생각해요.”



‘전,란’의 각본은 신철 작가와 박찬욱 감독이 맡았으며 특히 박찬욱 감독은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연출은 ‘심야의 FM’을 통해 호평 받은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여기에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진선규, 김신록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공개 전부터 기대를 높인 바. 정성일에게 ‘전,란’은 상업영화 데뷔작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내가 여기에 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 사람들과 한 작품에 나올 수 있다고?’ 싶었어요. 어벤져스 사이에 서민 한 명이 껴있는 느낌이었죠. 하하. 너무 좋았어요, 박찬욱 감독님이 제작하고, 각색했기에 ‘내가 여기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가 아니라, ‘들어가도 되나?’ 싶었죠. 이왕 들어갈 거면 피해는 주지 말자 생각했어요. 여기서 돋보여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죠. 참여하는데 너무 좋은 기회였어요. 기다렸던 보람이 있었죠. 고사하고,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간 작품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거기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좋았어요. 여러 좋은 경험을 하고, 결과적으로 들리는 평도 좋고, 영화도 잘 되니까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다 고맙죠.”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보상과 같은 호평이다. ‘더 글로리’ 하도영을 지우고, ‘정성일’ 이름을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정성일. 그가 앞으로 보여줄 다양한 얼굴과 연기에 기대되는 이유다.

“‘더 글로리’ 공개 후 1년이란 시간 텀도 있었고, 역할 자체가 다른 나라와 말을 하는 외국인의 역할이다 보니 ‘몰랐다’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선택을 하고, 준비를 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제도 하다 보니 기대 이상의 보상을 받은 것 같아요. ‘하도영이 없어진다’ 보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죠. 저는 단 한명이라도 진정성을 느끼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작품, 연기를 하고 싶죠. 명확하지 않지만 제가 하는 연기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옆에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가진, 하고 싶은 연기죠. 보는 사람이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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