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 그러거나 말거나 사랑이니까[인터뷰]
- 입력 2024. 11.04. 11:29:38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공개를 앞두고 세상은 반대 시위를 했고, 예고편은 내려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공개돼 대한민국에 이 이야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입증했다. 드라마 극본가이자 원작 소설을 집필한 박상영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여전히 유쾌하게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박상영 작가
본업이 소설가이기에 극본 작업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박상영 작가는 "2016년 등단하면서 콘텐츠 진흥원 웹드 진흥원 당선됐었다. 원래 투트랙 했었고 극본 쓰는 게 익숙하고 자유로운 일이라 새롭진 않았다"라고 답했다. 이어 " 원작이 좋아서 제작사에서 연락을 주셨고 에센스를 살리고 싶다는 시그널을 주셨으니까 영상화의 문법으로 재밌게 바꿔 쓰되 원작의 정신은 가져오자고 생각했다"라고 극본 작업기를 전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에피소드별로 연출을 달리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빌려,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4명의 감독이 에피소드를 나눠 연출했다. 네 명의 감독과 소통하며 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텐데, 박상영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감독님 네 분 모시는 것 같았다'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사실 어려운 부분이 있었죠. 창작자 네 분과 다른 느낌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다르게 해야 했기 때문에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최대한 존중하는 느낌으로 가닥을 잡았어요. 감독님들 의견을 수용하고 그렇게 수정했어요. 손태겸 감독은 각색을 거의 다 하셨고, 새로운 버전의 미애라는 생각이 들었죠. 5, 6부를 맡으신 홍지영 감독님은 제 의견을 100% 수용하셔서 있는 그대로 찍어주셨어요. 그런 연출적 차이가 있었죠."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왔다고. 그는 "다채로워서 좋긴 했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 청춘물이라고 생각하고 집필했는데, (감독님들이) 각자 다른 지점에 포인트를 뒀다는 게 연출에서 느껴졌다. 배우들의 연기, 톤도 다르다는 걸 느꼈다. (연출에 따라) 배우들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라고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공개에 앞서 지난달 1일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는 박상영 작가의 원작 소설 중 첫 번째 에피소드 '재희'를 각색한 작품이다. 요즈음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2명 꼽으라고 한다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와 영화, 드라마, 원작 소설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은 박상영 작가를 꼽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박상영 작가는 영화 무대인사부터 드라마 공개까지 한 달 내내 '대도시의 사랑법' 생각뿐이었다며 "너무 행복했다. 영화가 먼저 계약된 상황에서 드라마 제안이 잘 오지 않는데 드라마 제안도 들어오고 집필까지 요청하시니까, '나 좀 찢었나.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가 실현되나' 신나는 생각을 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 주연을 맡은 김고은과 노상현, 드라마 주연을 맡은 남윤수, 이수경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김고은 씨를 보면서 얼굴 80개 바뀌는 줄 알았어요. 평범한 사람의 민낯을 너무 잘 보여줘서 진짜 작두 탔구나, 생각했죠. 김고은 씨가 파워풀한 느낌이었다면 이수경 씨는 통통 튀고 귀여운 느낌이었어요. 또 노상현 씨가 연기한 장흥수는 성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마초남, 클로젯 게이(벽장 게이)였죠. 남윤수 씨가 해석한 고영은 자신의 정체성에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데 같은 뿌리에서 나온 캐릭터인데 다르게 표현되는 걸 보면서 해석 능력이 다른 결과를 만드는구나,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장흥수 캐스팅 과정에서 난항을 겪은바. 드라마 역시 캐스팅, 투자, 플랫폼 결정 등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감독님들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캐스팅 과정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죠. 그 어려움 딛고 ('대도시의 사랑법'을) 잡아준 배우들은 퀴어에 대한 한계도 없고 이해도도 완벽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빛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할로서 일로서 대하는 게 아니라 믿고 소통하고 있다는 걸 느꼈죠. 작품 나온 거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호은 씨는 촬영 끝나고 엉엉 울고 윤수 씨는 매체와 인터뷰에서 거의 명예 게이처럼 얘기를 해줘서 저로서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이런 배우들을 어디서 또 만날까요?"
특히 작품의 중심이 된 고영 역을 맡은 남윤수에 대해 "에이 리스트 중 한 명이었다." 특별한 애정과 신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남윤수 씨는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예상하지 못한 의외성이 있더라고요.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기하는 배우인 것 같아요. 원래 고영은 그런 사랑스러운 인물은 아니거든요. 그냥 웃기는 애였는데 남윤수 씨가 하니까 귀엽고 사랑스럽고 못된 짓을 하는데 미워할 수 없더라고요."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공개 직전까지도 진통을 겪었다. 일부 사람들이 공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시민단체의 민원으로 예고편이 내려가는 등의 일이 있었던 것. 박상영 작가는 "저희 작품이 일상의 온도를 선명하게 담고 있어서 이런 표적이 된 것 같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거 아닐까 생각한다. 판타지화, 대상화된 퀴어물이 아니라서 더 낯설어하시는 거 아닐까"라고 자기 생각을 밝혔다.
"마치 문을 열고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세게 밀고 나가는 데는 진통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이 작품 쓸 때부터 한국 땅에 없던 작품 만들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BL 작품도 있었지만 일상의 온도를 그대로 닮은 퀴어물은 우리나라에서 본 적 없는 그림이에요. 그런 걸 시리즈로 보여주자는 포부가 있었죠."
대한민국 사회가 퀴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적의가 가득하다. 아니면 비가시화하거나. 단적으로 이를 드러내는 캐릭터가 바로 고영의 엄마, 은숙(오현경)이다. 은숙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아들의 성정체성을 알고 정신병동에 보내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성이라는 게 자애로운 측면이 강조되지만 사실 사랑과 애증의 관계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모든 걸 주고 있다고 보이지만, 사실 엄마의 이기적인 동기로 자식을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하지만 결국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의 가닥에 닿으려는 인간의 안간힘도 보여주려고 했어요. 세상이 퀴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박상영 작가가 '대도시의 사랑법'을 자신의 20대를 담은 보고서라고 표현한 만큼 고영에게 느끼는 애틋함도 남다른 듯 보였다. 어딘가에 고영이 실존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무슨 말을 건네고 싶은지 물었다.
"지금도 좌충우돌하고 있지 않을까요. 삶을 앓고 있는 모습은 여전할 것 같아요. '너의 용기 있는 불나방 같은 모습을 사랑하고 응원한다'고 전해주고 싶어요. 계속 용기를 잃지 않고 세상과 불화하더라도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박상영 작가는 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 '믿음에 대하여' 등을 발표하며 퀴어 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처음에는 되게 부담스러웠어요. (무언가의) 대표화가 된다는 게 부담스러운 느낌이었죠. 지금은 그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퀴어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이 읽혔고 드라마화되는 걸 보니까 큰 방점을 찍은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무거운 왕관이기도 하죠. 퀴어 운동이나 그런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진짜 사랑 얘기를 진하게 해보자라는 마음이었죠."
박상영 작가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청춘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우울을 특유의 유머로 승화시키는 데 특출나다. 그 가운데서도 사랑을 놓지 않는 끈기 있는 작가기도 하다.
"규칙적인 식사, 운동, 네티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새로운 짤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가지고 밈에 대해 녹슬지 않으려고 해요. 유머는 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고 방패이기도 해요. 퀴어라는 게 즐겁기만 할 수 없잖아요. 웃음으로 털어낼 수 있다는 게 고영에게도 갑옷이고, 작가인 저에게도 갑옷이죠."
이런 박상영 작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바로 '세상에 없던 이야기'에 대한 열망이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도 '대도시의 사랑법'이 그랬듯이 '한국 땅에 없는' 이야기라고. 그는 "할머니 재벌에 대한 이야기다. 이전의 저로서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 선택이다"라고 스포했다. 두 번째 드라마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마인' 이나정 감독과 함께 준비 중이라고.
"한계가 없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원 없이 퀴어 사랑 얘기해 봤으니까 이제는 다른 종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아요. 그런데 흔히 볼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없던 얘기 하기 위해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잘 못 봤던 얘기들, 조명되지 않았던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에게 렌즈를 비추는 것도 그 방법이 될 수 있죠. 아니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잘 모르는 내면의 이야기,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의 그림자와 상처 같은 것을 대중 장르에서 보여주려고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주)메리크리스마스(주)빅스톤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