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숙한 세일즈' 연우진, 어린 시절로의 여행[인터뷰]
- 입력 2024. 11.21. 08:00:00
-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내 손이 닿을 것 같은 그 시절로의 여행이었던 것 같아서 마음이 남달랐다. 그 순간 하나하나 사람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배우 연우진에게 '정숙한 세일즈'는 어린 시절로의 여행 같은 작품이었단다.
연우진
지난 17일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정숙한 세일즈’(연출 조웅, 극본 최보림)은 '성(性)'이 금기시되던 그때 그 시절인 1992년 한 시골마을, 성인용품 방문 판매에 뛰어든 '방판 시스터즈' 4인방의 자립, 성장, 우정에 관한 드라마. 최종회는 전국 8.6%, 수도권 9.1%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완벽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닐슨코리아 제공, 유료가구 기준)
연우진은 이번 작품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당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작품의 기획 의도가 너무 좋아 출연을 결심했다. 극 중 연우진은 서울에서 잘 나가던 아메리칸 스타일의 형사 김도현 역을 맡았다.
"기획 의도가 너무 좋았다. 멜로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그 나이대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생각을 잘 녹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닿아있는 90년대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감사함으로 다가왔고 그 안에 멜로가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힘든 순간이 와도 나름의 방법으로 이겨내자였다. 지방 촬영이 많았는데 정말 많이 뛰었다. 이 순간을 즐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자연 속에서 힐링하면서 건강한 시간으로 채웠다"
'정숙한 세일즈'는 성인용품을 다룬 최초의 드라마인 만큼 소재에 대한 신선함과 동시에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연우진은 이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이야기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인용품이라는 소재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매개체라고 생각했다고.
"섹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때도 말하기 어려웠지만 지금도 사실은 입 밖으로 꺼내기 불편한 순간들이 많다. 요즘은 좋은 성인용품 샵들이 많이 생겼지만 재미있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편견으로부터 사회에 한 발짝 나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시대 상처로부터 보듬어줄 수 있는 이야기 힘이 있었다. 성인용품 자체는 매개체라고 생각했다. 자극적으로 표현이 된다면 고민해 봤을 텐데,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김도현은 아픔을 숨기고 파헤쳐나가는 인물로 해석했고 그 지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김도현은 시대와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질적인 캐릭터다. 연우진은 사소한 서울 사투리부터 헤어스타일까지 신경 쓰며 인물 톤을 완성했다.
"처음에 의상 콘셉트를 잡을 때 회의를 많이 했었다. 듀스 고 김성재 님의 머리 스타일로 하고 나올까 생각하고 피팅을 했었다. 미국에서 살다 온 설정이라 분위기가 가벼워지는 게 있더라. 약간 클래식한게 어떨까 해서 브라운 계열에 부드러운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판시스터즈와 비주얼적으로 이질감이 있다. 어색함이 있는 아이러니함이 있다고 생각했고 해치지 않는 선에서 클래식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서울말도 과하지 않게 설정하려 했다. 몰입을 해치지 않기 위해 적절하게 수위를 타는 게 중요했다"
후반부에는 김도현이 애타게 찾고 있는 친모가 오금희(김성령)란 사실이 밝혀진다. 길고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비로소 이뤄진 두 모자의 눈물 상봉 엔딩에 시청자들도 함께 울었다.
"김성령 선배님이 실제로 너무 소녀 같으시다.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 보여서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드라마를 잘 보셨다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는 사안이다. 선배님 얼굴만 봐도 몰입이 잘됐다. 기본적으로 깔린 감정 자체가 그리움이라서 몰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배냇저고리에 적힌 'KBH'를 설명하자면 작가님께서 제 본명(김봉희)을 기재해 주셨는데 몰입을 위해 다르게 표현해달라고 했다"
4년 후, ‘방판 씨스터즈’는 ‘정숙한 세일즈’라는 성인용품 가게를 오픈하고 김도현은 한정숙(김소연)을 다시 만나 일도, 사랑도 모두 꽉 잡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연우진은 함께 호흡한 김소연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소연 선배를 보면서 그 힘든 시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버텨온 모습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더라. 롤모델이 김소연 선배님으로 구체화 됐다. 나도 저렇게 변함없이 잘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게 너무 고맙다. 우리 드라마에서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 시대 때는 서태지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이름이 주는 어떤 힘이 있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서태지라는 존재가 가슴속에 든든하게 존재했는데 또 하나 들어온 게 김소연이다"
'정숙한 세일즈'처럼 실제 연우진의 1990년대도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서태지를 너무 좋아했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짙게 남아있다. 그 시대 공기의 냄새가 있다는 걸 믿는다. 냄새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따뜻했고 내가 세상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사회 편견과 맞서는 작품 속 인물들처럼 배우 연우진도 편견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연우진은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바꾸기보단, 본인 역량에 맞게, 그 나이대에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단다.
"멜로에 대한 인식이 강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항상 그 부분을 염두하고 연기하고 있다. 다만 의도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특별히 하려고 하진 않는다. 나이에 따라 깊이와 사고가 달라지듯이 그에 맞는 결이 있다. 연기 철학 중 하나가 할 수 있는 역량만큼만 하자다. 이미지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할 수 없는 도전보다는 느끼는 선에서 다양성을 변주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려고 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지키면서 새로움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조금 더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잠시 지쳐있던 찰나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을 만나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연우진. 그런 그가 또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향후 행보에 기대가 모인다.
"올해는 알록달록했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하고 가장 바빴던 것 같다.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올 한 해를 채웠다고 생각한다. '정숙한 세일즈'를 만나 행복하게 연말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 경우는 내 어린 시절로의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상력을 추구해야 하는 작업이 아닌 내 손이 닿을 것 같은 그 시절로의 여행이었던 것 같아서 마음이 남달랐다. 그 순간 하나하나를 오래도록 기록하고 싶어서 노력했다. 짧았지만 길게 담으려 했다"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점프엔터테인먼트, 하이지음스튜디오, 221b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