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이' 신예은, 세상의 허영서들에게 [인터뷰]
- 입력 2024. 11.22. 09: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을 다니며 '배우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신예은에게도 '정년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극을 위해 하루에 최소 2시간, 최대 8시간씩 소리를 연습하면서 많은 노력을 쏟아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엘리트' 신예은이 '매란국극단 엘리트' 허영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신예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뜨거운 화제성을 입증한 '정년이'는 시청률 4.8%(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시작해 자체 최고 16.5%로 막을 내렸다. 신예은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신기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봐주신 것에 정말 감사했고, 노력한 시간들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고 기분 좋은 소감을 밝혔다.
'정년이'의 원작은 2019부터 3년 간 연재됐던 동명의 웹툰으로, 캐스팅 소식과 동시에 신예은 역시 웹툰 속 허영서와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신예은은 촬영에 임하기 전에 원작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저도 원작을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일부러 참았다. 원작을 보면 그 속에 있는 그림체를 제가 따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것 같았다. 스타일도 영서의 머리를 따라 해야 할지 고민할 만큼 웹툰 이미지를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오히려 원작을 멀리 했다. 만약 원작을 봤다면 제가 덜 자유롭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신예은은 극 중에서 노래, 춤, 연기 모두 탄탄한 실력에 집안 배경까지 갖춘 매란국극단의 엘리트 허영서 역을 맡았다. 신예은은 "처음 대본 봤을 때도 노력하는 엘리트인 영서가 끌렸다. 노력으로 만들어진 실력이라는 게 좋았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캐릭터에 큰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신예은은 처음에 허영서가 자신에게 적합한 역할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제가 처음에 웹툰 원작 속 인물의 기본 정보만 봤을 땐, 영서가 되게 까칠하고 나쁜 아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싱크로율이 높다는 반응을 보고 '내가 저렇게 나쁜 애였나' 생각하게 되더라(웃음). 그런데 영서를 더 알고 나서는 좋은 애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이런 모습들을 닮았다고 해주셨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사실 이미지적으로 제가 어느 부분이 닮았는지, 어느 부분을 닮아야 하나 고민도 있었다. 극 중 주란 역의 우다비 배우가 고등학교 후배인데, '언니 고등학교 때 보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주더라. 그 말이 제게 용기를 줘서 확신이 생겼다. 내가 허영서를 맡아도 되는 사람이고, 내가 이 역할을 할 자격이 된다는 것을 느껴서 그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하게 됐다."
시청자들이 영서라는 인물에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신예은이 영서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예은은 "저는 이미지보다 영서가 가진 상황, 마음, 사건에 중점을 두고 임했다. 영서와 엄마의 관계성, 정년이를 만나고서 성장하는 과정, 영서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초점을 두고 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시청자분들이 공감할 수 있게, 이걸 제가 잘 설득하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예은이 바라본 허영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는 영서가 "세상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볼 인물"이었다며 그랬기에 더욱 사랑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영서는 누구나 한 번쯤 다 겪어볼 만한 인물이다. 성공하고 싶고, 1등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게 당연한 사람의 심리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있는 허영서는 정말 많은 대상을 말한다. 매번 비교를 당하는 사람,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자신의 재능을 못 알아보는 사람,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치가 안 보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 도대체 내가 이 직업을 사랑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영서가 다 느껴봤을 경험과 생각들인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영서라는 캐릭터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특히 '정년이'가 배우들에게 더욱 고난도의 극이었던 것은 '국극' 때문이었다.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출연배우들 모두 현대 무용, 소리 등 부가적으로 준비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다.
"사실 준비과정은 저 말고도 다른 배우들도 다 힘들어서 저만 힘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웃음) 제가 유독 목이 약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목이 많이 상해서 병원도 많이 다니고, 아침부터 확인하는 게 목상태였다. 매일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목캔디도 종류별로 다 사 먹어보고, 약도 챙겨 먹었다. 소리만 못하면 차라리 상관이 없는데 연기까지 방해가 되니 이게 힘들더라. 말을 못한다는게 정말 불편한 걸 이번 기회에 많이 느꼈다. 그런데 무대를 올리고 촬영을 하니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는 시간이라 이제 다 끝났다는 느낌이 들더라. 완성본을 방송으로 처음 봤는데, 그걸 보니까 그제야 해냈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멋진 걸 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또한 다양한 국극을 선보인 만큼 신예은은 허영서 뿐만 아니라 그가 연기하는 몽룡, 고미걸, 달비 등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해야 했다. 그는 역할 하나하나에 목표를 두고 접근했다.
"깊게 생각하면 어렵기에 쉽게 생각하려 했다. 일단 단순하게 배우 신예은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드리는 게 첫 번째 목표였고, 그 다음에 인물에 깊게 접근했다. '허영서가 연기하는 몽룡', '허영서가 연기하는 고미걸'처럼 디테일하게 들어갔다. 영서는 조금 절제를 하고 누구나 생각하는 이몽룡을 연기할 것 같았다. 정년이는 '이몽룡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와 같은 접근이라면 영서는 '저게 이몽룡이지' 느낌인 거다. 그리고 '바보와 공주'부터는 영서도 조금 내려놓을 줄 아는 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뒤에 나오는 '상탑전설'에서는 영서가 대본을 받고서 달비라는 캐릭터에 공감을 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그러면 영서가 달비에 접근하기 편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한 인물마다 목표를 정해서 접근했다."
남역을 연기하기에 신예은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필요했다. 그는 "내가 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내가 남자라고 말해도 사람들이 안 믿는다. 그래서 나라도 믿자는 생각으로 '나는 왕자님이다', '나는 도련님이다' 생각했다. 그래야 보는 관객도 확신을 갖는다고 생각했다"며 "공연을 올릴 때 관객분들의 리액션을 따로 딴다. 원래는 연출 선생님들께서 '여기서 웃어주세요' 하는 식으로 타이밍에 맞춰 요청을 하는데, 웃는 부분이 아닌데 저의 연기를 보고 진짜로 웃어주시더라. 그래서 계획된 게 아닌 진짜 리액션이 나올 때 희열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고된 작업이었던 만큼 신예은은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정년이'는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현실 허영서'였던 신예은이 스스로에게 쉴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저는 저를 절대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데뷔 전에는 제 스스로를 잘 칭찬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너는 더 잘할 수 있어', '이것보다 더 잘해야 돼' 생각하면서 당근보다 채찍을 많이 줬다. 남들이 잘한다고 해도 '어느 부분이 잘한 거지?', '더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게 되더라.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로 더 잘하면 좋겠다고 피드백을 주면 공감했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도 인정할 부분은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칭찬도 해주고,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서도 스스로 쉴 공간을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정년이'를 하면서도 영서를 보면 너무 잘하는데 왜 본인만 모르나 싶더라. 또 옥경이나 혜랑이를 보면서도 남에게는 저 삶이 행복해 보여도 본인이 만족하지 않으면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제게도 큰 교훈을 줬다는 게 복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며 인물을 통해 저도 성장했다."
신예은에게 '정년이'는 자신감을 준 작품이 되기도 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보며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마주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신예은은 확신과 함께 열심히 달려갈 예정이다.
"'정년이'를 하면서 연기적으로도 제가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도 맡아보고, 제 스스로도 다양한 인물들을 해낼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이제 겁이 없어졌다. 배우는 다양한 인물들을 맡게 된다. 장르물에 들어갈 수도 있고, 운동선수나 선생님처럼 특정한 직업인이 될 수도 있다. 대본을 받고 나면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생각되는데, 이제는 잘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물론 준비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고, 그런 것들에 대한 겁이 없어진 것 같다. 영서가 그랬듯 저도 저를 더 사랑하고 본업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용기를 얻게 된 시간들이었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앤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