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채, 안락함에 취하지 않는 '문옥경'처럼[인터뷰]
입력 2024. 12.03. 09:00:00

정은채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배우 정은채가 그 누구도 아닌 정은채의 문옥경을 완성했다 익숙한 긴 머리와 원피스가 아닌 숏컷과 수트를 택한 의외의 과감함, 정은채의 다음 선택에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김태리)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린다. 시청률 4.8%(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시작한 '정년이'는 지난달 17일 자체 최고 16.5%로 막을 내렸다.

극 중 매란국극단의 왕자님 문옥경으로 분한 정은채는 '왕자님'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시청자들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정은채는 이러한 반응에 대해 "황송하다. 현장에서 다 왕자님으로 불러주셔서 처음에는 농담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끝까지 모두가 그렇게 불러줬다. 덕분에 편하게 왕자님의 옷을 입었던 것 같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고 대해주셔서 편안했다"라고 웃었다.

특히 긴 머리, 청순하고 가녀린 느낌이 강했던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잘생쁨 매력에 '정은채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극찬도 이어졌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가녀린 여성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마 해왔던 작품 속에서 그런 스타일이 부각돼서 그런 시선이 당연한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히 제 안에 문옥경 같은 성격들이 있기 때문에 잘 꺼내서 쓰면 색다른 연기, 새로운 얼굴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여러모로 도전해야 할 것이 많았던 캐릭터였지만, 정은채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며 불가항력의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여태 받았던 대본의 캐릭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비롭고 신선한 느낌의 캐릭터였고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무조건 잘해야겠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정년이'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혜랑이 같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위축되고 불안감을 느끼는 게 평범한 리액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옥경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게 상황을 받아들이죠. 그런 지점에서 이 캐릭터가 신선하다, 이 사람은 조금 다른 세계에 가 있는 인물이구나, 느꼈어요. '내가 느끼는 부분에 몰입하고 있는 캐릭터구나' 생각하면서 오묘하다고 느꼈죠."

정은채는 "문옥경 캐릭터 자체가 멋있다"라며 그만의 멋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따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 레퍼런스를 찾는 것도 포기했다. 그는 "무조건 내가 자연스럽게 하되 그것이 이 캐릭터와 톤이 잘 맞아야 한다는 걸 염두에 뒀다"라고 전했다.

"'정년이'에서 문옥경의 일상적인 모습과 무대 위의 문옥경 모습이 아예 다르다고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마치 두 인물을 준비하는 것처럼요. 그래야 두 캐릭터가 산다고 생각했죠. 일상의 문옥경을 연기할 때는 오히려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서 흔히 생각하는 남자다움을 배제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무대 위에서는 주인공 같은 아우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역할을 만들어 나갔던 것 같아요. 그게 대비돼서 시청자들이 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봐주신 것 같아요."

당시 국극 남역 배우들처럼 정은채도 '정년이'를 통해 여성 팬이 늘지 않았을까. 정은채는 "집순이여서 일상에서는 큰 반응이 없다"라며 "지인들을 통해 '잘 보고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인기 비결에 대해서는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과 섬세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을 연기하지만 그게 비치고 투영되니까 전혀 다른 결의 남자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여성국극 남주가 소녀팬들을 끌고 다닐 수 있지 않았나, 싶다"라고 설명했다.


문옥경을 이야기하면 서혜랑(김윤혜)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는데, 정은채는 드라마 서사에 드러난 것보다 두 사람 사이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혜랑이는 국극단 초창기 시절부터 극 중 현재까지 긴 세월을 함께한 동료예요. 아마 초창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혜랑이가) 옥경이를 구원해 준 인물일 수도 있겠죠. 문옥경의 나약한 모습까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이기도 하고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는 완벽한 파트너죠. 둘 사이에는 사랑과 우정, 연민…. 너무나 많은 복합적인 감정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문옥경은 이렇게나 돈독하던 서혜랑을 두고 국극단을 나와 영화배우로 전향한다. 문옥경이 느꼈던 감정은 권태로움이었는데, 정은채는 "문옥경은 새로운 자극과 시도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혜랑이한테도 말하듯 반복되는 레파토리, 이름만 달라진 똑같은 캐릭터에 식상함을 느끼는 인물이고 새로운 자극과 시도가 있어야만 즐거움을 느끼고 삶의 이유를 느끼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또 즉각적으로 어떤 리액선을 하는 성격의 캐릭터가 아니라 떠날 때도 남들이 볼 때는 갑작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문옥경에겐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감정이었을 거예요. 모든 게 준비된 이별이죠. 한편으론 무서운 인물이기도 하죠."



정은채는 '정년이'를 통해 처음 소리에도 도전했다. 촬영 기간까지 합해 약 1년 동안 소리 수업을 들었다는 그는 "끝없는 싸움 같았다. 내가 어떤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많았고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1~2년 한다고 해서 절대 그 지점까지 갈 수 없다는 걸 하면서 알게 됐다"라며 "명창 선생님께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너무 고통스럽게 접근하지 말고 정말 즐기는 마음으로 해라 다독여주셨다. 극중극이기 때문에 그 인물이 무대에서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더 중요하기 하다고 조언해 주셨다"라고 전했다.

"작품 속 무대 장면이 이렇게 길고 디테일하게 연출됐던 건 '정년이'가 유일무이하지 않나요? 쉽지 않은 시도고, 용기 있게 시도를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요. 소리 장면을 어떻게 봐주실지 모두들 고민하며 연기하고 찍었는데, 과감하게 그 장면들을 살려주셔서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또 그 부분이 저희 드라마의 큰 포인트인데, 시청자분들이 사랑해 주시고 애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가장 애정하는 소리 장면은 '바보와 공주' 장면이라고. 정은채는 "문옥경의 삶에서 마지막 국극이었을 것이고, 저도 마지막 국극 장면 촬영이었어서 마음이 복잡하고 묘했다"라고 설명했다. '바보와 공주' 공연을 끝으로 문옥경은 '정년이'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만의 엔딩은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졌는데, 정은채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옥경이가) 국극단을 나가고는 성공했을 것 같아요. 문옥경은 기질이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도했을 때 끝을 보는 사람이라 매체로 넘어갔어도 끝을 봤을 것 같네요. 영화를 계속했을지는 모르겠어요."


'정년이'는 역대 tvN 드라마 시청률 9위에 오르는 등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정년이'의 인기에 따라 여성서사, 여성 국극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판소리 공연, 창극 공연들이 매진됐다고 들었어요. 궁극적으로 '정년이'를 만드신 분들이 그랬으면 하는 염원이 있었는데 현실로 이루어진 것 같아서 놀랍고 감사해요. '정년이'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나오는 데 일차원적이지 않고 입체적으로 그려졌어요. 단순히 질투와 경쟁이 아니라, 시작점은 그렇더라도 조금 더 넓게 표현되면서 각각의 성장을 그린 드라마죠. 우리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정년이'는 윤정년(김태리)이 국극 배우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만큼, 연기에 대한 대사도 많았다. 특히 매란국극단 연구생들의 우상이자 선배로서 한마디 툭툭 던지는 문옥경의 대사들이 정은채 마음에도 울림을 줬다고.

"정년이한테 한마디씩 조언할 때 이 대사들이 현장에서 나한테 필요한 대사라는 생각이 든 순간들이 많았어요. 방자를 연습하는 정년이한테 '너만의 방자를 찾아'라고 조언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저만의 문옥경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했던 것 같아요. 사랑을 많이 받는 거 보니 저만의 문옥경을 잘 찾은 것 같아요."

그만큼 문옥경은 정은채를 한 뺨 성장시킨 캐릭터였다. 대중들에게는 정은채의 새로운 면모를, 정은채에게는 새롭게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문옥경은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사람의 위치에 있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갈망하고 안주하지 않는 면모를 갖고 있어요. 불안정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런 모습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고요. 새로운 연기 시도에도 용기 내서 도전하고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project hoso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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