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승’, 반가운 송강호 코미디…“1시간 47분 아깝지 않을 것” [인터뷰]
- 입력 2024. 12.04. 16:07:4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배우 송강호가 무겁고, 진중한 얼굴을 벗었다. 소탈하고, 유쾌한 연기로 돌아온 것. ‘송강호식 코미디’가 반가운 영화 ‘1승’(감독 신연식)이다.
'1승' 송강호 인터뷰
‘1승’은 이겨본 적 없는 감독과 이길 생각 없는 구단주, 이기는 법 모르는 선수들까지 승리의 가능성이 1도 없는 프로 여자배구단이 1승을 위해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다. 영화 ‘넘버3’ ‘조용한 가족’ ‘반칙왕’ 이후 정통 코미디 연기에서 멀어졌던 송강호가 다시금 주특기를 꺼내들었다.
송강호는 극중 승리 기록은 전무한, 해체 직전 핑크스톰의 신임 감독을 맡은 김우진 역으로 분했다. 그는 지도자 생활 통산 승률 10% 미만, 잇따른 퇴출, 파면, 파산에도 불구하고 배구공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김우진 역이 영화다 보니까 비약적, 단편적으로 그리잖아요. 누구나 김우진 같은 마음이 있다고 봐요. 살다보면 답답하고, 왠지 위축되고, 자신감도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리고. 저도, 여러분도 있을 거예요. 사전 무대인사를 했는데 거기서 ‘배구라는 스포츠를 담고 있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 1승은 무엇인가, 1승을 하면 100승이 되고, 1000승이 될 수 있다’라고 했어요. 극장 문을 나설 때 ‘1승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작지만 가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겠다고 했죠. 그래서 김우진이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2시간 안에 보여줘야 하는 비약함이 있지만 크게 늘려보면 나 자신과 비슷한 인물이라 생각했죠.”
송강호는 소문난 배구 마니아다. 그는 수많은 경기 중계를 보며 실제 감독이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분석하고, 연구하며 김우진 캐릭터를 체화시켰다.
“배구는 스펙트럼이 넓어요. 파워, 에너지는 말할 것도 없죠. 세계관, 작전, 수행하는 팀워크 등. 작전을 어떻게 수행하냐를 보면 다양성과 복합적인 재미가 좋아요. 반대편은 그걸 막아내야 하잖아요. 극중 방수지 선수를 보며 작전을 이야기하는데 그건 차상현 감독님이 실제 지시한 걸 그대로 따라한 거예요. 감독은 선수의 심리전까지 파악해야 해요. 머릿속에 남아있는 실수를 지적하시더라고요. 선수의 눈동자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에 걸려있는지 지적하는 걸 보고 그대로 연기했어요. 동작과 플레이어, 기술, 기능만 체크해서 지시하는 게 아닌, 지금 이 선수의 머릿속에 뭐가 있고, 무엇 때문에 안 되는지 금방 판단해야 하죠. 그런 재미가 너무 있었어요.”
송강호, 박정민의 조합도 기대감을 더한다. 높은 신뢰감을 주는 배우와 극중 뛰어난 존재감을 발휘하는 배우의 만남이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은 바.
“박정민 배우는 데뷔작 ‘파수꾼’ 때부터 광팬이었어요. 본인이 가진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유심히 보니 스스로 배우로서 타고난 재능과 함께 스스로 소양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에 대한 소양, 세상에 대한 소양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것 같아요. 박정민 씨가 출판사도 운영하잖아요. 그런 일환이 인문학적 지식을 머리에 담는다가 아니라, 본인이 세상과 소통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지점이 굉장히 놀랍고, 후배지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파수꾼’ 이후 작품을 보면 캐릭터 해석력과 표현력이 탁월하잖아요. 같이 하니까 역시 장면의 장악력, 본인의 연기를 임팩트와 에너지 넘치게 하는 게 놀라웠어요. ‘역시 박정민’ 하는 구나 생각이 들었죠.”
특별출연한 조정석과의 재회도 반갑다. 송강호, 조정석은 2013년 개봉된 영화 ‘관상’에서 찰떡 호흡을 자랑했기 때문.
“약간 아쉬웠어요. 길었다면 더 재밌게 했을 텐데 싶었죠. 조정석 씨는 잘 아시겠지만 박정민 씨와 또 다른, 그만이 가진 장악력이 대단한 배우에요. 개인적으로 친한 후배기도 하지만 흔쾌히 특별출연을 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실제로 보면 조정석 같은 감독님이 많이 계세요. 그래서 리얼했죠. 외모에선 안 보이지만 엄청난 플레이어거든요. 영화에선 친한 후배니까 비아냥거리고, 조롱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들이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리얼했던 것 같아요.”
‘1승’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1승의 기쁨을 되새기게 만듦과 동시에 인생에서 단 한 번의 ‘1승’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송강호는 데뷔 이후 오직 ‘1승’을 위해 달려왔던 과거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내년이면 데뷔 30년이에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1승을 한) 느낌이 들 때가 ‘초록물고기’였죠. 데뷔작은 홍상수 감독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인데 그땐 연극 공연을 하면서 동시에 찍었어요. ‘초록물고기’를 찍을 땐 비중도 컸고, 제대로 영화 연기에 올인했죠. 그때가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영화 연기를 하고, 좋은 작품이 나왔을 때 ‘이게 1승 같은 느낌인가’ 싶었죠.”
1승을 위해 포기한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송강호는 “승리도, 포기한 것도 없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배우로서 삶을 성실하게, 묵묵하게 걸어왔다”라고 덧붙였다.
“작품을 선택할 때 거절한 작품들이 물론 다 훌륭했지만, 안전한 선택은 포기했던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은 분명히 안전한 장르물,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되는 책들이었어요. 그런데 포기했죠. 무얼 선택했냐고 하면 새로운 작품들이에요. 그건 보장이 안 돼요. 결과를 알 수 없고, 위험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런 걸 선택해왔던 것 같아요. 30년간 좋은 결과가 쭉 있던 구가도 있고, 최근처럼 결과가 안 좋은 구간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 선택에 후회를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조금 아쉬운 점은 있어도 후회 한 적은 없죠.”
오늘(4일) 개봉된 ‘1승’은 연말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길 바랄 터. 시즌 통틀어 1승을 하면 상금 20억을 풀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거는 구단주 강정원처럼 영화 ‘1승’ 흥행을 위한 공약이 없냐고 묻자 송강호는 허허 웃음 지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공약은 제가 걸어본 적 없고, 걸 것도 없어요. 하하. 사전 시사회에서 관객들에게 ‘단순 스포츠 영화란 생각이 안 든다’라고 했어요. 작은 1승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1승이 큰 기쁨을 줄 수 있다고 했죠. 이 영화가 작은 위안, 위로, 용기가 될 수 있다면 1시간 47분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