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승’ 신연식 감독, 이야기꾼의 끝없는 탐구 [인터뷰]
- 입력 2024. 12.05. 11:58:19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영화 ‘동주’로 필력을 인정받고, ‘조류인간’ ‘로마서 8:37’ ‘카시오페아’ ‘거미집’ ‘삼식이 삼촌’ 등 작품으로 ‘충무로 대표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신연식 감독이 영화 ‘1승’으로 돌아왔다. ‘1승’은 이겨본 적 없는 감독과 이길 생각 없는 구단주, 이기는 법 모르는 선수들까지 승리의 가능성이 1도 없는 프로 여자배구단이 1승을 위해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지난 2021년 크랭크업했으나 무려 3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긴 기다림의 시간 끝에 개봉이란 빛을 보게 됐기에 그 소감 또한 남다를 터.
'1승' 신연식 감독 인터뷰
‘1승’은 스포츠 영화, 그중에서도 아직 국내에서 제작된 적 없는 배구를 소재로 한 영화다. 여자배구의 묘미인 ‘랠리 시퀀스’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롱테이크로 담아낸 핑크스톰과 파이브스타즈의 랠리 장면은 마치 경기장 한 가운데에 있는 리얼함과 생생함을 안긴다.
“배구영화를 하려는 이유도 그거였어요. 실내 스포츠 중에 가장 다이나믹한 연출이 가능한, 그래서 랠리 시퀀스는 당연히 하고 싶었죠. 기획부터 꼭 하겠다고 생각해서 힘을 썼어요. 더 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공이 날아가서 땅에 떨어지면 (카메라도) 같이 떨어지고, (공이) 올라가면 (카메라도) 같이 올라가고. 그런 걸 하고 싶었는데 물리적 한계가 있었어요. 랠리는 하늘이 무너져도 하려고 했죠. 몇 개 아쉬운 게 있어요. 하고 싶었던 걸 시도조차 못했기에. 공이 카메라를 따라 네트를 통과하고, 빠져서 전진하는 것도 구상만 하고 시도를 하지 못해 아쉬워요. 지금은 영화 기술이 정말 많이 발전했어요.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아졌죠. 기회가 되면 그런 시퀀스들을, 배구영화를 또 하지 않겠지만 다른 영화에서 구현해보고 싶어요.”
랠리 장면은 며칠에 걸쳐 여러 차례의 리허설을 필요로 했던 난이도 높은 장면이었다. 수개월간 배구 트레이닝에 전력을 다한 배우들과 치밀하게 준비한 제작진의 완벽한 호흡으로 단 한 번 만에 ‘오케이’가 났다. 이들의 노력은 관객들을 단숨에 영화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남자배구는 파워가 있어요. 긴 랠리로 가기보다 빨리 끝내죠. 핑크스톰에게는 마지막 기회인 거예요. 블랙퀸즈는 못 이길 팀이니까 남은 경기 중 저 팀과 하는 걸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 이 팀에게 승리를 못하면 못하니까, 이 이야기와 팀의 구성을 할 땐 구단주부터 감독, 다 단점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이 팀의 특징은 아무도 단점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재벌 2세 구단주라 해서 갑이 아니죠. 어떻게 보면 그룹에서 권력 싸움에서 빗겨간 사람이니 배구단을 하는 거고. 나름 그들만의 리그에서 루저인 거예요. 서로 단점이 다 있는, 흩어져 다른 팀으로 가면 ‘넌 그래서 안 돼’라는 소리를 들을 사람들인데 자연스럽게 서로의 단점을 메꿔 주죠. 결국 감독의 실수를 선수들이 메꾸어 이기는 구조라 랠리 장면을 넣은 거예요.”
극 초반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장면도 신선함을 안긴다. 애니메이션 장면은 인물들의 전사를 다루면서 관객에게 만화 같은, 또 다른 볼거리로 즐거움을 준다.
“톤앤매너로 스포츠 영화라 했을 때 ‘슬램덩크’라 설명하는 것도 있어요. 통상적으로 플래시백 장면을 쓸 땐 다른 배우가 재현하잖아요. 그게 뻔하고, 식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인물과 비슷하게 그리면 되거든요. 그 이유로 한 거예요.”
‘1승’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1승의 기쁨을 되새기게 만듦과 동시에 인생에서 단 한 번의 1승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승이나 절대 강자가 목표가 아닌, 단 한 번 얻을 수 있는 것,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극중 김우진 감독(송강호)이 일정표를 보면서 ‘남들은 10승, 20승 쉽게 하는데 나는 1번 이기기가 왜 이리 힘드냐’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쓰면서 ‘그게 나야’ 하면서 울기도 했죠. 하하. 왜 울었냐면 ‘거미집’이 투자가 안 되는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동주’로 갚은 빚이 다시 쌓이기 시작하며 힘든 시점이었죠. 같은 날 두 가지 일이 발생한 적 있어요. (송강호) 선배님이 캐스팅됐고, ‘카시오페아’ 작품이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을 받았어요.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서 상업영화 최고의 선물이 송강호 배우의 캐스팅이라면 독립영화의 최고 선물은 제작지원이거든요. 신연식이라는 감독으로 영화를 만들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데 저는 안 끝나요. 뒤에 또 사연이 있으니까 시나리오를 쓰는 순간에 그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매칭이 돼요. 일상에서 희로애락이 매번 스쳐가잖아요. 그 순간이 누군가에겐 우주와 같은 순간이고,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연이 있고, 그 결과도 그냥 된 게 아니고요. 그냥 지나가는 것들이 그들에게 순간은 우주와 같은 과정이고, 사연을 품고 있죠. 그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열심히 해서 이겼다’가 아니라, ‘매일매일 일상처럼 스치는 결과가 이거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신연식 감독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신연식 감독의 영화 특징은 서사를 관통하는 인물 사이에서 갈등을 통해 인간의 본성, 본질, 그리고 한계를 보여준다. 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토리텔러로서 앞으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은 무엇일까.
“‘1승’도 마찬가지고, 모든 작품도 마찬가지에요. 영화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와 목적을 탐구하고 싶어서죠. ‘저 사람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거시적, 역사적 흐름은 왜 그렇게 흘러가고, 우리는 왜 태어나서 타 자아와 부딪히는지, 시나리오는 이 인물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 되는지, 내가 어떤 천성과 관성으로 작동되는 건지. 이 사람이 어떤 심리적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저는 그걸 탐구하고자 해요. 그걸 탐구하는 건 변함없죠. 그건 앞으로도 1억짜리 영화를 하든 400억짜리 영화를 하든 변함없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