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영화결산①] 천만 단 2편…‘텐트폴·톱배우=흥행’ 공식 깨진 자리에
- 입력 2024. 12.18. 08: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그럼에도 2024년에는 2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파묘’(감독 장재현)와 ‘범죄도시4’(감독 허명행)가 그 주인공. 콘텐츠 소비 방식이 달라졌음에도 대중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건 영화관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분명히 한 셈이다.
'파묘', '범죄도시4'
◆신기록 세운 ‘파묘’‧‘범죄도시4’
2024년 첫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린 건 ‘파묘’다. 지난 3월 개봉된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데뷔작 ‘검은 사제들’(2015)에 이어 ‘사바하’(2019) 등 오컬트 장르 한 우물만 파며 달려온 장재현 감독의 3번째 작품으로 배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이 출연했다.
영화는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더니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 오컬트 영화 사상 최초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흥행 역사를 새롭게 썼다. 김고은, 이도현은 ‘천만 배우’ 라인업에 등극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특히 무당 화림 역으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김고은은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과 제45회 청룡영화상에서 만장일치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으며 한국 영화계 중심에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묘’에 이어 ‘범죄도시4’가 흥행 바통을 이어 받았다. ‘범죄도시4’는 괴물형사 마석도가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을 움직이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와 IT 업계 천재 CEO 장동철에 맞서 다시 돌아온 장이수, 광수대&사이버팀과 함께 펼치는 범죄 소탕 작전을 그린 영화다. 다양한 작품에서 무술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허명행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프닝 스코어 82만 명을 동원하면서 ‘시리즈 최고 오프닝’을 기록한 ‘범죄도시4’는 개봉 2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시리즈 영화 최초 트리플 천만’을 달성했다. 더불어 2024년 최단기간 천만, 시리즈 최단기간 천만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파묘’와 ‘범죄도시’의 영향으로 3~4월 두 달 연속 한국 영화 매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4월 한국 영화 매출액은 636억 원으로 전년도(169억 원)보다 276.3% 상승했고, 관객 수는 659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2017~2019년)에 비해 1.7배 올랐다. 두 영화의 연이은 흥행으로 한국 영화 매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 봄 비수기 흥행 공식을 새로 썼다.
'설계자', '원더랜드'
◆깨져버린 흥행 공식
올해 극장가는 이른바 ‘중급 영화’의 성과가 흥행 공식을 바꿨다. 그 중심에는 ‘탈주’(감독 이종필), ‘핸섬가이즈’(감독 남동협), ‘파일럿’(감독 김한결)이 있다.
이제훈, 구교환 주연의 ‘탈주’는 누적 250만 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약 200만 명)을 넘겼다.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탈주’는 올여름 한국 영화 개봉작 중 처음으로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했다. 제작비는 약 85억 원으로 알려졌다.
이성민, 이희준 주연의 ‘핸섬가이즈’는 약 46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는데 누적 177만 명(손익분기점 약 11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던 재필과 상구가 하필이면 귀신들린 집으로 이사 오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이 영화는 2010년 개봉한 미국, 캐나다 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을 원작으로 한다.
‘파일럿’ 또한 손익분기점(약 220만 명)을 넘고, 최종 관객 수 471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했다. 영화는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가 파격 변신 이후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코미디 장인’으로 불리는 조정석이 여장남자로 변신, 화제를 모았다.
과거에는 ‘텐트폴 무비’라고 해서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한 고예산 상업영화가 여름 시즌에 개봉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영화산업 지형이 바뀌면서 텐트폴 무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즉, ‘여름 성수기’는 ‘한국 대작 영화 수확기’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상황.
톱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도 흥행 참패를 기록하며 ‘톱배우=흥행 보증 수표’란 공식도 옛말이 됐다. 지난 5월 개봉된 강동원 주연의 ‘설계자’(감독 이요섭)는 개봉 첫날 12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지만 매력 없는 캐릭터와 결여된 개연성, 난해한 스토리 등으로 관객들의 혹평을 받아 결국 최종 관객 52만 명에 그쳐 흥행 참패를 겪었다.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 화려한 멀티캐스팅으로 순 제작비만 100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원더랜드’(감독 김태용) 또한 고배를 마셨다. 손익분기점은 290만 명이지만 최종 62만 명을 기록하며 안방극장으로 향하는 굴욕을 맛봤다.
한 영화 관계자는 “과거 극장 여름 시즌의 시작인 7월 마지막 주에는 ‘모가디슈’(2021년) ‘한산: 용의 출현’(2022년) ‘밀수’(2023년) 등과 같은 텐트폴 영화가 개봉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올해 텐트폴 무비라 할 수 있는 건 ‘베테랑2’(감독 류승완)가 유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톱배우의 출연도 관객들의 작품 선택지에서 벗어났다. 과거 배우 또는 감독만 보고 영화를 관람하는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다. 배우의 이름값은 무시할 수 없는 흥행 요건이나, 절대적 요소는 아니다”라며 “올해는 ‘탈주’ ‘핸섬가이즈’ ‘파일럿’ 등 손익분기점이 200만 명 안팎인 중급 영화가 흥행했지 않나. 이는 팬데믹 이후 극장가에 나타난 변화의 조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탈주', '핸섬가이즈', '파일럿'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텐트폴 영화가 사라진 자리,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영화 산업의 허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중예산 영화’에 제작 지원을 추진한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5년 문체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문체부의 예산안은 7조 1214억 원으로 편성됐다. 문체부 예산은 크게 ▲문화예술 ▲콘텐츠 ▲관광 ▲체육 ▲기타 총 5개 분야로 편성돼 있다. 영화산업 관련 예산은 지난해 대비 12.5% 증가한 829억 원을 편성했다.
문체부의 2025년 예산안 영화산업 관련 주요 항목은 ▲중예산 영화(순제작비 10억 이상, 80억 미만 영화) 지원 사업 ▲기획개발 지원 확대 사업 ▲영화제 지원사업 확대 ▲영상박물관‧대중문화예술 명예의전당 설립 기본구상 연구다. 영상박물관‧명예의전당 설립 사업은 영화를 포함한 영상산업‧콘텐츠산업 전반을 아우른다.
특히 신규 설립된 중예산 영화 지원 사업은 기존 독립영화로만 한정하고 있던 정부의 영화 제작 지원 대상을 중예산 규모로 확대해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한다. 기획개발 지원 사업은 전년 대비 10억 원이 증가한 26억 원이다. 영화제 지원 사업은 33억 원으로 확정했다.
앞서 지난 9월 열린 2025년도 영화 분야 예산지원 토론회에서 이규만 감독은 “중예산 영화는 창의성을 살려 도전을 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감독들이 장기적 비전으로 창작에 전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제작자 김봉서 엠픽쳐스 대표이사는 “영화계가 어렵지만 잘 만든 영화가 나온다면 관객은 다시 돌아온다. 이번 중예산 영화 지원 방안은 작품의 질을 높일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투자사 이정석 케이시벤쳐스 전무는 “최근 검토하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의 양과 질이 저하되고 있음을 느낀다”라며 “이에 따른 투자 감소의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획개발에 대한 지속적 관심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규모와 무관하게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정부에서 마중물을 제공하고, 연출, 제작, 투자, 배급, 상영 모두 한 목표를 가지고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도 예산 지원을 시작으로 현장 의견을 반영해 지원 방식을 개선하고, 실제 산업적 성과를 얻을 수 있게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박스('파묘'),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범죄도시4'), NEW('설계자', '핸섬가이즈'),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원더랜드'),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탈주'), 롯데엔터테인먼트('파일럿')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