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원, 혼신을 다해 지은 '조명가게'[인터뷰]
- 입력 2024. 12.24. 13:01: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첫술에 배가 불렀다. 배우 김희원은 '조명가게'로 연출가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빈틈없는 준비로 이유 있는 한방을 완성한 감독 김희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희원
디즈니+ 오리지널 '조명가게'는 강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그런데 '조명가게'의 메가폰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배우 김희원이었다. 드라마 연출 경력이 없는 그가 디즈니+라는 거대 OTT 작품의 연출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강풀의 제안 덕분이었다고.
"제가 강풀 작가님께 물어봤어요. 말씀은 제 연기가 가장 좋았다고 하셨는데, 제 추측에는 제가 '무빙'을 할 때 전체를 보는 면을 인상 깊게 보신 것 아닐까, 생각해요. '무빙'에서 최일환이 초능력도 없는데 목숨 걸고 싸우려면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존재감을 드러내는 씬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작가님이 많이 설득되셨거든요. 그런 면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우연히 당시 호러 단편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는 김희원은 "'운명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제안을 수락한 이유를 밝혔다.
"고민 많이 했죠. 계속 고민하다가 '모르겠다 해보자' 하고 나서도 두 달 동안 그만둘까, 생각했어요. 작품이 너무 어렵다 보니까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생각도 들고, 망치면 어쩌나 인생 생각도 많이 들었죠. 나한테 주어진 역할만 하면서 살아도 되는데 도전이라는 게 항상 불안한데도 왜 선택했을까."
첫 연출 소감을 묻자 김희원은 "마무리한 다음에 공황 같은 게 왔다. 가만히 있지 못하겠고 되게 이상했다"라고 답했다.
"배우를 할 때와는 엄청 달랐어요. 배우 하고 나서는 (작품이) 끝나면 기대는 하지만 '이제 끝났다. 할 일 다 했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감독은 내놓은 다음에도 계속 두근두근하고 걱정이 많아지더라고요. 마지막 회 릴리즈됐을 때도,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도 잘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많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한해요. 안정하기가 쉽지 않은 걸 보니까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의 우려와는 달리 첫 연출 시도는 합격점을 받았다. 주지훈, 김설현 등 '조명가게' 배우들은 입을 모아 "최고"였다고 엄지를 치켜들었고, 시청자들도 "'무빙' 출연하신 김희원 배우가 '조명가게' 연출을 하고 계셨다는 게 놀랍다" "입봉작이라는 게 사실이냐. '타이밍'도 해달라" 등 연출에 대한 호평을 쏟아냈다.
김희원에게 연출이란 곧 해석이었다. 예를 들어 '다급하게 뛰어갔다'라는 지문에서 '다급하게'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연출이라는 것. 그는 "가만히 있어도 다급하게 보일 수 있다. '무섭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모든 단어에 아이디어를 냈다"라고 이야기했다.
조연출 경험도 없는 김희원이 입봉작부터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분석할 정도의 준비 덕분이었다. '조명가게'의 공식적인 프리 프로덕션 기간은 6개월, 그가 혼자 작품을 연구한 시간을 합치면 9개월간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고의 숙제는 4화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고. '조명가게'는 4부 이전까지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툭툭 꺼내놓으며 길게 빌드업을 가져간다.
"콘텐츠는 어떤 궁금증을 주고 대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궁금증을 언제까지 주고 어느 시점에 대답을 하느냐의 문제죠. 조금 더 친절하면 예상하니까 재미없고, 너무 질질 끌면 중간에 지치게 돼요. 그 시점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어려웠어요. 처음부터 얼마나 임팩트를 주느냐도 마찬가지죠."
김희원이 찾은 해답은 '장르의 힘'이었다. 그는 "각화마다 장르를 부여하는 방법을 썼다"라며 "1부는 설현이 엄태구를 죽일 것 같은 느낌으로 서스펜스를 주면서 미스터리하게 끝내고, 2부는 호러 장르로 연출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조명가게'로 김희원과 함께 입봉한 박성훈 촬영감독이 그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곁을 지켰다는데, 그는 "사실 제가 공부는 했지만 카메라나 렌즈나 이런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하다. 박성훈 촬영감독한테 많이 배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 친구가 중간에 번아웃이 와서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울면서 못할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그만두면 (박 감독한테) 평생의 짐이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레코드 누를 테니 옆에 서 있기만 해라'라고 했죠. 열심히 해보자고 저도 울고, 그 친구도 울고. 큰 위기가 한 번 있었어요. 기술적인 부분이 그렇게 디테일한 줄 몰랐어요."
김희원은 배우 출신인 만큼 각 배우의 성향에 맞게 디렉션을 주는 등 연기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썼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배우들이 온전히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제가 배우를 할 때 (촬영 현장에서) 막 7시간 기다리라고 하면 힘 빠져요.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돼서 계획인 듯 우연인 듯 배우들이 흥이 나서 연기하도록 노력했던 씬이 꽤 많아요. 그런 부분에서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했다고 하면 기뻤죠. 4부 마지막 롱테이크 같은 경우는 배우들은 실제로 촬영을 2시간 했어요. 저희는 카메라 워킹 며칠 연습하고 촬영에 들어갔죠."
'조명가게' 캐스팅이 처음 떴을 때는 김희원과 절친한 배우들이 대거 합류해 '김희원 카르텔'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김희원은 그만큼 배우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출연 배우들 연기 칭찬이 백배 천배 좋았어요. 촬영할 때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제가 잘한 것처럼 뿌듯하더라고요. 반면에 NG를 내거나 못하면 내가 연기를 못한 것처럼 창피했죠. 제가 잘한다고 데려왔으니까 배우들이 잘하면 힘이 나고 연기가 안 나오면 창피했어요."
첫 연출 경험을 통해 배운 점에 대해 묻자 김희원은 "지금보다 더 합리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현장 진행 콘티를 더 정확하게 짜서 시간도 벌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앞으로도 감독 김희원의 작품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높다. 그는 "배우나 연출이나 다 좋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렇다면 김희원의 두 번째 연출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새로운 연출 제안도 꽤 왔는데 다른 대본을 본다거나 미래를 추진할 만한 여력이 아직은 없어서 내년으로 미뤘어요. 문화 예술인은 보시는 분들이 우리 걸 보고 즐거워서 커피 마시면서 우리 얘기도 하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배우나 연출이나 다 좋죠."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월트디즈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