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테베랜드', 모호함이 주는 매력 [무대 SHOUT]
입력 2024. 12.27. 11:19:31

'테베랜드'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존속 살인을 시작으로 신화, 문학, 음악, 극예술, 스포츠까지 다채로운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또 이를 통해 물음표를 던지는 대사들이 계속 이어진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점이 '테베랜드'만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연극 '테베랜드'는 아버지를 죽이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마르틴, 마르틴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준비하는 극작가 S, 마르틴을 대신해 무대에 오르는 배우 페데리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대표 극작가로 손꼽히고 있는 세르히오 블랑코(Sergio Blanco)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다. 2013년 우루과이에서 첫 선을 보인 '테베랜드'는 10여 년간 영국, 미국,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 등에서 공연됐고, 2017년 오프 웨스트엔드 어워즈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 초연으로 찾아왔고, 당시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테베랜드'는 극작가 S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존속 살인을 주제로 한 연극을 연출하고, 무대에 실제 살해범을 출연시키겠다는 생각으로 S는 아버지를 죽인 존속 살해범 마르틴을 찾아간다.

연극 무대에 철장을 설치하겠다는 조건, 경찰관을 배치해놓겠다는 조건 등을 내세웠지만 정부에서는 마르틴의 출연을 반대한다. 결국 마르틴을 대신할 배우 페데리코를 섭외하고, S는 마르틴과의 면회, 페데리코와의 연출 작업을 통해 존속 살인의 본질에 대한 생각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테베랜드'는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독특한 무대 구성이 눈길을 끈다. 무대 한가운데 위치한 철창은 마르틴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의 농구장, S가 공연을 위해 내무부의 지시로 무대에 설치한 철창, 페데리코와 S가 함께 작품 연습을 하는 연습실 등 다양한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계속해서 장소가 바뀌고, 한 배우가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만큼 관객들은 어느 순간 마르틴과 페데리코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철창은 장소를 구분하는 장치인 동시에 두 인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또한 무대 상단의 모니터 화면들도 '테베랜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연출이다. 철창 안의 모습을 비추는 CCTV는 마치 관객이 교도소의 관찰자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중간중간 화면에 등장하는 사진 자료들도 더욱 극에 몰입도를 높이는 데에 도움을 준다.



'테베랜드'는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는 재미가 있다. 오이디푸스 신화, 도스토옙스키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각종 농구 용어까지 다채로운 분야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결국 존속살인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든 이야기는 연결된다.

개인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한, 정답이 명확하지 않은 열린 대사들의 향연이다. 이에 세 인물 사이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S가 대화를 통해 생각이 점점 변화하듯 관객들도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극은 전혀 그의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지 않지만, 어느새 '마르틴이 한 살인을 진정한 존속살인으로 볼 수 있나'와 같은 질문에 닿게 된다.

이에 '테베랜드'의 마르틴을 보면 연극 '킬롤로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부재로 인한 결핍, 그리고 그 결핍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 어느정도 맞닿아있다.



이번 '테베랜드'에는 초연에 함께 했던 여섯 배우가 그대로 재합류했고, 김남희, 강승호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S 역에 이석준, 정희태, 길은성, 김남희가, 마르틴과 페데리코 역에는 이주승, 손우현, 정택운, 강승호가 합류했다.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자랑하는 극이지만, 여덟 배우 모두 165분(인터미션 15분 포함)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로 몰입해 극을 이어나간다.

특히 마르틴과 페데리코 두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센스 있는 연기들도 눈에 띈다. 닮아있는 두 캐릭터 사이에 대사 톤, 표정, 행동 등의 작은 디테일을 통해 만드는 미묘한 차이에선 이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다만, 관람 안내에 적혀있듯 일부 장면과 영상에 살인, 발작, 혈흔 등 민간함 내용이 포함돼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공개 전에 미리 예고를 해주지만, 약 1분 간 보여주는 세 장의 사진의 수위가 높은 편이다.

연극 '테베랜드'는 2025년 2월 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노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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