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우민호 감독, 1909년 안중근에 주목한 이유 [인터뷰]
- 입력 2024. 12.28. 09: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우민호 감독이 이번엔 1909년에 주목했다. 그동안 과거를 통해 미래를 읽어내는 ‘선지적 연출가’라 평을 받아온 우 감독은 영화 ‘하얼빈’을 통해 독립군들을 조명하고, 현시대를 반추해보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하얼빈' 우민호 감독 인터뷰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기획되어 촬영을 끝마쳤다.
‘하얼빈’은 ‘서울의 봄’을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을 맡았다. 당초 ‘하얼빈’은 현재와 다른 결의 시나리오였다. 순수 오락영화에 가까웠던 터라 수정이 필요했다고. ‘서울의 봄’ 제작진과 ‘시대물의 장인’ 우민호 감독과의 시너지가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하이브미디어코프가 ‘하얼빈’의 대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감독을 구했냐고 물어봤더니 못 구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쉽지 않아요. 어떤 감독이 안중근의 영화를 하겠어요. 대본을 읽어보니 순수 오락영화더라고요. 액션 어드벤처, 케이퍼 무비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이렇게는 못가고, 묵직하게 찍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가공의 인물이나 가공의 사건 가지고는 오락영화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모두가 다 아는 안중근 장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락영화로 만들 의미가 없었죠.”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역은 현빈이 맡았다. 앞서 현빈은 안중근의 상징성과 존재감, 압박감을 이유로 세 번 고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민호 감독은 현빈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그려 보고자 하는 안중근 캐릭터는 영웅이 아니었어요. 거기까지 가는 여정 속에서 그의 고뇌와 번뇌, 두려움, 어떤 이런 것들을 고독과 쓸쓸함으로 보여주고 싶었죠. 현빈 배우의 눈에서 그런 걸 봤어요. 어떨 땐 쓸쓸, 처연하고, 어떨 땐 따뜻하고, 강한 결심을 했을 땐 꺾지 못할 힘이 느껴졌죠. 계속 책을 고쳐서 줬어요. 안중근 장군께서 ‘절대 포기하지마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을 가슴에 세기고 계속 했죠. 그 시대 공기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 공기를 어떻게 다가가야 하지? 생각이 들었을 때 아내가 ‘그러면 좀 쉬고,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를 읽어봐’라고 했어요. ‘토지’가 광대한 분량이잖아요. 또한 그 시대를 포함하고 있고요. 간도 지역에서 독립군들이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마음을 다 잡았어요. 우리나라 민족의 생명성은 모질구나, 짓밟혀도 다시 살아나구나. 거기서 가닥이 잡혔어요.”
‘하얼빈’이 개봉된 후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영상미, 영화적 미학 등에 대한 감탄이 쏟아지는 한편 오락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평도 존재한다. 서사가 늘어지고, 느린 전개를 불호로 꼽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직하게 가고 싶었어요. 우직하게 걸어가는 안중근, 독립군들처럼 그런 톤을 유지하고 싶었죠. 그들을 수고하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작에서 했던 빠른 편집을 하지 않았죠. 컷도 클래식하게 찍었어요. 배우들도 단독 클로즈업이 없어요. 처음으로 그룹샷을 찍었는데 동지들에 대한 영화이고, 총을 안중근 장군이 쐈지만 쏘기까지 수많은 동지들의 희생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얼빈’ 현장에는 가짜가 없다. 촬영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한 부분이 바로 ‘리얼리티’였기 때문. 독립군들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실제 루트에 가깝게 촬영하고자 한국, 몽골, 라트비아 3개국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고, 자연광과 자연현상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이 프로덕션은 현장감을 많이 살리자 싶었어요. 대본과 콘티는 있지만 거기에 얽매지이 말고, 실제 로케이션에서 자연을 많이 찍었죠. 자연광으로 찍기도 했어요. 보통 조명을 치는데 이번 작품은 빛을 가리면서 찍었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대로 가자했는데 눈도 주어진 거예요. 광주에 50년 만에 내린 폭설도 우리에게 주어진 거니까 그냥 찍자고 했죠. 실제로 눈이 50cm정도 내렸어요. 너무 아름다웠는데 우리나라 자연광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싶었어요. 당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뺏겼잖아요. 주권, 땅, 자유 등. 그래서 전쟁신을 통쾌하게 못 찍겠더라고요. 이겨도 이긴 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체가 비극이고, 처절함을 담아냈죠.”
오락성을 최대한 배제한 ‘하얼빈’은 ‘클래식’하다. 지금까지의 역사 영화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과 구성으로 완성해낸 것. 그럼에도 ‘진심’은 스크린 너머 그대로 느껴진다.
“촬영, 음악도 다 클래식하게 찍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숏폼이나 빠른 것들에 익숙해진 시대인데 이번 영화는 거기에 반해 영화적으로 시네마틱하게 고전적인 스타일을 가져가 찍어보자 했죠. 클래식한 스타일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얼굴, 모습, 마음을 담고자 했죠. 지금 젊은 분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해요.”
영화는 오프닝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안중근이 끝없이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곳은 몽골의 홉스골 호수에서 촬영됐다. 해당 장면은 한순간의 실수로 동지들을 떠나보냈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맞서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인간 안중근의 내면을 장엄한 연출로 표현해냈다.
“안중근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이 수미상관이에요. 앞 장면에서는 뒷모습만 보여주는데 그땐 실패한 장군의 모습인 거죠. 자기가 걸어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가야하는지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이에요. 마지막 장면의 모습은 거사를 성공했고,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다시 우리에게 오는 것을 표현한 거예요. 그리고 당부의 말씀을 하시죠. 저항이 거세지면 거기에 대한 폭압은 더 거세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해요.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그래서 이 영화는 통쾌하게 끝낼 수 없었어요. 물론 이후 더 힘들어졌지만요. 일제강점기 후반으로 갈수록 폭압, 폭력은 더 거세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쾌하게 끝내는 건 역사왜곡이라 생각했어요. 35년 더 힘든 싸움이 앞에 놓여 있으니까. 승리의 얼굴이 아닌, 후대를 걱정하는 거예요. 처음 뒷모습은 혼자고, 갈라진 이미지도 우리나라의 갈라진 영토 같은 느낌을 주려 했어요. 마지막 장면에선 카메라 앞에 다가올 땐 뒤에 우리 동지들이 있는 느낌으로 표현했고요.”
‘하얼빈’은 나라를 걱정하는 독립군들의 고뇌가 탄핵 정국의 현 시국과 오버랩 되며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민호 감독이 작투를 탄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우민호 감독은 “독립군들이 2030세 자기 목숨을 바쳐가며 헌신했는데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라며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막는 걸 보며 자긍심이 느껴졌다. 혼란,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 영화가 시작할 때 안중근 장군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삶에 다가왔어요. 지금 시점이 나라의 운명이 눈앞에 있잖아요. 그 지점에서 이런 해석이 더해진 게 아닌가. ‘남산의 부장들’을 개봉할 땐 코로나19가 오고, 4년 만에 새로운 작품을 가지고 나왔더니 계엄이 터지고. 상상도 못했어요. 그때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가짜뉴스인 줄 알았죠. 끔직하고, 참담했어요. 반복되자 말아야 될 역사가 또 반복될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역사를 되짚어 봐야 하는구나. 특히 비극의 역사일수록. 저는 그것(계엄령)만은 반복이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반복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서울의 봄’도 있고, ‘하얼빈’ 외 한국영화 시대극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시대극은 연명 유지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