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계획' 김국희, 악역이 체질은 아니지만[인터뷰]
- 입력 2025. 01.02. 09: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김국희는 '가족계획' 속 비열한 오길자에 질려버린 모양새였다. "마음이 너덜거렸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악역이 체질은 아니지만, 악역마저 잘해내는 김국희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일까.
김국희
지난달 27일 막을 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극본 김정민, 연출 김곡 김선)은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엄마가 가족들과 합심하여 악당들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이야기다.
극 중 평범한 교회 집사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가면을 쓴 채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오길자 역을 맡아 극악무도한 빌런으로 변신한 김국희는 "일단은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기쁘다. 저도 재밌게 보고 있다. 이렇게 사랑받는 건 귀한 일이라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다음 작품으로 악역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 작품을 만나게 됐어요. 예상보다 밑도 끝도 없이 악역이라 대사나 이런 부분이 어려웠었는데, 기왕 하는 거 시원하게 미움받는 역할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품을) 선택하게 됐어요."
여러 연극에서 멀티 역을 맡아 악한 연기를 선보인 적은 있지만 각 잡고 빌런은 처음이다. 악역에 도전해 보니 어땠냐고 묻자 "대본 읽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생각보다 마음이 너덜거렸어요. 배우는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이 예상했던 것보다 힘들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이면에 있는 어떤 부분을 연기하면서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는데, (오길자가) 보통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상상할 때 많이 힘들었죠."
그럼에도 김국희는 오길자의 걸쭉하면서 때로는 천박한 대사들을 찰지게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대사가 맛깔났다는 칭찬에도 "평소에는 욕을 한마디도 안 한다"며 "애드리브도 전혀 없다. 그냥 입에 짝 붙을 때까지 읽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심리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가족계획'을 통해 얻은 바도 많다. 김국희는 크게 두 가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악역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깨끗하게 지우게 해줬어요. 주변에서 잘 맞는 옷이라고 해주니까 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리고 연기적으로도 너무 훌륭한 배우분들을 만났기 때문에 다음에 저한테 이런 숙제, 허들이 생겼을 때 넘어갈 수 있는 해답을 봤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두나 언니의 기둥이 엄청 컸거든요. 배우 배두나에 대한 동경도 있지만 저런 선배가 되고 싶고, 저런 언니가 되고 싶다는 그런 부분을 제일 많이 얻은 것 같아요."
김국희는 오길자라는 캐릭터를 일반적인 빌런의 이미지와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감정부터 메이크업, 의상까지 '빌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정반대 모습을 상상했단다.
"일반적인 생각을 정립해 두고 정반대되는 감정을 선택했어요. 예를 들어 슬프면 웃어버리는 것처럼 반대되는 감정으로 대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의상 같은 경우에는 외투 입었을 때는 교회 집사님, 벗었을 때는 화려한 이미지를 주고 싶었어요. 눈화장이 화려하거나 입술이 빨간 빌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메이크업은 깨끗하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처럼요. 그래야 악행이 드러났을 때 더 소름 돋을 거라고 생각했죠."
오길자는 결국 5회에서 한영수(배두나)를 위협하다가 백철희(류승범)에게 제압당하며 끝을 맺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잘못을 인정하며 처절하게 매달리는 모습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국희는 디즈니+ '무빙'에 이어 류승범과 다시 한번 대립각을 세웠다. 다만 '무빙'에서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김국희가 빌런, 류승범이 선역을 맡았다.
"일단 '무빙'은 초능력 있는 블랙요원 설정이었기 때문에 폼이나 디테일한 면이 달라야 했어요. 그래서 액션에 대한 준비를 긴 시간 했죠. '가족계획'은 사실 싸움에 대한 능력치는 높지 않아서 그때 경험에 도움을 받아서 했죠. 이번에 류승범 선배한테 흠씬 맞는 역할이라 (류승범 선배에게) 촬영 전부터 사과를 많이 받았어요. '나중에 언젠가는 맞아주겠다'고 하셨죠. 워낙 액션을 잘하시는 배우분이셔서 안전하게 멋진 액션씬을 만든 것 같아요. 상대방이 나를 집어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반면 배두나에게는 일격을 가하기도 하는데, 김국희는 "되게 많이 때린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이 때리지 않았다"라며 "그 씬 찍을 때 부대끼면서 저는 행복했다"며 팬심을 고백하기도 했다.
"나중에도 또 두나 언니와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힘이 되어준다거나 조력자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마음을 한껏 표출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2003년 뮤지컬 '짱따'로 데뷔한 김국희는 대학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빨래' 등에서 기반을 다졌다. 이후 '레드북' '은밀하게 위대하게' '광주' '판'을 비롯해 연극 '데스트랩' '날 보러 와요' '더 헬멧' '빵야' 등에 참여했다.
"이 작품도 봤고 이 작품도 봤는데 (제가) 이 역할을 한 걸 프로필 보고 알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도 '왜 그럴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배우로서 장점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TV에서 제가 나와도 주변에서 아무도 몰라요. 저는 그게 좋아요.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이라서 선과 악이 애매한 부분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김국희는 2017년부터는 영화, 드라마에 진출했다. "매체에 훨씬 등장인물이 많고 구체적인 여자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까 다양한 직업군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는 그의 설명처럼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그러면서도 무대에 대한 애정은 너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김국희는 "약간 돌아갈 고향 같은 느낌이다"라며 웃었다.
"매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왔는데 생각보다 서사가 깊지는 못했어요. 거기서 오는 갈증이 분명히 있어요. 훨씬 깊은 이야기를 무대에서 나누면서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죠. 또 무대는 피드백이 굉장히 빠르죠. (관객들과) 기쁨과 슬픔을 같이 느끼면서 오는 희열감은 칭찬이나 상 받는 것만큼 좋아요. 아마 많은 배우들이 무대를 경험하면 다시 하고 싶다고 느끼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길자라는 캐릭터를 빌드업할 때도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강조한 김국희다. 배우로서 고민도 '더 사실과 가까운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데 "실제 존재하는 사람같이 보일수록 공감하거나 설득력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렸을 때는 일부러 지하철을 많이 타고 사람을 관찰했어요. 그 사람이니까 나오는 걸음걸이나 독특한 움직임들, 그런 디테일이 연기할 때 참고하면 사실성을 부여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오길자를 연구할 때도 실제로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부동산 사장님들 어떻게 전화하시는지 보고 다녔죠."
2025년에는 김국희라는 도화지에 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그는 "내년에는 위로를 줄 수 있는 역할을 더 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내년에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곁에 있는 배우로 여겨졌으면 좋겠어요. 옆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람이고, 옆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고 또 그런 연기로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들을 더 하고 싶어요. 그게 악역이라도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에일리언컴퍼니, 쿠팡플레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