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진스, 구조주의와 해체주의
- 입력 2025. 01.09. 13:36:21
- [유진모 칼럼] 그룹 뉴진스(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가 지난 4일 일본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에서 열린 '39회 골든 디스크 어워즈' 시상식 참석을 끝으로 하이브 자회사 어도어와 계약한 공식 스케줄을 마무리했다. 일부 광고 관련 일정만 남아 사실상 지난해 11월 27일 뉴진스 멤버들이 기자 회견을 통해 어도어와의 계약이 무효함을 선언한 게 현실화된 셈이다.
뉴진스
이들의 발표에 따르면 다섯 멤버가 본질적으로 뉴진스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다만 상표권이 어도어에 있기에 그들의 소속이 어도어에서 벗어난 만큼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러 그렇더라도 그들이 뉴진스였고, 버니즈(팬덤명)가 사랑하는 '바로 그 걸 그룹'임은 자명하다는, 일종의 자유 선언이었다.
그 와중에 향후 향방에 영향이 될 만한 폭로가 나왔다. 한 매체는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다는 다보링크 박정규 회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다. 지난해 8월 말 뉴진스 멤버 A의 큰아버지 B 씨를 통해 민 전 대표를 만났는데 그녀가 뉴진스를 빼돌릴 방법을 묻고 50억 원 투자를 제안했다며,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주장한 것.
현재 하이브와 민 전 대표는 법적 분쟁 중이다. 또한 어도어는 뉴진스의 주장을 반박하며 전속 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박 회장의 주장은 이 양대 분쟁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의 판결 여부를 떠나 뉴진스 멤버들이 그룹 이름에 대한 소유권의 주체를 인정하면서도 뉴진스를 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의미를 살펴본다.
뉴진스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지시로 민 전 대표가 기획해 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 등의 멤버로 구성되어 3년 전 데뷔한 걸 그룹이다. 방 의장의 추진력, 하이브의 자본력, 민 전 대표의 기획력 등이 잘 조화를 이루어 뉴진스는 데뷔 직후 월드 스타로 직행했고 현재 정상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방 의장과 민 전 대표는 일찍 어긋났다.
뉴진스 성공 직후 민 전 대표는 미디어를 통해 방 의장과 선을 긋는가 하면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민 전 대표가 루비콘강을 건넜음을 만천하에 알리면서 양측의 분쟁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후 뉴진스는 공개적으로 민 전 대표를 지지했고, 지난해 말 어도어와의 결별 선언 때도 한배를 탈 것임을 선언했다.
과연 뉴진스는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구조주의와 해체주의를 통해 대충은 가릴 수도 있을 법하다. 구조주의는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에 의해 본격적인 인식론과 방법론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언어를 랑그(언어 수행)과 파롤(언어 능력)으로 구분했다. 또 기호는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의 합으로 보았다.
일상의 언어는 음성과 문자를 통해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특정 집단(민족, 국가)의 공통적인 체계를 통해 언어와 문자는 각각 고유의 통일성을 갖는다. 즉 대한민국은 사과라고, 영어권에서는 애플이라고 통일하는 것이다. 이렇듯 구조주의는 각 사물의 의미를 개성과 독립성이 아니라 그가 속한 체계 안에서의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로 규정하는 개념이다.
S전자 영업팀에 김 대리가 있다고 하자. 그의 취미는 영화 감상이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가장 좋아한다. 내성적이지만 직업상 활달하게 보이려 애쓰고,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어서 더러운 것과 무절제한 것, 그리고 불법을 매우 싫어한다. 그러나 구조주의에 따르면 이런 것들은 김 대리를 평가하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가 회사 내에서 임직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거래처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그래서 회사 내에서 어떠한 포지션에 올라 있는가 등으로만 평가된다. 자크 데리다가 창시한 해체주의는 철저하게 구조주의를 분해한다. 니체의 가치 전도와도, 포스트모더니즘과도 연관이 깊다. 구조주의처럼 복잡하지만 기본은 기존 가치관의 전도이다.
2023년 그룹 피프티 피프티 멤버 전원 새나, 시오, 아란, 키나는 소속사 어트랙트에서의 이탈을 선언했지만 이후 키나는 어트랙트에 사과하며 돌아왔다. 재판부는 일련의 소송에서 어트랙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어트랙트는 새 멤버를 충원해 키나와 함께 제2기 어트랙트를 출범시켰다. 이는 아이돌 그룹의 생태계가 철저하게 구조주의적임을 시사한다.
분명히 피프티 피프티는 새나, 시오, 아란, 키나로 구성된 걸 그룹이었다. 그러나 멤버들이 어트랙트와의 계약 내용을 무시할 때는 어트랙트는 언제라도, 누구라도 피프티 피프티에서 제외할 수 있다. 피프티 피프티는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오든 어트랙트와 함께할 때에만 피프티 피프티라는 정체성을 보장받는다. 정체성은 소속사와의 관계에 따라 설정된다.
뉴진스라는 이름의 그룹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은 어도어와의 계약 무효를 선언했고, 독자적인 행보에서 뉴진스 대신 '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이라는 나열형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들이 더 이상 뉴진스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표현은 그녀들이 구조주의적 현실을 인지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그녀들은 K-팝계의 데리다를 선언한 셈이다. 민 전 대표의 한때의 혁명적 투사 이미지가 그림자로 아롱거린다. 해체주의는 기존의 이원론을 깨부수고 다원론을 주장하며, 전통적 형이상학과 전체주의를 거부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급진적 진보 성향이다. 그렇다면 구조주의는 보수주의인가? 기초적 개념만 놓고 보면 그런 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보수와 진보 중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옳다는 확고부동한 현상은 찾기 쉽지 않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래 양 진영이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게 그 증거. 어떤 면에서는 구조주의와 해체주의 역시 유물론과 관념론처럼 영원한 동반자적 적이 되어야 할 이항 대립이다. 과연 뉴진스의 해체주의는 성공할 것인가? 최근 해체주의는 반박되는 추세.
뉴진스는 '어도어가 우리들에게 투자한 것 이상의 수익을 거두어들였다.'라는 식의 논리로써 계약 무효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뉴진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 준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숱한 슈퍼 아이돌 그룹 중 그 누구도 그런 이론을 펼친 이는 없다. 모든 K-팝 아이돌이 그런 이념으로 무장한다면 그 어떤 투자자가 K-팝에 투자하려 들까?
[유진모 칼럼 /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