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빈, '하얼빈'의 곰 같은 여우 된 '영웅'
- 입력 2025. 01.10. 11:22:28
- [유진모 칼럼] 일본은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뒤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행정, 입법, 사법, 군대를 장악한 채 35년여 동안 우리 민족을 탄압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 수많은 투사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역.
현빈
안중근의 부활은 2009년 10월 26일 '영웅'이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시작되었다. 이후 거의 매년 공연되며 지난해에도 공연된 스테디셀러이다.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주인공인 정성화를 주인공을 내세워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2022년 말 개봉했다. 또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현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하얼빈'을 지난해 12월 24일 개봉했다.
'영웅'은 3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하얼빈'은 이번 주말에 400만 명을 돌파하는 것은 명약관화하지만 1000만 명 달성은 다소 무리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117개국에 판매되는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는 가운데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안중근의 내면의 인간적 고뇌를 잘 표현한 현빈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안중근은 가톨릭 신자로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래서 도마 안중근으로 불렸다. 천주교의 영향으로 교육 사업 등 민족의 계몽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일제의 침탈이 사실상 국권을 망가뜨리는 수준으로 확대되자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바꾸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해 의군을 조직한 뒤 대한독립군의 참모 중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토 살해 후 체포되어 옥중에서 많은 휘호를 남기고 자신의 사상을 논하는 글인 동양평화론의 서문을 저술하다 사형이 집행되어 생을 마쳤다. 사실 2년여 전 '영웅'이 개봉되었기에 현빈으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정성화가 오랫동안 뮤지컬을 통해 안중근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영화로 방점을 찍었기 때문에 더욱더 마음의 짐이 무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와 영화를 번갈아 오갔던 그였기에 영화배우로서도 어깨가 무거웠을 듯하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전 세계적으로 영화계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드라마 시상식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마저도 OTT의 축제의 장이 되고 있을 정도로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현빈의 14번째 영화이다.
그의 대표 영화는 '공조'(2017년, 781만 명)와 '공조 2: 인터내셔널'(2022년, 698만 명)이다. 해병대 제대 후 첫 복귀작인 영화 '역린'(2014년, 384만 명)이 흥행에 성공한 후 '공조' 시리즈를 비롯해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럭저럭 흥행에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교섭'(2023년, 172만 명)으로 살짝 자존심이 상했기에 후속작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단 '하얼빈'은 연출력에서 흠결을 거론하는 이가 거의 없고 흥행 성적도 쏠쏠하다. 게다가 현빈은 연기력과 더불어 안중근의 공포심과 번민 등을 아주 훌륭하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얻고 있다. 잘생긴(아름다운) 배우라면 누구나 연기력 평판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현빈 역시 데뷔 전부터 압도적인 미남으로 인정받았기에 그랬을 법하다.
하지만 '하얼빈'으로 이제 그는 연기파의 반열에 오를 듯하다. 할리우드에서도 진가를 인정할 정도의 '연기 천재' 이병헌은 그러나 TV 드라마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영화에 진출했던 초기에는 번번이 실패해 영화의 절벽을 실감하고 크게 낙담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 별 차이가 없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드라마와 영화의 시스템이 달랐기 때문.
그것은 노골적으로 말하자만 연기력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게 출연하는 영화마다 '말아먹었던' 그를 비로소 영화배우로서 성공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 바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582만 명)였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특히 영화에서 배우가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
그런 면에서 현빈은 '내부자들'(이병헌, 조승우), '마약왕'(송강호), '남산의 부장들'(이병헌) 등에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연기의 신들'과 함께했던 우 감독을 만난 것 역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가짜 뉴스에 희생되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오히려 꾸준히 선행을 이어온 '영웅'이다.
2005년 2월 가수 김범수의 뮤직비디오 출연료 전액을 모교인 중앙대학교에 기부하는 한편 영동고등학교 연극반 후배들에게 TV와 게임기 등을 선물하며 나눔을 시작했다. 이후 틈만 나면 그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돈을 기부하는 행보를 보였다. 결혼 전까지는 동료 배우들과 함께 재능 기부에도 종종 나섰다.
결혼 직전인 2022년 초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등에서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이웃을 돕기 위해 당시 예비부부인 현빈과 손예진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송필호)에 2억 원을 기부했다. 손예진의 기부 내역도 현빈에 못지않다. 두 사람은 결혼 후 기부 일선에 동참 중이다. 새해를 맞아 이들은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 각각 1억 5000만 원씩 총 3억 원을 기부하였다.
현빈은 이미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 자격을 획득하였다. '사랑의 열매',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 등은 그의 단골집이다. '하얼빈' 관람자들은 호평 일색이다. 특히 잠시라도 안중근을 잊었던 것을 자책하며 재평가하는 분위기이다. 우 감독의 연출력과 더불어 우직하게 연기력을 쌓아 이제 '곰 같은 여우'가 된 현빈의 연기 솜씨 덕이 아닐까?
[유진모 칼럼 /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