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과 부조리에 맞서다…뮤지컬 '웃는 남자'[무대 SHOUT]
- 입력 2025. 01.23. 16:18:18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인간성마저 무너진 17세기 영국 귀족들을 서민들의 무기, 풍자와 해학으로 꼬집는다. 그윈플렌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21세기 한국인들에게도 열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는 17세기 영국 아이들을 기형적으로 만들어 귀족에게 놀잇감으로 팔던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얼굴을 찢겨 평생 웃는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 그윈플렌의 비극을 그려낸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제작비도 175억 원으로 초대형 규모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듯, 정교하고 화려한 무대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클랜찰리 경의 화려한 궁전, '그 눈을 떠'로 유명한 의회 장면 등 결점 하나 없을 것 같은 귀족들의 공간과 콤프라치코스의 바다, 우르수스의 서커스단 등 어둡고 낡은 가난한 이들의 공간이 비교되도록 시각적으로 대비를 줬다.
그렇다고 가난한 이들의 공간이 우울하지만은 않다. 화려한 빈껍데기일 뿐인 부자들과 달리 서커스단의 장면 속에서는 기쁨, 슬픔, 사랑 등 따뜻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웃음은 별미다. 서커스단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뮤지컬 공연장을 순식간에 서커스 장으로 바꿔낸다. 공을 타는 곰이 나올 때는 객석에서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또한 뮤지컬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웃는 남자' 속 넘버들은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나무 위의 천사' 'Can It Be' '그 눈을 떠' '웃는 남자' 등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이 시작되면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다.
이번 시즌에는 경력직 이석훈, 규현, 박은태와 함께 NCT 도영이 새롭게 그윈플렌으로 합류했다. 2021년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약 4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선 도영은 긴장한 여력이 가득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극을 끌어 나갔다. 출중한 안무 소화력과 안정적인 노래 실력이 돋보이는 '도윈플렌'이었다.
데아 역에는 초연부터 함께해온 이수빈과 신예 장혜린이 캐스팅됐다. '벤허', '베르사유의 장미'에 이어 '웃는 남자'로 대극장 주연에 발탁된 장혜린은 청아한 목소리로 극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데 일조했다.
극을 이끌어 가는 두 주연 배우의 경험이 적은 탓에 배우의 역량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면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베테랑 배우 서범석, 김소향, 강태을, 김지선 등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며 이러한 아쉬움을 다소 해소했다. 특히 김소향은 파워풀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다면적인 캐릭터 조시아나를 그려내 극에 깊이를 더했다. 말 그대로 신구가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무대였다.
로버트 요한슨 연출은 천 페이지에 달하는 원작 소설을 180분 속에 담아내기 위해 캐릭터들의 서사, 특성을 과감히 축소했다. 원작의 깊이를 포기한 대신 뮤지컬이라는 장르만이 줄 수 있는 볼거리, 음악 등으로 채워 넣었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원작 소설의 이미지를 따온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웃는 남자'는 권력과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캐릭터들을 통해 여전히 강력한 울림을 준다. 그윈플렌은 가난한 서커스단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이 귀족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풍요로운 삶에 취하지 않고 자기 손에 들어온 권력으로 부조리함에 맞서겠다고 다짐한다. '웃는 남자'의 명장면 '그 눈을 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윈플렌이 부조리함에 맞선다면 조시아나는 운명에 맞선다. 조시아나는 앤 여왕이 정해준 정혼자를 부정하며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호감을 느꼈던 그윈플렌이 귀족 신분을 되찾고 자신의 정혼자가 되자 그윈플렌마저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엔딩이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따뜻한 극장을 나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진정한 '웃는 남자'의 엔딩을 만나게 된다. 여전히 가난한 자의 겨울이 더 가혹한 현실 속에서.
뮤지컬 '웃는 남자'는 오는 3월 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S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