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진스? NJZ?, '너의 이름은.'과 사회계약론
- 입력 2025. 02.11. 11:51:34
- [유진모 칼럼] '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은 뉴진스 대신 NJZ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하이브 자회사인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는 이에 대해 지난 10일 "뉴진스 멤버들이 어도어와 협의하지 않은 그룹명으로 활동할 계획을 밝혀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뉴진스와 어도어와의 전속 계약은 법적으로 유효하며 해지됐다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뉴진스
뉴진스 혹은 NJZ 또는 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은 다음 달 23일 홍콩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서 데뷔 곡을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멤버들은 새로운 팀명을 내세운 이유에 대해 "이전 이름을 잠시 사용할 수 없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뉴진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특별하고 팬들도 매우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MBC 금토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주인공 강지윤(한지민)의 회사 피플즈의 투자자 오 회장은 "사업은 팩트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신용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하이브는 성공의 보장이 없던 다섯 소녀들을 모아 최소한 수십억 원의 비용을 대면서 뉴진스로 키웠고, 그녀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그 배경은 뉴진스와 어도어의 계약에 있다.
어도어는 뉴진스를 절대 버릴 수 없다고 하지만 민지 등이 일방적으로 전속 계약 해지를 통보한 배경은 바로 그 계약에 있다. 어도어가 자신들에 대한 '신의 성실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 아직 사회 경험이 일천한 민지 등의 주장이기에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에 근거한 기업의 논리로 볼 때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연예인에게 수십억 원을 투자해서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성공시킨 다음에 폄훼한다. 상품 가치를 깎아내린다. 그렇다면 수익이 줄어들 것은 명약관화하다. 설령 미운털이 박혔다고 한들 이윤 추구가 최대의 목표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지를 훼손하려 하기 쉽지 않다. 기업은 한두 명이 움직이는 게 아닌 다수의 유기체이다.
물론 총수의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될 수도 있지만 몸집이 큰 기업일수록 그것은 쉽지 않다. 군주제이던 과거에도 일부 독재자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왕들은 중신은 물론 백성의 눈치를 살폈다. 하물며 이익이 최고의 가치인 현대의 기업이 총수의 편협함 때문에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이 될 이익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뉴진스라는 상표권이 연예 기획사 어도어에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이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는 민지 등은 New Jeans와 멀지 않은 NJZ라는 새 이름을 취했다. 의도는 보인다. 그러나 문자(언어, 기호)는 조금만 달라도 뜻이 바뀐다. 심지어 같은 단어도 다를 수 있다. 다리는 足과 橋의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식이다.
그런데 David는 영어권에서는 데이비드라고, 스페인어에서는 다비드라고, 히브리어에서는 다윗이라고 각각 말한다. 기호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이다. 이렇듯 언어(단어, 기호)에는 랑그(규칙)와 파롤(뉘앙스), 기표(문자와 음성)와 기의(의미와 이미지)가 있다. '잘 살아.'라고 말하면 본래의 파롤이지만 '자~알 살아.'라고 말하면 반대의 의미이다.
버니즈(뉴진스 팬덤)는 뉴진스 데뷔 전 다른 연예인의 팬이었을 것이다. 광적인 이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았기에 뉴진스의 열광적인 지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뉴진스이다. 그 처음의 의도는 '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뉴진스였기 때문이다. 그 후 그 파롤과 기의는 뉴진스에서 민지 등으로 변화했다.
어도어 입장에서는 아직 '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의 뉴진스라는 기표와 기의는 변함없다. 랑그와 파롤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민지 등과 버니즈는 말로는 뉴진스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입장은 뉴진스를 버렸다. 물론 어도어가 뉴진스라는 이름을 주겠다고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오기에는 어떠한 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2017)은 국내에서 3번이나 개봉되면서 39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름을 매개로 한 기억,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에 관한 내용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 사건을 모티프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하이데거, 앙리 베르그송 등을 차용했다.
베르그송은 끊임없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순수 지속'을,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본래적 존재의 피투된 세계-내-존재이고, 도래적 존재가 와서 결국 본래적 존재로 되돌아가는 죽음이라는 시간성을 산다.'라고 각각 주장했다. 기억은 시간을 순차적이거나 선형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의 원천인 순수 지속은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고 한다.
즉 그것은 끊임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시간의 순서대로라기보다는 연속성인 삶의 깨달음이다. 뭔가 문제에 대해 혹은 삶의 의미에 대해 꽉 막혀 있다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해답이 보이면서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떠오를 때를 말한다. 우리는 이름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이름을 부여받아 그 존재론적 존재자로서 세상을 살게 된다.
민지 등은 어도어에 의해 뉴진스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고 연예인으로 데뷔했다. 물론 모든 그룹들이 그렇듯 평생 첫 그룹의 이름으로, 그 소속으로 살지는 않는다. 다만 '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린'의 조합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특별한 계기가 발생하거나 꽤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한 당분간 뉴진스라는 기의와 파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왜? 팬들의 랑그와 기표는 순수 지속에 가까우므로. 어도어가 민지 등을 상대로 제기한 '기획사 지위 보전과 광고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문 기일은 3월 7일에, 전속 계약 유효 확인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은 4월 3일에 각각 진행된다. 4월 3일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민희진 전 대표가 템퍼링 의혹에 대해 입을 열 수도 있다.
기자 회견을 자주 열던 그녀가 다수의 매체와 대중의 해명 요구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자본주의를 떠나 현대 사회는 계약에 의해 질서가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 혁명의 동력원이자 미국 독립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다. 사회는 그 구성원인 인간 개체들 사이의 계약으로 형성된다. 그게 민주주의이다.
[유진모 칼럼 /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