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애나엑스', 보는 대로 믿는 것과 믿는 대로 보는 것[무대 SHOUT]
입력 2025. 02.21. 11:54:23

'애나엑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명품 신발, 명품 옷, 그리고 고급 호텔에서의 일상. SNS 속 애나 델비의 모습은 화려하다.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사교계의 스타가 된 애나, 하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건 거짓이었다. 애나는 왜 사람들을 속여야만 했을까.

연극 '애나엑스'는 부유한 독일 상속녀 '애나 델비'로 위장해 뉴욕 사회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던 '애나 소로킨'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실존 인물 애나 소로킨의 충격적인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2021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뒤 올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초연 무대를 올리게 됐다.

시끄러운 음악, 그리고 거대한 LED 배경들이 가득 찬 무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뉴욕의 한 클럽에서 자신을 부유한 상속녀라고 소개하는 애나와 '제네시스'라는 프라이빗 데이트 매칭 앱 론칭에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 아리엘이 만나며 극은 시작된다.

애나는 고급 호텔에 머물며 명품 옷을 입고, 파티에 참석하는 인물이다. 이와 같은 화려한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전시하면서 그는 뉴욕 상류층의 사교계에도 한걸음 가까워진다. 덕분에 애나는 손쉽게 돈을 빌리고, 아리엘 또한 애나에게 마음을 주면서 별다른 의심 없이 그를 지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애나의 행동에 의심을 갖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아리엘 역시도 그의 실체에 점점 가까워진다. 애나의 삶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2인극이기에 무대가 화려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애나엑스'의 무대는 정말 단순하다. 무대 위에는 스마트폰을 표현한 LED 배경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소품이나 세트가 없다. 상황을 전달하는 데에 필요한 스마트폰 속 화면들만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또한 배우들의 의상도 정말 평범하다. 애나와 아리엘 모두 의상이 청바지와 면티, 후드집업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머리를 묶고, 안경을 쓰는 정도의 변화만 줄 뿐 두 사람은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같은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이와 같은 심플한 '애나엑스'의 구성은 관객들을 그들의 주변 인물처럼 만든다. 사실은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인물들이지만, 우리는 LED 속의 화면만으로 어느 순간 애나를 '부유한 상속녀'로, 아리엘을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로 인식한다. 눈앞의 배우들이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면 속의 화려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믿게 되는 것이다.



장치를 통해 몰입도를 올려놓은 만큼, 애나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관객들 역시 아리엘처럼 혼란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해서 사기 행각을 벌이게 됐는지 알게 됐을 때는 약간의 배신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애나에 대한 혼란과 배신감보다는 의문에 더욱 가까워진다. 애나의 삶에 진실이 있었던 걸까, 애나는 왜 이렇게 큰 거짓말을 만들어내야만 했을까, 또 우리는 아리엘을 단순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까.

"이 나라는 놀이터야. 반칙해서 들키면 범죄자, 안 들키면 사업가인 나라"라는 대사처럼 아리엘과 애나는 정말 한 끗 차이일 뿐이다. 그가 만들었던 데이팅 앱은 상류층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점 하나만으로 그럴듯한 사람들이 모아 성공한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다. 두 사람 모두 높은 곳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했다는 점은 결국 동일하다.

'애나엑스'를 감상한 관객들은 "작품의 주제는 그 사람의 범죄 행위 보다 그가 상징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는 김지호 연출의 의도에 걸맞게 여러 질문들과 함께 극장을 나서게 된다. SNS 속 세상과 현실 사이에서 생겨나는 딜레마로 시작해 그 생각은 현대 사회에 대한 고찰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번 공연에서 '애나' 역에는 최연우, 한지은, 김도연, '아리엘' 역에는 이상엽, 이현우, 원태민이 캐스팅 됐다. 2인극인 만큼 두 역할 모두 방대한 대사량을 자랑하지만, 배우 모두 역할에 몰입해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다만,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려낸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공연이라는 특성상 시간이 한정되어 깊이 있는 서사를 담기 어려운 건 사실이나, 개연성에 빈틈이 생기면서 아리엘이 애나에게 그 정도로 마음을 쏟게 된 이유를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애나엑스'는 오는 3월 16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글림아티스트, 글림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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