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블랙코미디·멜로 갈아 만든 봉준호표 소스, ‘미키 17’ [씨네리뷰]
입력 2025. 02.26. 07:00:00

'미키 17'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SF와 블랙코미디, 여기에 멜로 한 스푼까지. 현시대 자본주의와 현실에 대한 가장 완벽한 우화다. 봉준호 감독만의 재치와 디테일까지 살아있는 영화 ‘미키 17’의 이야기다.

미키(로버튼 패틴슨)는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 티모(스티븐 연)에게 꼬여 고액의 빚을 지고 함께 지구를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기술이 없던 미키는 위험한 일을 하다가 죽으면 똑같은 상태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마셜 행성 개척단에 자원한다.

미키는 지구를 떠난 첫 날, 카페테리아에서 나샤(나오미 애키)를 만나고 첫 눈에 반한다. 나샤는 개척단에서 군인, 경찰, 소방관 역할을 겸하고 있는 에이스 요원이다. 나샤는 미키 1부터 미키 17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죽음과 출력 속에서 그의 옆을 지켜준다.

얼음행성에 도착한 미키 17은 그곳의 생명체 ‘크리퍼’를 만난 후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지킨 미키 17이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는데. 행성 당 1명만 허용됐기에 둘 이상이 존재하는 ‘멀티플’은 불법이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현실 속 미키 18로 인해 미키와 얼음행성의 운명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계급 사회와 그 사회를 뒤집는 전복을 그린 ‘설국열차’, 대량 축산 시대 속 고통 받는 동물의 생명 문제를 다루며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일침을 가한 ‘옥자’, 양극화 사회의 이면을 극단적인 세 가족의 공생과 참극으로 그려낸 ‘기생충’까지.

이처럼 봉 감독은 기존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고, 남다른 상상력과 새로운 이야기로 인간애와 유머,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복합 재미를 선사하며 사회와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자본주의 병폐와 계층 문제를 꾸준히 풍자해온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는 짠내 나는 노동자 미키를 내세웠다. 죽음이라는 극한직업을 가진 노동자이자, 죽으면 다시 출력되는 소모품인 미키를 주인공으로 계급과 차별, 정치와 인간의 욕망이 작동하는 인간사회를 들여다본다. SF 장르이지만 현실과 견주어보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봉준호 감독 작품 최초로 다뤄진 사랑 이야기란 점도 눈길을 끈다. 앞서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미키와 나샤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중요한 기본 척추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수 십 번의 죽음과 출력 속 그럼에도 미키가 꾸역꾸역 살아남은 건 결국 사랑 덕분이라는 것, 잔인한 현실 속 인간을 구원하는 건 사랑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 같다.

미키 역의 로버트 패틴슨의 열연은 봉준호 감독이 그리는 이야기와 스크린 속으로 몰입을 더한다. 같은 외모이지만 극과 극으로 다른 1인 2역의 미키를 목소리 톤과 표정 변화로 구현해낸 것. 번호 대신 미키 반스라는 고유의 이름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마침내 인류를 구하는, 영웅 같지 않은 영웅을 그려낸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얼음행성 생명체 크리퍼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첫인상은 불호일 수 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사랑스러운 매력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미키 17’은 완벽하게 꽉 닫힌 해피 엔딩이다. 물음표와 뒷맛을 남기는 결말을 원한 관객 입장에선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다. 원작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미키 7’이다. 러닝타임은 137분. 15세이상관람가. 오는 28일 개봉.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