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욱, 진심을 쏟은 '원경' [인터뷰]
- 입력 2025. 02.26. 07: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배우 이현욱에게 '원경'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첫 사극인 만큼 그는 진심을 쏟아냈기에, 이제는 괴로움을 덜어내고 '원경'을 잘 떠나보내려 한다.
이현욱
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원경'(극본 이영미, 연출 김상호)은 남편 태종 이방원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원경왕후를 중심으로, 왕과 왕비, 남편과 아내, 그 사이에 감춰진 뜨거운 이야기를 그렸다.
"아직도 마음에 많이 남아있다. 너무 그립고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괴롭기도 해서 복합인 감정이다.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안 그랬으면 마음에 괴로움, 답답함, 서러움과 같은 감정을 계속 안고 살아갔을 것 같다. 작품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극 중 이현욱은 백성을 위한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해 칼을 들었던 태종 이방원으로 분했다. 앞서 다수의 작품에서 이방원이라는 인물이 다뤄졌던 바, 하지만 이현욱은 '새로운' 이방원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살면서 지금 아니면 제가 이방원을 만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작발표회에서 부담이 없었다는 말도 선배들이 만들어주신 훌륭한 이방원 캐릭터 이외의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만약에 선배들이 했던걸 똑같이 요구했다면 안 했을 것 같다. 그 정도의 카리스마라면 부담이 돼서 못 했을 것 같은데, 새로운 이방원을 표현하고 싶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있었다. 그러면 선배님들이 안 했던,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이 안됐다고 말했었다. 물론 실존 인물의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은 조금 있었다."
이현욱이 말했듯 '원경' 속 이방원은 지금까지 봐온 모습과는 달랐다. '원경'의 이방원은 왕이 되기 위해 부인과 처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만, 왕이 된 뒤에는 왕권 강화를 위해 사랑하는 처가를 몰살시킨다.
"선배님들이 연기했던 이방원의 이미지는 결단력 있고, 카리스마 있고, 우직하고 강단 있는 남성상이었다. 하지만 저는 이 사람이 아내의 일가를 멸문지화할 때 어땠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괴롭지는 않았을지, 또 한편으로 민망하지는 않았을지, 이와 같은 지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갈등하고 고민하는 부분들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상황적으로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초반부에는 우유부단한 이방원의 모습이 나오면서 역사 왜곡, 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현욱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실존 인물을 폄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 가장 큰 걱정이 들었다고.
"태종 이방원이라는 사람이 정말 유명하고, 그의 업적에 대해서 사람들이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것 같다. 사실 그 정도까지 볼 줄은 몰라서 괴로웠다. 저는 선배님들이 잘 표현해 주신 이방원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이방원의 외로운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상황적으로 우유부단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 모습은 원경왕후에 대한 질투보다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이 사람과 함께 뜻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갈등이다. 그런데 제 의도와 다르게 이방원이 마음대로 안되자 화만 내는 사람으로 그려졌던 것이 아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극 후반부에는 사랑꾼 같은 면모와 함께 원경과의 애절한 로맨스를 그려내 호평받았다. 이현욱 역시 11, 12화에 가장 큰 자신감을 드러내며 결국 이방원이 해온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고 밝혔다.
"저는 가장 자신 있었던 회차가 11, 12화였다. 원경왕후에 대한 애증이라고 표현했지만 사랑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랑을 기반으로 많이 생각했고, 항상 사랑이었다. 물론 저 혼자만의 사랑이 된 것들이 많아서 답답한 것도 많았지만, 대본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표현했다. 화를 내고 답답해서 짜증 내는 태종의 기저에는 사랑이 있었다. 함께 가고 싶은데 왜 나보다 앞서가는지에 대한 서운함이었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태종을 찌질하게 표현한 점이 아쉽고 죄송했다."
앞서 차주영은 인터뷰를 통해 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이현욱에게 많이 의지하며 촬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현욱 역시 이에 공감하면서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정보가 적은 원경왕후를 연기한 차주영에 대해서도 큰 고마움을 드러냈다.
"작품을 보면 결국 다 죽거나 떠나서 끝까지 남아있는 건 서로였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도 저희로 흘러가니까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원경왕후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서 저랑 주영이, 감독님은 계속해서 얘기를 나눠야 했다. 저는 앞서 공연 경험도 있다 보니 같이 만들어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사실 연기하는 사람은 캐릭터를 누군가와 같이 만들어오지 않기에 개인 창작자다. 그래서 초반에는 주영이를 위한 과정이니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 그래도 서로 의지했다고 잘 말해줘서 저도 굉장히 고마웠다."
특히 이현욱이 '원경' 마지막 촬영을 맞아 차주영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현욱은 "촬영하면서 생일을 처음 겪었는데, 그때 제게 깜짝 이벤트를 해줬다. 마지막 촬영날엔 스태프분들이 꽃을 주기는 하지만 거기에 보답을 하고 싶었다"며 "안쓰러운 면도 있어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걸 해주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원경왕후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만큼 장미를 준비하고, 편지를 써서 파트너로서의 존경심을 표현한 거였다. 한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것에 대한 존경심으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게 자꾸 인터넷에 '스윗남'으로 뜨더라. 그만 보고 싶은데 자꾸 떠서 조금 부담스럽고 민망한 마음"이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원경'은 과연 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았을까. 그는 첫 사극인 만큼 진심을 다했다며 '원경'을 통해 그는 시대극의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제가 조선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오버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져서 살고 싶었고, 안 그러면 연기를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생각하면서 살아야 깃털만큼이라도 그게 표현될 것 같았다. 정말 진심으로 임해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고, 그래서 아쉬움도 더 큰 것 같다. 시대극의 매력도 느꼈다. 일상적인 현대물도 좋지만, 분위기가 주는 향수가 있더라. 평소 저의 모습이 섞인 현대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인물로 살아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2010년 영화 '가시심장'으로 데뷔한 이현욱은 올해 마흔을 맞이한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마인', '도적: 칼의 소리' 등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이어온 이현욱은 "불혹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데, 제일 많이 흔들리고 있다"며 최근 생겨난 고민에 대해서 털어놨다.
"예전에는 활발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많이 조용해진 것 같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어서 바뀐 것 같으면서도 그냥 어른스러운 척을 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이 많아졌다. 원래 불혹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데, 종 마냥 제일 많이 흔들리고 있다. 변화가 많은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제가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기도 했고,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혼자 심오해질 때가 종종 있다. 점점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이 줄어들면서 사는 것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도 해보고, 확실히 잡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아마 불혹은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흔들리면서 단단해지는 나이인 것 같다."
수많은 고민 끝에 이현욱이 도달한 결론은 '행복'이었다. 그는 정답을 내릴 수 없는 고민이라면서도 어디에 중점을 두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삶의 가치는 한 번에 정답이 내려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점점 가치를 두는 부분이 바뀔 것 같은데, 점점 더 성숙한 선택을 하면서 가치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다. 젊었을 땐 일적인 성공, 욕망과 같은 누릴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둔다. 그런데 그런 것들과 조금씩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그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와 같은 고민을 요즘 많이 한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한다. 살면서 계속 좋은 쪽으로 바뀌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에게 떼놓을 수 없는 연기는 어떤 존재일까. 이현욱은 연기와 행복을 "N극과 S극"같은 존재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일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며 큰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연기는 제가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인데, 인간 이현욱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좋은 게 아닐 수 있다. 도움이 되는 부분은 존재하지만,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는 모순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기해온 선배님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평생을 살아온 배우라는 직업이 한순간 끝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강해서 항상 스스로를 조금 의심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저는 일할 때가 제일 재미있고, 사실 현장이 아닌 곳들이 더 불편하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길스토리이엔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