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빈, 빛을 머금은 프리즘처럼 [인터뷰]
- 입력 2025. 03.18. 08:00:00
-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제 이름이 받을 수(受)에 빛날 빈(彬)을 써요. 빛을 받는다는 뜻이죠"
정수빈
이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운명이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내외 팬들의 사랑을 받은 그는,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줄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수빈(授彬)으로 성장했다.
U+ tv, 모바일 U+ tv 등 특정 통신사 플랫폼에서만 시청 가능하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를 끌어모은 '선의의 경쟁'은 U+tv, U+모바일tv 시청 건수, 시청자 수, 신규 시청자 유입 수 모두에서 역대 오리지널 드라마 부문 기록을 갈아 치우는 쾌거를 달성했다. 최근 OTT 메인스트림에 진출해 더 많은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통신사를 이용하지 않은 분들은 시청이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도 시사회 때 재밌다는 리뷰를 많이 써주셔서 어렵더라도 알음알음 찾아와서 봐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보러와 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죠. 덕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공주님', '아기 윤은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어요. 이렇게 풍부하게 작품을 같이 봐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받은 사랑을 꼭 보답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정수빈은 '선의의 경쟁' 우슬기 역을 제안받고 여러 번의 미팅을 거쳐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정수빈이 합류한 시점에는 혜리, 오우리, 강혜원 등 대부분의 배역들이 캐스팅이 끝난 상황이었다고.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재밌었고 나레이션으로 연결되는 게 한국에서 잘 볼 수 없는 서사구조였어요. 계속 다른 인물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고, 수중 씬도 많아서 이게 과연 구현이 가능할까? 싶었죠. 그래서 더 하고 싶었어요. 감독님께 저를 캐스팅하신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진 못했는데, 미팅 중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표현한 슬기가 감독님께 감동을 줬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어요."
우슬기는 유제이(혜리)와 함께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쳐 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슬기는 끊임없이 유제이를 의심하지만, 유제이는 결국 끝까지 우슬기에게 선의를 베푼다. 우슬기 역시 피어오르는 의심 속에서도 유제이와 손을 잡는다.
"슬기가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고 따뜻한 애정을 받을 수 없었고 자기를 지키려고 살았던 인물이잖아요. 제이가 믿음을 주니까 도미노처럼 천천히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던 것 같아요. 제이 덕분에 의심이 들고 배신감을 느꼈을 때조차 믿는 법을 알게 된거죠. 애정을 주는 법을 통해서 제이에게 느낀 고마움을 나눠주려 하고, 계속해서 제이를 믿었던 슬기가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슬기가 점점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 믿음으로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슬기를 연기했어요."
슬기를 그려나가는 과정을 자신과 닮은 점에서 시작했냐는 질문에 정수빈은 "이번에는 닮은 점을 찾으려고는 안 했는데, 끝나고 보니 닮아 있었다"고 답했다.
"이전에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는 카페나 독서실처럼 막힌 데서 집중해서 작업했는데, 슬기는 이 친구를 믿을 수 있을까, 믿어도 되나 의심하고 생각이 많은 친구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많이 걸었더라고요. 슬기도 어떤 고민에 잠식된 인물이 아니라 해결하려고 뭐라도 하는 친구인데, 저도 어디라도 걸으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도 생각이 많으면 걷거나 등산하는 편인데 그런 부분이 닮았더라고요."
작품은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렸다. 정수빈은 처음 엔딩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슬기 입장에서는 제이 때문에 수능을 못 봤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제이를 볼 수 있는 타이밍에 등을 돌렸는데, 제이가 실종되고 나니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우슬기는 유제인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 선물을 받고 그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데, 정수빈은 이 장면을 '최애 장면'으로 꼽았다.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슬기로서는 제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제이가 살아있다는 믿음을 계속 갖고 있긴 했지만, 의심이 들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선물을 받고 살아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제이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던 장면이에요."
그럼 두 사람이 재회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정수빈은 "저도 많이 상상해 봤던 것 같은데, 제이 꿈을 계속 꾸는 슬기가 처음으로 제이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거다. 서로의 관계 때문에 멀어진 거라면 제이를 존중했겠지만, 그런 게 아니니까 슬기는 제이를 찾고 싶었을 것 같다. 제이도 그러길 바랐을 거다"라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수빈은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또래 여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는 "이렇게 여배우만 있는 건 처음이었다. 저도 여고를 나왔는데,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재밌었다. 배우들이 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라 많이 배웠다"며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춘 혜리와 돈독한 사이가 됐단다.
"작품 시작 전에 혜리 언니가 저한테 그동안 선배들을 통해 얻은 배움을 주고 싶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언니도 선배들이 지지 해주고 응원해 줬다면서 '너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 언니 믿고 그리고자 하는 걸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줬어요. 그때 사람 정수빈으로서 혜리 언니한테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또 전체 촬영 끝나고 마지막 인사 끝낸 다음에 저 혼자 촬영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마무리했으니까 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촬영 끝나고 보니까 혜리 언니가 말없이 찾아온 거예요. 어떻게 왔냐고 물었더니 언니가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펑펑 울었어요. 마지막까지 언니한테 큰 배움을 얻었죠."
정수빈은 함께 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동료들 덕분에 '선의의 경쟁' 속 메시지가 더욱 크게 와닿을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선의와 경쟁'이라는 말이 역설적이기도 하잖아요. 혼자 경쟁하는 건 도를 닦거나 스스로 연마하는 거니까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 되려면 누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 남을 이기기 위해 경쟁을 하는데, '선의의 경쟁'은 그런 것보다는 긍정적으로 서로에게 배워가는 과정을 그려나가요. 무엇보다 약에 집착하던 슬기가 제이가 준 비타민을 먹고도 전교 1등을 해내는 걸 보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면 소중한 사람을 통해서 행복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치열한 경쟁보다는 공존하면서 배워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연기했어요."
이어 "배우라는 직업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희가 어떤 걸 그려갈 때 스태프분들도 같이 연기를 해주신다. 모든 분이 연주를 잘 해주셔서 작품의 메시지가 더 잘 담겼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정수빈의 마음은 우슬기에게도 투영됐다. 그는 '선의의 경쟁' 속 친구들의 작은 선의마저 잘 담을 수 있는 하얀 도화지 같은 우슬기를 만들어냈다.
"제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건 슬기가 마냥 어둡고 힘든 친구가 아니라 새하얀 도화지 같은 친구로 보이길 바랐어요. 어두워서 그런 게 아니라 아직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 거죠. 슬기는 제이가 파란색을 알려주면 파란색을 한번 칠해보고, 노란색을 알려주면 노란색을 칠해보는 친구예요. 그렇게 나아가서는 다채로운 색이 담겼으면 했어요. 제이, 경이, 예리 모두가 다양한 색을 전해줘서 슬기에게 잘 담긴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정수빈이라는 배우는 어떤 색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정수빈은 잠시 고민하더니 밝은 빛을 받아 다채로운 연기로 퍼트리는 프리즘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저는 제 이름처럼 빛의 색이고 싶어요. 빛은 아무 색이 없어 보이지만, 프리즘을 가져다 대면 보기와 다르게 다양한 색을 드러내잖아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이 나타나는 빛의 색처럼 다양한 각도로 돌았을 때 많은 모습을 드러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만큼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도 드러냈다. 그는 "특정 장르를 가리기보다 앞으로 다양하게 더 많이 하고 싶다. 로맨스가 있으면 저도 재미나게 잘 표현해 보고 싶고, '수사반장1958' 하면서 액션을 길게 연습했던 경험이 있어서 액션 장르도 하고 싶다. 뭐든 연락 주시면 열심히 할 수 있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누가 안 되게 성실하게 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배우로서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정수빈은 연기를 시작한 계기와 최근 무대인사를 통해 큰 사랑을 받은 경험의 연장선상으로 '빛을 돌려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저는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게 행복해지고 싶어서였거든요. 나는 그럼 이 행복을 어떻게 돌려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괜괜괜')가 같은 시기에 개봉해 무대인사를 돌면서 느낀 건 이레 배우, 손석구 선배님도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저희 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괜괜괜' 팀은 애교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자는 포부를 다졌죠.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게 애교를 열심히 하자. 그렇게 따스한 빛을 돌려드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셀럽미디어 임예빈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