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 블랙핑크 멤버로서, 솔로로서의 무게감
- 입력 2025. 03.18. 10:39:40
- [유진모 칼럼] 2023년 가을 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 리사, 지수, 로제 등은 이전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와 블랙핑크 활동만 전속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실상 '따로 또 같이' 전략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지난 1년여 동안 4명은 '따로 국밥'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현시점까지만 놓고 보면 솔로 가수로서 가장 성공한 주인공은 '아파트'의 로제일 것이다.
제니
그녀는 미국 LA와 뉴욕 공연에 이어 지난 15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Ruby' 발표 기념 쇼 'The Ruby Experience'를 열었다. 앨범에 수록된 15곡을 모두 공개하는 자리이자 본격적인 솔로 가수로서의 첫 공식 콘서트였다. 물론 많은 관객들이 환호했지만 일부 관객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대다수의 언론은 대체로 부정적인 논조를 쏟아 냈다.
그동안 그녀는 수차례 선정성으로 논란에 오른 바 있다. 그럼에도 속옷 스타일의 의상을 고수하는 가운데 LA 피콕 극장에서 열린 공연에서 가슴이 깊게 파인 보디 슈트, 치골이 드러나는 속옷 형태의 하의 등을 입어 또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무리하다 보니 '필터'(Filter)를 부를 때 가슴 부분이 과하게 벌어지는 사태가 발생해 손으로 의상을 붙잡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 무대도 그와 별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속옷을 연상케 하는 의상을 입고 등장했고 백댄서들도 신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무대를 꾸몄다. 그 정도면 서비스 혹은 애교로 봐줄 만했다. 그러나 애초에 안내된 러닝 타임 120분이 무색하리만치 70분 살짝 넘기면서 끝났고 그나마 제니는 자신의 단독 콘서트임에도 10분 정도 지각하는 결례를 범했다.
이런 무성의한 공연임에도 14만 3000원~22만 원이라는 티켓 가격 책정이 비현실적이라는 반응을 초래했고 특히 그녀가 공연 내내 무대 위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오른 데 대해 무례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그녀는 블랙핑크 멤버로서, 솔로 가수 제니로서 어떤 애티튜드를 견지해야 할까? 두 가지 포지션은 정체성이 다른 것일까? 다르다면 뭐가 다를까?
YG와의 재계약 포기 당시 각 멤버들의 경력은 이른바 걸 그룹의 유통 기한이라는 7년이었다. 어차피 블랙핑크라는 상표권은 YG에게 있으니 그들이 블랙핑크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블랙핑크로서만큼은 YG에 적을 두어야만 했다. 주목할 점은 4명 모두 솔로로서 YG를 떠났다는 것. 이는 YG의 노선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과 소득을 더 챙기겠다는 의미이다.
전자가 더 큰지, 후자가 더 큰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팀의 소속 멤버로 움직일 때와 솔로 가수로서 행보를 펼칠 때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블랙핑크를 예로 들어 보자. 공식 출연 때 4명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게 원칙이지만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는다. 만약 한 명이 컨디션이 안 좋아 무대에서 빠졌다고 하더라도 블랙핑크라는 점은 변함없다.
그러나 로제가 '아파트'를 부를 때 브루노 마스는 빠져도 되지만 로제가 없다면 그 '아파트'는 사상누각이 된다. 즉 블랙핑크 때는 4분의 1만 책임지면 된다. 아니 YG라는 백그라운드가 있으니 사실상 그보다 더 적은 분량이 할당량이다. 그러나 1인 기획사에 소속된 제니는 오롯이 자신 혼자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 겉으로는 몰라도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이다.
그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무비 '스파이더맨'의 명대사 "힘이 있으면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이다. 그 힘은 인기, 돈, 명예, 지위, 능력 등을 말한다. 스파이더맨의 본래적 정체성인 피터 파커는 고등학생이다. 아직 모든 게 불완전하다. 게다가 부모를 잃고 삼촌 벤의 집에 의탁되어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벤이 강도에게 살해당하자 숙모와 단둘이 사는 형편이 된다.
사실상 자신을 추스르고 미망인이 된 숙모를 챙겨 주어야 하는 데 정신없을 그는 그런 형편에도 불구하고 도시 사람들을 돕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 맹활약을 펼친다. 정부나 민간 기업으로부터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니는 다르다. 스파이더맨이 악당으로부터 시민들의 신변과 재산을 보호해 준다면 제니는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 그리고 흥만 주면 된다.
사실 예술, 예능, 여흥, 대중문화 등은 인간의 생존과 그리 밀접하지 않다. 냉정히 말하자면 여유로울 때 더욱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인 동시에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위로가 되어 주는 위안거리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예인이 우상이 되어 가는 배경이다. 대중은 제니에게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재미, 즐거움, 감동을 주는 대중문화를 바랄 따름이다.
블랙핑크 시절에는 음반 작업 등의 콘텐츠 제작 과정, 그리고 무대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뒤 회사가 최종 결정한 방침대로 춤추고, 말하고, 노래 부르면 그만이었다. 잘생긴 연예인과 연애를 하거나 SNS에 속옷 차림을 공개한다는 건 그저 개인의 몫이었고, 그에 따른 후폭풍, 이미지의 생성이나 변화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만 지면 그뿐이었다. 모든 것은 회사 책임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단독으로 움직이는 중소기업이 되었고, 그 기업의 오너가 된 다음에는 다르다. 자신의 값어치가 22만 원이라고 책정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첫 솔로 앨범을 낸 후 자신의 나라에서 여는 첫 단독 콘서트에 10분이나 지각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프로페셔널이 보여 주어야 할 기본 준거틀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탈 행위이다.
홍석천은 MBC에서 퇴사한 김대호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예능용일 수도, 진심일 수도 있지만 용도를 떠나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 집을 떠나면 고생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독립해야 한다. 문제는 책임감이다. 호랑이는 대표적인 독립 동물이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의 표상이다. 이기적이지만 한 개체는 다른 개체들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게 인간이다.
호랑이도 독립 전까지는 어미의 품에서 먹이를 얻어먹고 안전을 보장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독립하면 형제자매도, 심지어 아비까지도 먹이를 놓고 다투는 경쟁자가 될 수 있다. 이 치열한 각자도생의 생태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랑이의 경우 생존 능력 하나이겠지만 사람은 법, 도덕, 질서, 협력, 예의 등 여러 가지이다. 연예인은 팬에 대한 도리가 제일 크다.
[유진모 칼럼/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