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고 오요안나 가해 의혹 '김가영 일병 지키기'
- 입력 2025. 05.22. 11:09:39
- [유진모 칼럼] MBC가 고 오요안나 기상 캐스터와 관련해 앞뒤가 안 맞는 행보를 보여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오요안나는 2021년 5월 비정규직 기상 캐스터로 MBC에 입사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사망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후 생전에 MBC에서 다른 기상 캐스터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유서가 공개되어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기 시작했다.
고 오요안나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파문이 일자 드디어 고용노동부는 MBC에 대해 3개월 동안 특별 근로 감독을 했고 그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을 인정하고 총 6건의 노동법 위반 사항을 적발해 1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다만 고인이 법적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MBC는 지난 19일 "이날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 감독 결과를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조직 문화 개선, 노동 관계법 준수를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올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사과하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약속했다.
또 "고(故) 오요안나에 대한 괴롭힘 행위가 있었다는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바로 수행하겠다. 관련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확실히 '조치'의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조치 약속은 말뿐이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상 캐스터 역할에 변화가 없다. 21일 '뉴스 투데이' 날씨 코너에 변함없이 등장했다. 이에 대해 MBC는 스포츠투데이에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일 스포츠투데이에 따르면 MBC 관계자는 "유족들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특정 기상 캐스터에게 '너는 가해자니까 하차하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자진 하차를 유도하는 것조차도 회사 차원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더 논의를 해 봐야 할 것 같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아직 고용노동부로부터 공식적인 특별 근로 감독 결과 공문은 받지 못했다. 보도 자료는 기사가 먼저 나가는 바람에 급하게 준비한 것으로 향후 정식 공문이 도착하면 내용을 자세히 검토한 뒤 합당한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기상 캐스터는 정식 직원인 아나운서와 달리 프리랜서 신분의 비정규직이다. KBS, MBC, SBS 등의 지상파 방송사는 정규 프로그램의 MC나 앵커를 맡은 아나운서나 기자를 윗선의 결정에 의해 시청자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하루아침에 바꾸기 일쑤였다.
하물며 비정규직 기상 캐스터이다. 저녁 뉴스의 메인 앵커도 아닌, 일기 예보만 전달하는 '단역'이다. 김가영의 최종 보스가 보도국장인지, 교양국 CP인지는 모르겠지만 담당 PD의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하차가 결정될 수 잇는 게 방송사의 구조이다.
고인이 그 젊은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은 밀폐된 조직 내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 조직 문화 개선이 시급한 게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PD, CP, 그리고 최상위 간부들은 사내에서 혹은 담당 프로그램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 일개 기상 캐스터 한 명을 지키겠다고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무릅쓰는 게 왠지 떳떳해 보이지 않는 배경이다.
만약 뉴스의 메인 앵커나, 혹은 SBS 금토 드라마 '귀궁'의 주인공 중 한 명이 구설수에 휘말려 시청자들로부터 하차 요구가 빗발친다고 가정하자. 먼저 '귀궁'은 이미 촬영을 끝마친 데다 설령 현재 촬영 중이라고 하더라도 10%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므로 이탈시키기 쉽지 않다.
앵커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한 뒤 본인에게 확인 절차를 거쳐 사실일 경우 먼저 시청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린 다음의 반응을 보아 계속 그 자리를 지키게 하든지, 하차시키든지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만약 MBC가 기상 캐스터들도 정규직 아나운서나 기자만큼 아꼈다면 정규직으로 발령 냈어야 당연하다.
만약 그렇다면 정규직 오요안나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 세상과 하직한 데 대한 진상 규명과 더불어 필벌의 후속 조치를 취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힘써야 했다.
김가영이 고인에 대한 가해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MBC는 김가영이 가해 당사자인지 사실 여부를 가리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한편 진실이 가려질 때까지 그녀를 잠시 쉬게 하는 게 시청자에 대한 기초적인 예의범절이 아니었을까?
유서에 의하면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가해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에 나오는 게 과연 시청자들에게 어떤 믿음을 줄까? 그녀가 '오늘 날씨는 아주 맑을 것으로 전망됩니다.'라며 밝게 웃는다면 그게 얼마나 믿음을 줄 것인가?
MBC는 지난 윤석열 정권에 맞서 정정당당한 보도 행태를 보임으로써 보수 우파들에게는 눈엣가시로 낙인찍혔지만 다수의 국민들에게는 그나마 정론직필의 방송사다운 믿음을 주었다. 고 오요안나 사건은 그런 당당한 MBC의 의외의 치명적인 맹점이 아닐까?
[유진모 칼럼/ 사진=MBC, 고 오요안나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