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비양도 편, 돌문어·꽃멸치→무늬오징어물회·성게파래국
입력 2025. 07.03. 19:39:04

'한국인의 밥상'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제주의 깊은 내력을 품은 섬 속의 섬 비양도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3일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섬 속의 섬, 비양도' 편이 방송된다.

5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작은 섬, 한때 비양도는 황금어장으로 불릴 만큼 풍요로운 섬이었다. 열일곱에 배를 타기 시작해 고기 잡는 실력은 '비양도 1등'이라는 차원석(67) 선장은 여전히 바다를 누비고 있다. 문어단지를 끌어 올리면 줄줄이 문어가 올라오는데 쫄깃쫄깃한 식감이 문어 중 최고로 친다는 돌문어다. 그리고 문어 못지않게 한여름 비양도 바다를 은빛으로 물들이는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꽃멸치다.

미리 바다에 내려둔 그물을 걷기 전, 해녀가 물속에서 그물을 정리해 주는 방식은 비양도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인데. 어두운 바닷속 작은 불빛에 의지해 그물 사이를 누벼야 하는 일이라 긴장의 연속이다. 선장과 해녀의 호흡이 척척 맞는 것이 관건. 차원석 선장의 아내 문복순(65) 씨가 노련한 솜씨로 그물을 정리한다. 정리된 그물을 걷어 올리면 터는 건 부부의 딸 차은경(34) 씨와 든든한 어촌계의 일꾼 고순애(58) 씨의 차례! 공부 가르친다고 섬 밖으로 내보낸 차은경 씨는 기어코 섬으로 돌아와 비양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꽃멸치'라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청어과에 속하는 '샛줄멸'. 꽃멸치를 얻기까지 고된 일이지만 비양도 사람들의 밥상에 꽃멸치는 없어선 안 되는 생선이라는데 멸치보다 크고 기름진 맛에 꽃멸치튀김부터 배추를 잔뜩 넣고 끓여낸 꽃멸치배춧국, 미리 담가둔 젓갈에 갖은양념을 넣은 밥도둑 꽃멸치젓 등 안 해 먹는 게 없을 정도. 닭과 문어, 인삼까지 귀한 재료를 잔뜩 넣어 푹 고아 낸 여름철 보양식 통문어인삼고음과 톳과 오디를 넣어 조물조물 무쳐낸 톳오디무침까지 비양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여름 바다가 차려낸 밥상을 만나본다.

비양도는 1960년대 본섬과 비양도를 연결하는 해저송수관이 생겼음에도 물이 부족해 돌담을 쌓아 빗물을 저장하는 물 저장고를 집마다 두고 밤잠을 설쳐가며 빗물을 받아 먹고 씻으며 살아야 했다. 물 저장고를 두지 않은 집은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물 동냥하기 일쑤. 화산박물관이라고 불리는 비양도의 아름다운 풍경 속 섬사람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비양도 건너편, 한림읍 금능리. 비가 오나 눈 이오나 매일 바다로 나가 '원담'을 바라보는 이방익(94) 어르신. 젊어서 비양도로 헤엄쳐서 다녔던 청년은 군대 제대 후 무너진 '원담'을 다시 쌓고, 70여 넘게 '원담'을 지키고 살았다. 항상 자식보다 '원담'을 먼저 챙기곤 했던 아버지에게 섭섭하기도 했다는 이상수(64) 씨.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지독한 인연 때문인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원담'을 지키고 있다. 해안가에 돌을 쌓아 만든 '원담'은 밀물에 들어온 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잡는 일종의 돌그물이자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원이 무너지지 않도록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관리하던 곳이었다. 제주 전역에 260여 개가 있던 '원담'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밀물이 되면 꽃멸치떼가 밀려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멜 뜨러 모여들곤 했다는데. 양념에 조린 꽃멸치조림, 구수한 된장을 넣은 제주도식 무늬오징어물회, 신발 밑창을 닮아 '신착'으로 불리는 박대회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거센 파도와 바람에 무너져도 다시 쌓아 올린 돌담처럼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꿋꿋이 이어지고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 속이 훤히 들일 만큼 투명한 비양도 바닷속에는 성게, 해삼, 소라 같은 해산물이 지천이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던 이 섬에서, 바다는 언제든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은행' 같은 존재였다. 고무 옷 하나 없이 먹고살기 위해서 찬물에 몸을 던져야 했던 고된 물질이었지만, 그래도 바다가 있어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비양도에서 나고 자라 어릴 때부터 바다에서 헤엄치고 놀았다는 박영실(68), 박영미(53) 자매.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해녀가 되었다. 열다섯에 물질을 시작해 여든셋이 될 때까지, 다섯 남매를 홀로 키우며 매일 같이 바다로 나섰다는 김영자(91) 어르신. 하도 고생한 터라 딸들이 해녀가 되는 걸 말렸지만, 두 딸은 어머니가 평생 누빈 비양도 바다를 누비고 있다. 밭매랴, 바다에 물질하러 나가랴 바빴던 어머니가 밥 대신 밀가루에 가사리를 넣고 버무려 쪄낸 가사리범벅, 질리지도 않고 식탁에 올랐던 성게파래국과 파래전은 푸짐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밥상이었다.

'한국인의 밥상'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40분에 방송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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