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독시' 이민호, 요동치는 고요 속에서 그려낸 얼굴[인터뷰]
- 입력 2025. 07.23. 07:00:00
-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배우 이민호가 영화로 돌아왔다. 그동안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해온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좀 더 깊고 고요한 얼굴을 꺼내 보인다. 연기를 넘어 인간 이민호로서의 내면까지 성찰하는 그는, 자신을 “초기화된 상태”라고 표현하며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이민호
그의 스크린 컴백은 약 10년 만이다. 그에게 영화는 일부러 미뤄왔던 영역이었다.
“20대 때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제게 정서적 해소를 위한 곳이었어요. 깊은 이야기를 접하고 싶을 때 찾았고요. 그 감정선을 전달하는 배우로서는 좀 더 삶의 무게를 아는 나이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30대 이후,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요.”
이민호는 극 중 홀로 회귀를 반복하는 세계관 최강자인 유중혁 역을 연기한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강렬한 존재감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이다. 이민호는 “이 캐릭터의 가장 큰 과제는 ‘서사 없이 서사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등장만으로 주인공 같다’는 인상이 싫었어요. 현실적으로도 유중혁은 이야기 중심에서 많이 생략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설득력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감독님께도 끊임없이 ‘이 인물은 처절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는 연기할 때 감정의 결과가 아닌 ‘이 인물이 왜 이렇게 행동할까’를 끝없이 고민했다. 액션 신 하나도 대사 없이 유중혁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중혁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제게는 ‘고요 속의 고요가 요동친다’는 문장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에요.”
이민호는 유중혁 캐릭터를 두고 “멋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인물”이라 강조했다.
“사실 ‘멋있다’는 이미지가 너무 많아서 부담됐어요. 진짜 멋있음은 캐릭터가 삶을 살아가는 자세, 그 깊이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유중혁은 삶에 찌들었고, 그 자체로 세계관을 대변하는 인물이에요. 그런 면에서 설득력이 중요했어요.”
'전지적 독자 시점'은 다음 시즌에 대해 열려있는 상황이다. 이민호 역시 “시작부터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이번엔 무드와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다음 시즌에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을 연출한 감독에 대해서도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그는 “'MZ같은 느낌이었다. 준비한 것에 충실하고 깔끔한 분”이라며 “뛰어다니지 않을 줄 알았는데 늘 뛰어다니셨다”이라고 전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안효섭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봤던 눈빛과 같았다. 선배로서 안심했다. '10년째 그대로구나' 싶더라. 현장에서 만났을 때 '김독자' 그 자체로 보였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다시 영화로 돌아온 그는 이번 선택이 자신의 결정이 ‘맞았다’고 평가하진 않는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를 기준 삼아 결정하지 않아요. 반응이 와야, ‘이게 이 정도였구나’라고 느껴요. 늘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제 삶은 ‘초기화’ 중이에요.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비우고 채우는 중이죠.”
그는 “스스로 만족해본 적은 없다”고 고백했다. “사랑을 받으면 ‘운 좋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담담히 말하면서도, 그 진심이 그를 오늘의 이민호로 만든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민호는 '전독시'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콘텐츠 산업 전반에 대한 관심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이민호는 “콘텐츠 제작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고 밝히며, 단순한 연기자가 아닌 창작자로서의 포부도 내비쳤다.
“AI 시대에 인간의 감정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게 해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연출도 해보고 싶고요. 글을 조금 써보기도 했는데, 글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웃음)”
20대 시절의 이민호는 명실상부한 ‘한류스타’였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후 쏟아진 관심과 주목은, 그에게 화려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안겼다.
“20대는 책임감이 기반이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돌발 행동을 줄이려고 했죠. 대본을 받으면 감정을 배제하려 애썼어요.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제는 ‘자유’가 중요해요. 물론 무책임한 자유가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서의 자유요.”
이런 변화는 애플TV+ 시리즈 '파친코'를 통해 더 확실해졌다. 그는 “당시의 나로는 앞으로 10년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을 거란 위기감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파친코'는 저에게 큰 전환점이었어요. 작품도 환경도, 저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느끼게 해줬죠. 지금은 다시 ‘경험의 시간’이에요. 제가 저를 채워야 앞으로의 10년도 건강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아직도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축구선수’ 꿈을 꿨던 초등학생 이후로, 구체적인 꿈을 가진 적은 없다”고 했다.
“단 하나 바람이 있다면, 10년 후에도 ‘저 사람 괜찮다’는 말 듣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그런 평가 받는다면, 배우로서도 좋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셀럽미디어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