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늬, ‘애마’와 희란에 매료됐던 이유 [인터뷰]
- 입력 2025. 08.27. 10: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목소리부터 얼굴, 모든 걸 갈아 끼웠다. 1980년대 최고의 톱배우 정희란 캐릭터와 물아일체가 됐다. 화려한 의상부터 당당한 표정,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까지 화란 그 자체로 분한 배우 이하늬의 이야기다.
'애마' 이하늬 인터뷰
이하늬는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 공개를 앞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상 작품 공개 전, 대면 인터뷰가 진행되지만 그는 당시 둘째 출산을 앞둔 상황이라 화상 인터뷰 취재진과 만남을 대신했다.
“80년대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보니 그때 실제 서울에서 썼던 ‘서울사투리’라는 게 있더라고요. 저는 사실 서울사투리를 어렸을 때 들었을 수 있지만 기억이 나는 세대는 아니라 어떻게 잘 녹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독님과 나눴어요. 특히 희란이 공식석상에서 여배우 일 때와 매니저에게 원래 톤으로 돌아왔을 때는 현실감 있는 말투잖아요. 80년대 톤 자체가 인터뷰나 이런 걸 봤을 때 약간 과장된 느낌이 드었어요. 비음을 쓰면서 그 당시 서울사투리가 재밌는 코드라 공식석상에서 여배우로 등장했을 땐 어투를 잘 버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준비했죠.”
희란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스타로, ‘더 이상의 노출 연기를 하지 않겠다’ 선언하며 ‘애마부인’의 주연 캐스팅을 거절하는 인물로 단단한 우아함이 뿜어져 나오는 매력을 갖추고 있다.
“배우로서 사실 한 작품을 맡으면 프리기간부터 애프터까지 1~2년, 많게는 3년이 소요돼요. 작품과 호흡하며 인물로 투영해 살아야 하니까 어떤 부분에 있어서 맞닿아 있죠. 너무 연기를 하고 싶다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 ‘애마’의 경우, 너무 반가운 작품이었죠. 25년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여자로서, 배우로서 반가운 작품이었어요. ‘우리가 드디어 이런 이야기를 무해하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어, 그런 세상이 되었네’라는 게 반가웠는데 시청자들이 어떻게 보실지 기대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이하늬는 영화 ‘유령’ 이후 이해영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을 함께하게 됐다. 한 차례 호흡을 맞췄기에 두 번째 ‘애마’ 작업은 어땠을까.
“감독님에게 원래 장인이었는데 ‘애마’를 통해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했어요. 하하. ‘유령’ 때도 대단한 분이셨죠. ‘애마’ 때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시더라고요. 시리즈물에서 그런 디테일을 가지고 에너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견제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너무나 많은 양의 신을 소화해야 하고, 그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중압감이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해내시더라고요. 어떤 부분에서는 제 몸을 던져서라도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이 드는 감독님이셨죠. 현타가 올 때도 많았어요. 에리카가 문고리를 잡고 혼자 느껴야 하는 장면에선 눈물을 흘리며 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감독님의 디렉션이 ‘견뎌, 견뎌야지 끝나’라고 하셔서 막 웃으면서 찍었던 기억이 나요. 너무 힘들다고 말씀드렸을 때 ‘견뎌라, 너의 몫이다’라고 말씀 하신 기억이 나요. 매신마다 불편할 수 있고, 어려울 수 있는 그런 부분들도 감독님과 작업하면 되게 희한하게 합인지 매직 같은 순간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하게 되더라고요. 감독님과 했어도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자리를 꿰차기 위해 나타난 신예 주애(방효린)를 못마땅해 하는 희란과 대선배 희란을 동경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주애. 날 선 대립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는 시대가 강요한 불합리와 억압을 함께 겪으며 두 사람은 끈끈한 연대로 나아간다. 이처럼 ‘애마’는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연대를 그리고 있다. 억압과 권력, 시스템에 맞서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두 여성의 서사와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애마’가 굉장히 화려한 80년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 어떤 식으로든 폭력과 눌려 있는 부분에 대해 투쟁의 역사 한 조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비단 7080년대 적극적인 투쟁이었겠지만 지금도 사실 부당함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해요. 주애의 대사처럼 ‘엿 같은 건 여전히 엿 같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사실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개선되고 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어떤 투쟁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관통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80년대, 25년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와 닿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분들도 그런 부분에서 함께 공감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해영 감독은 ‘애마’를 단순히 ‘애마부인’이라고 한정 짓지 않고, 수많은 오해와 편견을 견디며 살아낸 여성들의 상징으로 넓게 해석했다. 이에 ‘애마’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부당한 일을 많이 겪은 시절, 끝물에 살짝 경험한 적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감독님이 배우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되게 놀랍기도 했죠. 그때는 너무 상처가 됐어요. 지금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대가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떤 식의 폭력은 계속되고 반복되면 굳은살이 생기는 것처럼 아프지만 하찮은 일이 될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애마’가 반갑기도 했어요. 시대가 변해서 이런 일을 무해하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코미디로 승화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 그런 게 굉장히 반갑게 느껴졌죠. 이제는 너무 부당한 걸 참지 않아서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부분에서 부당하다고 얘기를 안 해도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애마’라는 작품이 필요한 것 같아요. 투쟁의 역사는 인간이 존속되면 계속 되어질 것 같아요. ‘애마’는 80년대 이야기를 하지만 시대를 관통하고 있죠.”
‘애마’는 1980년을 풍미한 화제작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둘러싼 비하인드와 당시 충무로 영화판의 치열한 경쟁과 욕망, 그리고 시대가 드러낸 야만성과 모순을 그려낸다. 에로영화가 대세가 되던 시대에 강력한 심의 규제 아래 표현의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아이러니한 시절을 현재의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낸 것. 희란은 그 시대의 어떤 상징일까.
“희란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에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침묵했던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노라, 투쟁을 선언하고 변모하게 되는 캐릭터죠. 그래서 저는 희란이 장하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 시대마다 투쟁하는 인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침묵하지 않는 것,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부당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희란에게 매료됐던 부분이죠. 현장, 제가 있는 곳에 부당함이 왜 없겠어요. 모든 걸 다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선 누군가는 계속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도전한 게 역사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희란의 캐릭터를 많이 애정했죠.”
야만의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희란과 주애. 세상을 향해 한 방 날리려는 이들의 통쾌한 연대를 그리는 ‘애마’ 작품이 이하늬는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원할까.
“클릭 전까진 성애 영화인가? 생각이 드실 거예요. 3~6회를 보시면 뭔가 투쟁이란 말이 거창할 수 있지만 내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고, 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이길 바라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