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 마스크' 이지수, 무대에서 찾은 행복 [인터뷰]
- 입력 2025. 09.05. 19:00:31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배우 이지수가 올해 또 한 번 창작 초연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도 꿈을 놓지 않는 레오니로 분한 그는 자신만의 긍정 마인드로 무대를 채워나가고 있다.
이지수
지난달 6일 개막한 뮤지컬 '르 마스크'는 실존했던 '초상가면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소아마비를 앓으면서도 조각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레오니'와 전쟁으로 인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삶의 희망을 잃은 '프레데릭'의 만남을 그린다. 레오니가 초상가면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에서 프레데릭의 가면을 만들면서 두 인물이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히 이지수는 '르 마스크' 리딩 공연부터 참여했던 바, 이번 본 공연 무대에도 올라 더욱 많은 관심이 모였다. 이지수는 처음 작품을 받았던 때를 회상하며 "작곡가분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제가 콘서트를 할 때에도 콘서트 음악 감독님으로 계속 일을 해주셔서 인연이 됐었다. 그래서 이 작품과 관련해 제게 연락을 주셨더라"고 말했다.
이어 "먼저 음악을 미리 받아봤는데 넘버들이 다 너무 좋았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역할은 처음이라 걱정도 됐지만 배우로서 또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류 계기를 밝혔다.
이지수가 연기하는 레오니는 장애가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의 색안경 속에 살아가지만,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으면서도 가면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이지수는 자신과 닮아있는 레오니의 긍정 마인드로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평소에 어떤 작품을 만나도 저로부터 캐릭터를 많이 가져가는 편이다. 레오니에게 투영한 건 저의 타고난 긍정 마인드였다. 물론 지금과 시대가 다르지만, 제가 만약 장애가 있고 대우를 그렇게 받는다고 생각해도 저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작품 안의 레오니도 그렇게 만들어 나갔다. 프레데릭이 깊은 절망 속에 싸여있으니 둘 다 너무 어두우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에게 희망을 주고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인물이라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의 레오니는 밝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레오니는 칠전팔기와 같은 인내력을 갖고 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장애'와 '여성'이라는 두 키워드를 무시할 수 없다. 이지수는 극이 시작하는 '초상가면 스튜디오' 배경 이전에 레오니가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를 돌아보며 그의 깊은 내면을 찾아나갔다.
"작품을 만들면서 다 같이 레오니의 전사에 대해 생각해 봤었다. 시대적인 배경을 보면 '장애', '여성' 두 조건이 정말 최하위층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특히 장애는 당시에 질병처럼 느낄 정도였다는 배경도 봤다. 그래서 과연 레오니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당연히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았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게다가 몸이 불편하니까 제한적인 부분도 많았을 거다. 그래서 레오니의 긍정이 과연 타고난 성격일지, 아니면 꾹꾹 감추고 있다가 언젠가는 터질 성격인지도 짚어보며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그는 레오니의 전사부터 짚어나가며 그 역시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가면이 한 번 벗겨지는 순간은 바로 '절름발이 레오니 rep.'과 '편하게 말해봐요 rep.' 부분이었다.
"저는 '편하게 말해봐요' 넘버를 정말 좋아한다. 처음에 나오는 '편하게 말해봐요'에서는 레오니가 프레데릭을 움직인다. 누군가를 조금씩 설득하고, 그 설득이 상대에게 통한다. 누군가를 한 발짝이라도 걸어올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걸 느끼는 부분이라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리프라이즈에서는 오히려 역으로 '당신은 어떤가요?', '무슨 생각하나요?'라면서 프레데릭이 질문을 건넨다. 레오니는 이렇게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질문들을 이전에 못 받아봤을 것 같았다. 심지어 자신이 썼던 방법 그대로 상대방이 힘을 주니까 그 부분에서 항상 기분이 정말 뿌듯하면서도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든다. 레오니가 평소에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는 부분이 '절름발이 레오니 rep.'부터 '편하게 말해봐요 rep.'까지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레오니의 속이 얼마나 혼자 곪고 있었는지 잘 보여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르 마스크'는 레오니와 프레데릭이라는 남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성적인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다. 이지수는 "오히려 러브라인이 없어서 서로에게 진짜 인간 대 인간으로 위로를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딩 때부터 두 사람이 안 이어지는 부분을 더 좋게 느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심지어 레오니는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잡화점 직원 '페르낭'과도 이어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이지수는 "어쩌면 페르낭마저도 제가 원하지 않는 배려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가 처음에 무거운 짐을 들려고 할 때 페르낭이 '네가 이걸 어떻게 들어, 내가 할게"라면서 짐을 대신 들어준다. 하지만 결국 레오니는 그 짐을 충분히 들 수 있고,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이 들고 싶었을 거다. 근데 페르낭은 그걸 미리 배려하는 사람이다. 내가 만약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미리 하는 배려 자체도 불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오니도 그 마음을 끝까지 못 받아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고 밝혔다.
'르 마스크'는 상처를 입은 인물들이 서로를 보듬어주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래도 괜찮아'라는 위로를 전해준다. 이를 전달하는 배우인 이지수 역시 공연을 통해 많은 위로와 여운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이 작품에서 하고 싶은 말이 '내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 많이 담겨 있다. 무너지더라도, 해내지 못하더라도,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아픔은 사실 누구나 다양한 형태로 갖고 있는 아픔들이다. 이 작품은 그 아픔도 다 괜찮고,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면 오늘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저도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나도 이제야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한다. 사실 저도 평소에 마음이 급해서 레오니처럼 '선행동 후생각'을 하는 편이다. 뭔가를 해내고 이루어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공연마다 그 노래를 부르면 지금 해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누군가에게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레오니가 성장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올 한 해 이지수는 뮤지컬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와 '르 마스크'를 통해 관객들에게 쉼 없이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닮아 있는 두 작품에 대해 이지수는 "'소란스러운 서림에서'의 양희와 '르 마스크'의 레오니를 생각해보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해야 되는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둘 다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려움도, 무서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둘 다 내가 희생해야 될 것과 감수해야 될 것을 아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거야'라는 마인드가 있다는 게 비슷한 캐릭터"라고 비교했다.
심지어 두 작품 모두 올해 처음 무대에 올랐던 '창작 초연'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한 해 동안 창작 초연 작품에만 임했던 이지수는 "사실 저는 원래 라이센스 작품에 조금 더 익숙한 편이었는데, 올해는 신기하게도 다 창작 초연 작품만 했더라. 공연 1주 차에는 반응도 전혀 예상할 수 없어서 어떻게 보실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정말 컸고 쉽지만은 않았다"면서도 "만들어냈을 때의 뿌듯함이 정말 크다. 제가 이 캐릭터를 처음 보여주는 거니까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어가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돌아봤다.
지난 2012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코제트 역으로 데뷔한 이지수는 어느덧 13년 차 배우로 성장했다. 그동안 그는 '스위니 토드', '블랙메리포핀스', '이토록 보통의', '썸씽 로튼', '사의 찬미', '레베카', '젠틀맨스 가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쉴 새 없이 활약하며 공연계의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그는 자신의 필모에 대해 "운이 좋았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며 "그때그때 제게 잘 맞는 작품들이 너무 잘 들어왔고, 처음에는 못할 것 같았던 작품도 막상 임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운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정말 크게 공감된다.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를 만나느냐에 따라 길이 다르게 정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오래도록 무대 위에 오르고 있었던 것은 뮤지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지수는 "저는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를 너무 사랑한다. 노래하는 것도, 무대 위에 서있는 것도 너무 좋다"며 "최근에 생각해보니 저는 삶에서 에너지를 얻고 무대에 서는 게 아니더라. 저는 무대 위에서 관객분들로부터 정말 에너지를 많이 받고, 그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객석에서 열심히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지수는 "편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끔은 정말 길게 8장까지도 써주시는데, 저에 대한 이야기로만 빼곡히 채워주신다는 게 정말 존경스러우면서도 감사하다. 가끔은 '내가 감히 뭐라고!' 이런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웃으며 "팬 여러분 덕분에 무대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 같고, 매번 덕분이라는 생각뿐이다. 무대에 서서 객석이 안 보일 때도 나를 응원하는 마음이 기운처럼 느껴진다. 바로 앞에서 그 기운을 받을 때 정말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무대에 대한 애정만으로 오래 달려온 이지수, 그가 배우로서 가진 목표 역시 '무대에서 행복한 배우'다. 이지수는 "어렸을 때는 관객분들에게 기쁨을 주고, 저를 기억하셨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대에 서는 게 그 어떤 것보다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앞으로도 무대에 설 때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모셔널씨어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