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민이라 가능했던 '얼굴' [인터뷰]
- 입력 2025. 09.17. 17:55:54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출판사 운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배우 박정민이 '얼굴'로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았다. '1인 2역, 노개런티' 심상치 않은 키워드 속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관객들을 설득하며 존재감을 다시금 증명했다.
박정민
영화 '얼굴'(감독 연상호)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과 한 사람이 두 인물을 하는 것을 복합적으로 진행하는 게 독특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아들 역할만 제안을 주셨었는데, 다시 부랴부랴 만화를 꺼내보고 20~30분 뒤에 전화를 드렸다. 처음에는 젊은 아버지 역할이 더 좋아 보여서 거기도 캐스팅됐냐고 여쭤봤던 건데, 감독님이 그걸 간파하시고 1인 2역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을 하시더라.(웃음)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연결돼있는 인물이다. 떼어놓고는 설명이 안되는 인물들이라고 생각돼서 1인 2역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치 아프거나 막막하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고, 재미있었던 쪽에 가까웠다."
기대와 함께 들어간 만큼 박정민은 결과물에도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감독님이 정말 잘 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으로 시작한 영화인데, 제 기대보다 좋았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과 해석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팬이었던 박정민은 이번 작품에서 평소보다 더 '과장된' 연기를 해도 되겠다는 과감한 결심을 했다. 그는 "작품마다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드는 것을 늘 염두에 둔다. 너무 캐릭터적이거나 과장하는 걸 지양하는 편"이라면서도 "이번에 젊은 영규를 만들 땐 그런 생각들을 조금 접어뒀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고, 거기서 발견되는게 있으면 극대화해보기도 했다. 원작이 만화기도 하고, 결국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의 표정이지 않나. 결국 그 사람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조금 더 극대화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었다. 만화 같은 표정이 나오기도 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재미들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이처럼 원작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박정민은 영화의 특성에 맞춰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영화 속 젊은 영규를 원작보다 주변의 시선을 더 신경 쓰고 비굴한 인물로 그려냈다.
"그래야 이 사람이 더 비참해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고, 영화 자체도 입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람의 행동이 조금 더 납득되려면 더 비굴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동어반복이 돼서 지루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더 신경 쓰고, 더 잘 보이려고 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게 그 사람의 욕망이니 그걸 더 잘 보여주면 재미있을 것 같아 시도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제지하지 않으시더라. 또 주변 사람들 신경을 많이 쓰지만 그 안에서 열등감 같은 마음이 들끓는 점이 저와도 조금 맞닿아있기도 했다. 제 안에서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박정민은 현재의 임영규를 연기한 권해효와의 2인 1역 싱크도 본능적으로 맞춰갔다. 그는 "(권해효와) 사전에 의논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면서도 "제가 선배님의 말투나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최소한의 싱크를 맞춘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리고 선배님도 제가 한 것들을 보고 맞춰주신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저희 둘 다 막상 잘하고 있으면 카메라 뒤에서 맞춰볼 필요가 없다는 주의라서 따로 '이렇게 해보자'는 식의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선배님과 함께 하는 세 번째 작품이다 보니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의논을 하기보다는 서로를 계속 지켜봤었다"고 돌아봤다.
또한 영규를 연기한 두 배우 모두 시각 장애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공통분모를 찾아가기도 했다. 박정민은 "해효 선배님도 그렇게 접근을 하셨는데, 이건 시각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자체가 장애에 대해 다루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확장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디테일한 장애 연기로 인해서 다른 부분을 놓치는 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각장애 연기를 잘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은 덜했고, 오히려 연기하면서 앞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끼리는 뒤통수를 본다고 표현했다. 뒤통수를 본다고 생각하면 초점이 흐려지고 인식이 잘 안되면서 청각이나 촉각이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분들의 감각을 완벽히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집중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며 "선배님도, 저도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영화가 필요로 하는 스펙트럼은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박정민의 1인 2역만큼이나 큰 화제를 모은 건 '노개런티' 출연이었다. 2억 원이라는 저예산 조건 속에서 그는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작품에 힘을 보탰고, 이는 동시에 연기에 더욱 절치부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를 찍는 방식을 보면서 '동주' 때가 많이 생각났다. 저예산 영화는 보통 카메라의 화각을 넓히지 못한다. 너무 가짜처럼 보이니 배우의 얼굴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배우들은 연기에 더 혼신의 힘을 써야 된다. 연기가 너무 어렵거나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점이 있으면 그런 것들이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굴'에서는 그런 지점들이 크게 없어서 재미있었다. 원래 저는 제 얼굴을 보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는데, 이번 영화는 모니터를 하면서 다음 테이크에 고쳐야겠다는 느낌보다 다른 걸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다. 옵션을 더 주는 리테이크를 만드는 과정들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예산에 따라 테이크가 한정적이다 보니 최대한 두 테이크 안에는 끝내야 촬영이 가능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 준비해서 가야 되고, 더 절치부심해서 가야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긴장감 있는 분위기도 재미있었다."
더불어 박정민은 이와 같은 저예산 제작이 작품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성과주의적인 지점을 돌아보며 만들었다"는 연상호 감독의 의도를 전하기 위해서 자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얼굴'은 정말 많은 해석이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다. 그 해석들이 다 납득될만해서 뭐 하나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이 영화가 말하는 것 중에서 성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를 말하면 임영규라는 개인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대변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성과를 위해서 매달렸는지를 극대화하는 인물이다. 처음에 감독님과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끌린 것도 그 부분이다. 감독님 자체도 자신이 성과주의적인 인물이라서 그런 지점을 되돌아보면서 쓴 대사와 그림이라면서 그래서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시더라. 저는 이 작품을 저예산으로 만든 가장 큰 이유도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이야기를 그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논리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고스란히 이야기를 전하고 그걸 취할 사람만 취하는 자유를 선택하기 위해선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올해 안식년을 보내겠다고 했던 박정민은 사실상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며 평소보다 더욱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얼굴' 개봉 후 오랜만에 배우로서 관객들을 마주하는 것에 대해 "너무 재미있다"며 "오랜만에 관객들을 마주하니 확실히 제가 이걸 재미있어 한다는 걸 다시 느끼고 있다"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배우, 작가, 출판사의 대표. 결국 박정민은 방식만 다를 뿐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숨겨져 있지만 충분히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싶다"며 "평소에 뉴스 기사를 스크랩하는 습관이 있는데, 언론사에서 충분히 취재하고 알리는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더라. 만약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중에서 하나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고 털어놨다.
박정민은 곧 무대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오는 12월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8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
그는 "사실 무서워서 무대는 항상 고사만 하고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건 무대에서도, 저의 선택도 멋져 보일 것 같았다.(웃음) 생각지도 못한 선택과 도전 같은 프레임이지 않나. 이 시기에 해볼법한 나만의 도전 같은 느낌이다. 물론 작품이나 출판사 등을 남들이 보면 그렇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저는 원래 도전하는 걸 안 좋아한다. 도전의 개념으로 접근한 일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스크린과 책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전해온 박정민은 이번에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배우, 작가, 출판사 대표로서 이어온 그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