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손예진은 '어쩔수가없다'[인터뷰]
- 입력 2025. 09.25. 16:58:34
-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배우 손예진이 오랜만에 '어쩔수가없다'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그는 유쾌함과 진중함이 오가는 연기력으로 7년의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 높은 몰입도를 선사했다.
손예진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미리는 분량도 없고 존재감도 크지 않다. 솔직히 내가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감독님이랑 한 번은 작업해야겠다는 마음에 출연을 결심했다. 분량은 적지만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처음 만났을 때 조연이지만 만수 이야기 속에서 미리는 현실감을 주는 중요한 인물이고, 존재감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손예진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 결국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 있는 것 같다. 끌려서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영화가 너무 좋고 잘 나와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실적이고 절제된 인물인 미리를 어떻게 존재감 있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손예진의 선택은 옳았다. 좌절한 만수에게 위로를 건네고,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미리의 밝고 강인한 면모는, 손예진 특유의 매력이 더해져 한층 풍성하게 완성됐다.
"연기자 입장에서 만수 같은 캐릭터가 너무 매력 있다. 대본을 처음 읽고 이런 캐릭터가 여자면 너무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야기가 매력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에 비해서 미리라는 인물은 어떻게 보면 조금 더 어려울 수 있다. 한정적인 공간, 집에서만 만수를 만난다. 부부싸움 외에 극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도 없고, 미리의 심정을 카메라가 밀도 있게 잡지 않는다. 이럴 때 배우로서 어떻게 캐릭터를 풍성하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있었다. 미리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는 다 각자의 색이 강하다. 그 속에서 미리는 굉장히 잔잔하다. 임팩트가 세고 강렬할 캐릭터를 표현할 때보다 절제된 미리를 연기하는 그 수위가 어려웠다"
특히 미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손예진은 그 현실적이고 담백한 톤을 살려 신선함을 더했다.
"배우는 작품의 색깔과 감독님의 의도에 따라서 색이 입혀진다. 내가 아무리 슬픈 연기를 해도 웃긴 음악을 깔면 웃겨 보인다. 감독님이 미리는 애초에 현실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 같다. 저는 대본을 보면서 미리가 표현도 많이 하고 말투도 뭔가 통통 튀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더라. 정말 일상이 묻어나오는 연기를 바라셨다. 대사 자체가 소리 지르거나 극적인 상황이 별로 없다. 근데 또 이 영화의 색깔과 너무 동떨어져도 안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했는데 감독님이 대사에 대한 디테일한 디렉팅을 주셨다"
이번 작품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는 이병헌과 현실감 넘치는 부부 연기도 극에 풍성한 재미를 더했다. 손예진은 이병헌 외에도 상상을 뛰어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또 한 번 감탄하고 모두의 팬이 됐다고 말했다.
"만수와 미리 싸움은 이보다 유치할 수 없다. 겉으로 어른인척하지만 누구나 싸울 땐 가장 유치해진다. 부부도 아이를 낳은 어른이지만, 아닌 순간도 있다. 서로 집요하게 의심하기 시작하면 아이들보다 유치해진다. 대놓고 코미디가 아닌 블랙코미디라 호흡이 중요했다. 호흡이 너무 잘맞아서 신기하단 생각을 했다. 다른 배우들은 현장에선 본 적 없고 편집할 때 잠깐씩만 마주쳤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렇게 연기하시겠지했는데 상상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주셨다. 너무 놀랐다. 특히 이성민 선배님은 웃긴데 슬픈 가장으로서 더 이상 갈 곳 없는 모습을 저렇게 표현하시는구나 감탄했다. 모두의 팬이 됐다"
박찬욱 감독에 대해선 다른 감독들과 달리 고요하고 항상 차분한 톤을 유지하는 차가운 관찰자 시점인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배우마다 연기 스타일이 다르듯 감독님도 작업 스타일이 다 다르다. 박 감독님 같은 경우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고 감정의 업앤다운 없이 고요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시고 차분하게 디렉팅을 주신다. 약간 냉소적으로 캐릭터를 바라보신다. 감독님 작품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
그간 수 많은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했던 손예진이지만 실제 엄마가 된 후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굳이 무언가 하려 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미리 입장에서는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미리가 만수를 이 지경까지 몰아간 것이 아닌가라는 미리로서의 죄책감이 있더라. 미리는 엄마로서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면 혼내는게 맞다. 하지만 그 잘못을 덮는 데 동조한다. 모성이라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내 자식의 어떤 허물을 감싸기 위해 이보다 더한 일도 하는 게 엄마구나, 미리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만수는 합리적이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공감받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배우로서, 엄마로서 또 한 번의 변화의 시기를 지난 손예진은 다양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려 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 여름엔 너무 더워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못 갔다. 가을이 됐으니 이제 놀이터에 많이 데리고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웃음) 나이가 들수록 계절의 변화가 더 느껴지는 것 같다. 여름이 지나 시원한 바람이 불고 또 겨울이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 연기 인생에서도 그렇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또 다른 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변화의 시기라는 생각도 들고 이제 작품활동도 활발히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열심히 달려야죠"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