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의 거대한 패러독스[인터뷰]
입력 2025. 09.26. 13:36:31

박찬욱 감독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박찬욱 감독이 무려 17년간 준비한 '어쩔수가없다'가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스토리로 관객들과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집필한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박 감독이 17년 전부터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원작과 달리 만수의 만행을 가족들이 알게 되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살인이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가정이 붕괴하는 아이러니를 담고자 했다.

"원작과는 다르게 가족이 만수의 만행을 아들이 먼저 보고 아내도 알게 된다. 만수는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한 연쇄 살인이었지만, 그 행동 때문에 가정이 붕괴하는 거대한 패러독스다. 가정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살인은 정당화할 수 없다. 이런 도덕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한편 만수는 만수대로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고 관객이 혼란스럽게 영화를 보기 바랐다"


박 감독은 만수를 통해 가부장제의 민낯을 드러내고자 했다. 극단적인 선택지에 직면하는 만수에 대해 동정이나 응원이 아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촬영 방식은 관객들이 이야기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여기에 박 감독 특유의 위트가 더해져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낸다.

"처음부터 블랙코미디로 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원작을 읽을 때 웃길 가능성이 보인다는 생각은 들었다. 세 명의 공동 각본가를 거쳤는데 그들에게도 가장 먼저 했던 말이다. 이병헌 배우도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웃겨도 되냐'라고 하더라. 본인이 읽으면서 웃겼는데 엉뚱하게 읽었나 하는 걱정이 됐나 보더라. 정확하게 읽은 거다. 웃길수록 좋다고 했다. 제작 과정에서 조금씩 늘어났다. 사회 시스템 속에서 망가지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까 찰리 채플린 영화 '모던타임즈'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이병헌 배우가 그런 걸 참 잘한다"

동시에 이러한 블랙코미디가 자칫 잘못해서 냉소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했다. "슬픈 이야기지만 정말 슬픈 분위기로만 만들면 재미없고 이렇게 해야 더 슬프다고 생각했다.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웃겨도 되냐? 비판한다면 단선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총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선 유머도 필요하다. 유머는 연민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지 자칫 잘못해서 냉소주의로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영화 말미에는 인공지능(AI) 관련 이야기도 나온다. 박 감독은 이와 대비되는 아날로그적인 제지 회사라는 설정은 그대로 유지했다.

"원작에서 벗어나볼까 생각도 했다. 제지 공장 촬영 허가 받기가 쉽지 않다. 이것저것 생각해봤는데 이것만 한 걸 못 찾았다. 종이라는 건 우리 생활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한 번도 생각 안해봤다. 그들의 세계는 대단히 특별한 전문적인 세계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동시에 종이는 하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것저것 고려했을 때 종이 만한 게 없더라"


박 감독에게 원작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여러 차례 제작 과정이 무산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 기간 전체가 창작의 고통이었다.

"원작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는 없다.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편이다. TV 뉴스를 보고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오리지널 각본을 쓸 때나 원작 소설을 가지고 각색할 때나 다 비슷한 태도로 임한다. 일단 원작을 꼼꼼히 읽은 다음에 잊어버린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든지, 뉴스 기사에서 읽은 이야기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모든 장소를 직접 다니며 정하느라 오래 걸렸다. 무수한 제조 공장과 주택을 다 들여다보고 방문했다. 스토리보드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었다. 그랬는데 무산되고 또 무산되면서 십몇 년을 보낸 셈이니까 그 기간 전체가 창작의 고통이었다"

그 결과 '어쩔수가없다'는 63회 뉴욕영화제에 공식 초청됐으며, 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국제 관객상을 받았다. 영화에서처럼 종이 만드는 일이 누군가의 인생 전부이듯, 박 감독에게도 영화를 만드는 일은 삶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수나 범모처럼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든 것으로 삼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는 하고 있다. 저 자신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반성도 되고 영화를 못 만들면 나는 죽은 목숨인가, 그러면 안 된다. 사진 작업도 하고 있긴 하지만 한 사람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요소로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영화인들 대부분, 영화 작업이라는 게 삶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조금씩 그 비중을 줄여 가려 한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현명하게 살고 싶다"

[셀럽미디어 신아람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