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 연상호 감독의 돌파구 [인터뷰]
- 입력 2025. 09.26. 15:20:02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연상호 감독이 '얼굴'로 또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억 원이라는 소규모 제작비에도 불구, 그는 탄탄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연상호 감독
지난 11일 개봉한 '얼굴'(감독 연상호)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연상호 감독은 이와 같은 반응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개봉 이후에 예매 비율을 보니 현장 예매가 많더라. 현장에서 예매한다는 점은 입소문이 난다는 방증이 되지 않겠나"라며 "이전에는 큰 영화들을 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공격적이기도 하고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야기가 천천히 계속 퍼져나가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영화는 2억 원의 저예산 제작비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연상호 감독은 2억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13회차 만에 '얼굴' 촬영을 마쳤다. 독립영화 한 편 당 평균 제작비가 3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파격적인 제작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대본 형태로 먼저 작업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대본을 쓸 때 뿌듯했다. 그리고 그 대본을 가지고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했는데 거절이 됐었다. 그래서 영상화가 힘들겠다 생각해서 그래픽 노블의 형식으로 먼저 작업하게 됐고, 그 이후로도 몇 번 영상화 시도를 했는데 잘 안됐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꼭 돈이 없어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충동적으로 했지만, 시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저예산으로 '얼굴'을 영상화 시킬 수 있겠다는 결심이 들었던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일까. 연 감독은 최근 TV, 웹 등에서 다채로운 콘텐츠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보며 예산의 강박에서 벗어나게 됐다.
"저예산 제작을 결심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하던 중에 초등학교 4학년인 큰 아이가 유튜브를 정말 많이 보는 것을 발견했다. 덕분에 저도 옆에서 많이 보다보면 왜 재미있게 보는지 알겠더라. 그런데 옛날에 우리가 보던 어린이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유튜브 콘텐츠들의 예산은 더 적은 편이다. 그래서 딸이 그걸 충분히 재미있게 보는 것에서 위기감을 느꼈다. 그때 제가 이제는 영화를 웰메이드 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계기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데, 한 시간 정도 되는 콘텐츠인데도 충분히 몰입하면서 보게 되더라. 영화에 비해 예산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도 결국 재미로 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콘텐츠 생산자니까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물론 허접하거나 창피를 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창피 당할 각오를 가지고 했던 게 첫 시작이었다. 다행히 그 부분을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많이 고민해 주셔서 그런 걱정도 없어졌었다."
꽤나 파격적인 도전이었지만 연 감독은 과정에서도, 결과에서도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연 감독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중독될 것 같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것처럼 배우들이랑 스태프들이랑 회의하고 결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힘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고 돌아봤다.
보기 드문 시스템이지만 연 감독의 새로운 시도는 영화 시장에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비슷한 모양의 영화들 사이에서 뾰족한 형태를 띠는 것, 이는 문화의 확장에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큰 회사들은 영화를 기획할 때 호불호를 줄이는 쪽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호불호가 영화에서 마이너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깎아내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저는 그게 재미가 없더라. 영화라는 건 모난 구석이 있어야 던져지는 게 있고, 저렇게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모양이 비슷해진다. 영화 산업이 그런 모난 부분을 줄이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십몇 년 동안 지속돼온 것 같아 굉장히 아쉬웠다. 그래서 그런 관점이 바뀔 때가 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있다. 지금 모든 문화의 형태가 팬덤 문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문화는 뾰족한 게 없으면 안 생긴다. 비슷한 모양으로 둥글둥글하게 나오면 그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 전체적인 트렌드가 움직이는 게 학습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번 제작 시스템의 확장을 위해 '얼굴'에 좋은 성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덧붙였다. 연 감독은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아야 다른 곳에서도 해보고 싶다는 말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평가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한국 영화 시장이 다른 형태로 진화해야 할 때고, 모두가 새로운 걸 해야 된다는 의식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모델이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 정도는 확실히 줄 수 있는 형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굴'이 저예산으로도 관객의 공감을 얻었듯, 연상호 감독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연 감독의 도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위기 속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최대한 창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든 유튜브든, 사실은 생각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도 이런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는 마음으로 책을 쓰거나 다른 시도를 계속해보려고 한다. 아마도 다음 작품으로는 일본 넷플릭스와 작업할 것 같은데, 일본이 배경이고 일본 배우가 연기할 대본을 쓰는 작업을 하게 됐다. 살아오지 않은 나라를 배경으로 무언가를 쓴다는 게 물론 두렵기도 했지만, 겁내는 것보다는 해보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하게 됐다. 이 작품이 나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굉장히 궁금하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