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포커스] 대학로 초연 열풍, 기대와 불안 사이
- 입력 2025. 09.29. 17:00:00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요즘 대학로 무대는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재연이 아닌 초연 작품이 줄줄이 올라오며, 관객은 신선한 설렘과 불확실성을 함께 마주하고 있다.
최근 대학로에서는 다채로운 초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9월 대학로에는 뮤지컬 '타조소년들', '데카브리', '조선의 복서', '그레이하우스', 연극 '물의 소리' 등 5편의 초연 작품이 올랐고, 10월에도 뮤지컬 '#0528', '보더라인', '매드해터', '프라테르니테',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등 초연 작품들 다수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초연 작품은 관객에게 신선한 선택지를 넓혀주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작품의 완성도와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현장에 참여하는 배우·관계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대학로 초연, 폭발하는 이유는?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도 초연 작품의 증가를 직접적으로 체감했다. 배우 A씨는 "최근 2~3년 기준으로 대학로에 초연 극이 전보다 많아진 것 같다"며 "저 역시도 근래 초연 공연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최근 대학로에 초연 작품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사 관계자 B씨는 "관객들이 대학로를 꾸준히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콘텐츠 홍수 시대 속에서 대학로 역시 신선한 작품을 계속 선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제작사 수가 한정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제작사 수가 증가했다는 점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선택지인 제작사가 다양해지면서 초연 작품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자연스레 늘어나게 된 것.
다른 제작사의 관계자 C씨는 이와 관련해 "제작사의 수가 늘어나고,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는 구조가 점차 만들어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며 "투자처가 다양해지면서 초연 제작이 가능해졌고, 제도적 기반이 조금씩 마련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 초연 작품이 만든 신선한 바람
이와 같은 초연 작품의 증가는 공연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신호로 읽힌다. 관객에게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창작진과 배우에게는 새로운 캐릭터와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가 된다.
평소 대학로에서 많은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해당 현상을 긍정적으로 봤다. 뮤지컬 마니아 D씨는 "다양성과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며 "장기간 올라온 작품들이 현재의 시대상과 맞지 않거나 진부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초연 작품들을 자주 보는 편"이라고 얘기했다. 즉 관객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연을 통해 새로운 시대상을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관객 E씨는 "초연 작품을 통해 신인 작가 및 연출, 작곡가의 이름을 많이 만난다"며 "새로운 창작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관객들이 초연 작품의 신선함을 높이 사듯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도 이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배우 A씨는 "새로운 작품을 하면서 기존의 극들과 달리 새로운 메시지를 이 시대에 전할 수 있다는 점을 뜻깊게 생각하고 있다"며 "캐릭터를 창조해낼 때 배우 자신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투영된다고 생각한다. 제가 느끼고 공감해서 처음 만든 캐릭터로 관객분들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느낀다"고 전했다.
◆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초연의 리스크
이처럼 초연 작품의 증가는 업계 전반의 성장으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제작자·배우·관객에게 모두 불안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초연 작품은 재연 작품에 비해 완성도나 흥행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창작진에게도, 수용자에게도 '판도라의 상자'같은 존재가 되는 것.
이에 따라 제작사들은 당연하게도 초연보다 재연을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겼다. B씨는 "전략적인 측면으로 보면 제작사에겐 재연이 더 안정적"이라며 "이미 검증된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 타깃층이나 선호도 등 파악이 가능하고, 제작비 측면에서도 감소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결국 재연은 이미 검증된 길을 걷는 것이라면, 초연은 길이 없는 곳에 발자국을 내는 일과 같다.
제작사들 역시 초연 작품을 올리는 데에 더욱 많은 고민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B씨는 "대학로의 극장 대부분이 2~300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소극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작비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며 "초연은 작품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 유입을 위해 배우 캐스팅에 대한 고민도 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또한 C씨 역시 "창작 시스템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초연만 양산될 경우, 창작진·배우·제작사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초연은 투자 대비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회수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제작된 초연 작품의 준비 기간은 평균 6~8주 남짓이다. 이는 제작비와 직결된 것으로, 배우와 창작진에게는 짧게 느껴질 수 있는 기간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공연계 전반에서 제작 일정이 압축되면서 이러한 흐름이 더욱 뚜렷해졌고, 결과적으로 배우들이 체감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배우 A씨도 "배우로서 어떠한 감정을 전달하는 짧은 순간이 참 소중하다고 여겨진다"면서도 "그만큼 초연 작품에 참여할 때는 부담감도 같이 안고 간다"고 공감했다.
더불어 공연을 수용하는 관객들에게도 초연 작품은 리스크로 다가온다. 관객 E씨는 "시놉시스와 출연 배우 정도의 정보만으로 티켓을 구입하는 것은 큰 부담"이라며 "초연은 개막 후에 작성된 관객들의 후기들을 본 뒤에 관람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사라지는' 초연 속 '살아남는' 초연 되려면?
이와 같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대학로 초연 붐은 계속되고 있는 바. 결국 신선함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의 완성도와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흥행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우선시 돼야 한다. 이들에게는 리스크를 감안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초연 제작을 이어나갈 수 있는 확실한 지원 제도가 가장 필요하다.
B씨는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안정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IP 개발 지원이나 제작비 지원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사의 부담을 덜어낸다면 더 많은 양질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C씨 역시 "제작사의 미션과 비전에 맞는 창작 시스템이 먼저 구축되어야 한다"며 "창작을 후원할 수 있는 국가·지자체 지원과 기업의 투자도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초연이 단발성으로 사라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재연과 해외 진출까지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본 공연으로 올리기 전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배우 A씨가 "작품이 시작되기 전 쇼케이스를 진행하면 여러모로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일명 '리딩 공연'이라고 불리는 쇼케이스는 작품이 공연화 가능한지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리딩 쇼케이스에 관객을 동원하면 더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D씨는 "리딩 공연 후 관객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소통의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며 창작진들이 관객들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작품을 제작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결국 대학로 초연 작품은 공연 산업 전반의 성장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다. 양질의 초연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면 관객에게는 더 다양한 선택지와 신선한 경험을, 배우와 창작자에게는 의미 있는 창작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안정적인 창작 환경이 마련되면 초연의 활력과 신선함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터. 이를 위해서는 제작사와 창작자, 그리고 관객 모두가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뉴프로덕션, 쇼노트, 홍컴퍼니, 엠비제트컴퍼니 제공, 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