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복서', 두 청춘의 펀치가 남기는 울림
입력 2025. 10.04. 19:20:02

'조선의 복서'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뜨고 있는 복싱 열풍은 일제강점기에도 존재했다. 당시 민족의 자긍심이자 희망의 상징이던 복싱. '조선의 복서'를 통해 이번에는 링 위 무대에서 청춘들의 도전과 열정으로 다시 피어났다.

뮤지컬 '조선의 복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무패의 복서 '이화'와 칠전팔기 신참 복서 '요한'이 서로를 마주한 뒤 벌어지는 치열한 여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양대학교가 주관한 '2023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창작뮤지컬 멘토링 프로그램(Into the Creation!)을 통해 첫 선보였으며, 한국뮤지컬협회 주관 '2024 뮤지컬 융합 창작랩(MU:LAB) 쇼케이스'를 통해 예비 관객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조선의 복서'는 1962년 작가 '마리아'가 인기리에 연재 중인 소설 '조선의 복서'를 토대로 한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스스로를 요한의 딸이라고 밝힌 마리아는 왜곡된 요한의 삶을 바로잡기 위해 소설을 연재하지만, 경찰관 '장명'이 돌연 소설 연재 중지를 요청한다. 이어 작품은 이화-요한, 마리아-장명의 두 시점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마리아가 연재 중인 소설은 1937년 경성의 '조선권투구락부'를 배경으로, 복싱에 인생을 건 두 청년 이화와 요한의 운명을 그린다.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은 복싱을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복싱 금지령이 내려진 뒤에도 일본으로 함께 떠나 복싱을 이어간다.

하지만 일본으로 떠난 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운명은 갈리게 된다. 의지할 구석이라고는 서로뿐이었던 이화와 요한에게 어떤 위기가 찾아올까.



무대에는 샌드백, 수동식 타임벨 등 실제 복싱장을 연상케 하는 장치들이 배치돼 있다. 특히 배우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자유로운 형태의 링은 무대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명 연출 역시 실제 경기장에 온 듯한 느낌을 주며 몰입감을 높인다.

세트 만큼 실감나는 배우들의 복싱 액션도 놓칠 수 없다. 배우들이 실제 복싱 훈련을 받으며 준비한 바. 특히 '최후의 링 위에서' 넘버에서의 경기 연출은 그 어느때보다 배우들의 땀과 노력이 돋보인다.

액션이 더욱 빛나게 만드는 밴드 사운드 넘버들도 관전 포인트다. 첫 오프닝을 여는 '조선의 복서' 넘버는 네 배우의 목소리가 모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이어지는 넘버들 역시 록 장르의 넘버로 액션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더불어 따뜻하고 감동적인 장면에서는 가벼운 통기타의 선율과 애틋한 가사가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건 '복싱', '일제강점기'라는 소재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복싱만을 바라봐왔던 두 청년이 마주하게 된 사건에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이 작용했을 뿐,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또한 두 주인공의 삶이 복싱으로 이어지지만, 작품에서 말하려는 이야기는 이들의 승패 여부에 달려있지 않다.

"그땐 그런 시대였으니까"

극 중 이화의 대사가 '조선의 복서'를 정의한다. 네 인물이 내리는 선택에는 각자만의 이유가 있지만 작품은 이를 억지로 납득시키지 않는다. 결국 그것이 각자의 최선이었고, 아름다운 선택이었음을 말할 뿐이다.

또한 이화와 요한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과도 맞닿아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발이 꼬이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도 된다'는 말을 건네며 주저앉은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용기를 전한다.



다만 짧은 러닝타임 탓에 압축된 서사에 아쉬움이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초중반부와 달리 후반부에는 마리아-장명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이에 액자식 구성으로 쌓여가던 감정선이 후반부에 급히 마무리됐다.

하지만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력이 각 캐릭터의 서사를 탄탄하게 채워나갔다. 이화 역을 맡은 김기택은 요한을 만난 뒤 서서히 변하는 인물의 내면을 촘촘하게 그려내 설득력을 더했다. 요한 역의 이진혁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요한의 단단한 성격과 어울리는 시원한 보컬이 돋보였다.

한수림은 마리아, 프로모터 역으로 극에서 유일하게 1인 2역을 소화하면서도 안정적인 연기와 보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장명 역의 박상준은 다른 캐릭터에 비해 표면적인 감정이 아님에도 진중한 연기로 극 전반에 긴장감을 심어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삶에 지쳤다면 혹은 다시 일어날 힘이 필요하다면, 고민 없이 '조선의 복서'를 관람하길 바란다. 무대 위 강렬한 펀치처럼 당신의 마음에도 묵직한 울림과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조선의 복서'는 오는 11월 9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엠비제트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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