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히어라, '구원자'로 맞이한 기적 [인터뷰]
- 입력 2025. 11.04. 17:06:05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배우 김히어라가 긴 공백기 끝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통찰하며 얻은 확신, 그리고 다시 연기를 향해 나아가게 한 간절함을 영화 '구원자'에 담아냈다.
김히어라
'구원자'(감독 신준)는 축복의 땅 오복리로 이사 온 영범(김병철)과 선희(송지효)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이 모든 것이 누군가 받은 불행의 대가임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오컬트 영화다.
첫 상업 영화 주연작 개봉을 앞두고 김히어라는 "상업 영화가 처음이라서 음악이나 편집 효과들을 다 입힌 결과물을 처음 본 뒤에 신기한 마음이 컸다. 음악을 입히니 훨씬 긴장감도 있고, 저는 드라마적으로 갈 줄 알았는데 훨씬 장르물스럽게 나온 것 같았다"며 "배우다 보니 스스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이번 작품은 김히어라가 지난 2023년 불거진 학교폭력 논란 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에 그는 '구원자'를 "기적처럼 만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에 한국에서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가 꿈이었는데, 앞서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예전부터 제가 배우로서 오컬트나 공포랑 잘 어울리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딱 들어맞게 기다리는 타이밍에 연락이 왔다. 역할도 제가 입체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거였고, 함께 호흡하는 병철 선배님, 지효언니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였다. 여러 의미로 기적적이고 감사한 작품이었다."
김히어라가 맡은 춘서는 외딴 마을 오복리에서 홀로 아들 민재를 키우는 인물로,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걷지 못하게 되자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김히어라는 최근 긴 공백기를 가져야만 했던 자신의 상황과 캐릭터를 연결 지어 접근했다.
"선희(송지효)와 영범(김병철)를 보면 정말 화목한 가족인데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는다. 그때부터는 이들의 삶이 눈과 다리를 찾는 것에 집중된다. 현실에서는 저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기적을 원해서 가족이 그 마을을 찾아가게 간다. 그리고 춘서도 그런 기적을 원한다. 아마 춘서는 오복리에 살면서 교회를 다니며 원했던 기적이 평범함이었을 것 같다. 평범한 남편과 아들, 혹은 아들과 보호받으며 사는 삶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을 거다. 그러다가 재난이 닥쳤을 땐 민제의 다리를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민제를 통해 그들이 무언가를 얻었다는 걸 알고서는 어떻게든 민제를 되찾으려 한다. 저도 오랜 시간 쉬면서 많은 것을 통찰하며 생긴 절실함과 간절함들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찍으면서 저도 무언가를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제가 이 순간 '구원자'라는 작품을 만난 것, 건강하게 잘 서있는 것, 아침에 눈을 떠서 햇빛을 만나는 것 자체도 기적이라고 생각되더라.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 감사함을 알게 된 것 같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그 욕망이 나를 갉아먹게 된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시선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는 감독과 함께 의견을 나누며 춘서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연상되는 모성애에서 미성숙한 면모를 더한 것.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평범한 시골에 살고 나이가 조금 있는 주부 이미지가 그려졌다. 내가 그 역할을 맡았을 때 어떻게 해야 신선할까 고민했을 때 연령대를 낮추는 게 어떻냐는 의견이었다. 비주얼적으로 나이가 어리기보다는 미성숙한 느낌을 원했다. 설정상 춘서는 고아였기 때문에 의지할 사람은 아들 뿐이고, 필요한 사람도 아들 뿐이다. 심지어 아무도 나를 인정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실제의 저라면 아들을 데리고 마을을 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춘서가 미성숙해야 했고, 그 면에서 나오는 리듬이나 톤이 오컬트에 잘 맞을 것 같았다. 다행히 감독님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의하시면서 거기에 맞게 대본을 수정해주셨다."
김히어라는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에 걸맞게 공포스러움을 더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선희와 단둘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의상까지 활용해 기괴한 느낌을 잘 나타내려 했다.
"저는 춘서가 선희를 만나는 부분이 가장 욕심났다. 많은 관객들이 춘서에게 마음을 주면서 동시에 춘서에게 조금 싸한 마음도 들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춘서는 선희를 만났을 때 굉장히 빨리 흡수돼서 좋아하고,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면서 거리감을 좁혀간다. 그런 모습들에서 제가 많이 외로웠다는 게 보였으면 했다. 많은 마을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살았지만 손길이 그리웠으니까 믿어도 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팔찌도 주는 거다. 그런 장면으로 하여금 춘서의 전사가 읽히고 기괴하게 보이게 하려 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제가 빨간 목폴라를 입고 있는데, 피팅 중에 그 옷을 꼭 그 신에서 입고 싶다고 했다. 선희는 점점 눈을 잃어가고, 저는 아무 것도 가진게 없지만 선희 입장에서는 부러운 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이 봤을 때도 제 눈이 욕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간색을 입으면 더 대비돼서 그 점이 부각될 것 같았고, 감독님께도 꼭 눈을 더 초롱초롱하게 보이게 해달라고 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만큼, 그리고 첫 상업 영화, 논란 후 첫 작품이었던 만큼 그에게 '구원자'는 더욱 뜻깊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김히어라는 "물론 다음에 또 다른 작품을 하고 만나면 지금 이 순간을 까먹고 바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구원자'는 늘 특별할 것 같다. 새로운 터닝포인트, 시작이기 때문에 저의 뉴 챕터를 여는 것 같다. '구원자'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고, 물론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제게 닿아있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히어라는 지난 2023년 9월 학폭 의혹 보도가 등장하며 논란에 휩싸이며 활동을 잠정 중단했고, 이후 지난해 4월 "당사자들과 만나 오랜 기억을 정리하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삶을 응원하기로 했다"며 학폭 논란을 마무리했다.
공백기동안 그는 미국으로 떠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털어놨다. 김히어라는 다른 일로 시간을 채우면서도 '연기'에 대한 갈증이 더욱 강해졌다고.
"뭐라도 해야될 것 같아서 미국에 갔다. 처음에 가서 영어를 배워야 했다. 제가 뮤지컬을 했다 보니 이왕이면 잘 아는 장르에서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소개를 받아서 LA에서 활동 중인 음악 프로듀서들을 만나 작곡을 배웠다. 그렇게 음악 작업도 조금씩 하면서 메시지들을 음악 가사로 표현하니까 좋더라. 그렇게 용기가 생겨서 여기저기 에이전시와 미팅도 하면서 값진 경험을 많이 했다. 당연히 쉽지만도 않았고,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좋았고 경험치가 됐다. 거기서도 간절하게 느끼던 원초적인 게 있었는데, 그게 배우로서 사는 것이었다. 저는 태생적으로 연기를 해야 되는 아이라는 걸 쉬면서 많이 느꼈다. 점점 연기에 대한 갈증이 간절함이 되고 절실함이 됐을 때 춘서를 만났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게 연기에 묻어 나왔다."
오랜 시간 자신을 돌아본 끝에 그는 배우라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앞으로도 김히어라는 연기를 귀하게 대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갈 예정이다.
"담대하고 무탈하게 활동하고 싶다. 저는 유명세 같은 걸 예전부터 원하지는 않았다. 어떤 작품에 참여했을 때 모든 사람이 아닌 몇몇 사람들이라도 '김히어라가 저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신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고 연기를 더 귀하게 대함으로써 무탈하게 넘어가고, 대단하지 않은 나날이 됐으면 좋겠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마인드마크 제공]